양재천에선 지금...

청둥오리, 새끼 고양이,새끼 너구리에게 길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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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섭(festinalente)등록 2009.06.15 11:02

양재천의 청둥오리 양재천 영동5교 밑에서 청둥오리들이 한가롭게 둥둥 떠다니고 있다. ⓒ 김영섭


양재천에선 요즘 생명이 약동하고 있다. 봄에 새싹이 파릇파릇 솟아나는 듯한 생기를 느낀다. 청둥오리는 느릿느릿 평화롭게 갈퀴를 내저으며 둥둥 떠다닌다. 숨막히게 돌아가는 이 힘겨운 도시의 샐러리맨들에게 스트레스를 가만히 내려놓으라고 손짓한다. 지나친 욕심도, 성마름도 내려놓으라고 날갯짓을 한다. 그래서 요즘 양재천은 어슬렁거리며 걷기(stroll)에 딱 맞다. 영화 '대부'의 셋째 아들 마이클 꼴레오네가 법망과 다른 패밀리의 보복을 피해 달아나 시칠리 들판을 어슬렁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양재천의 새끼 고양이들. 양재천 영동 6교 근처의 나무계단 밑에서 엄마 고양이와 함께 산다. 왜 하필이면 인적이 끊이지 않는 계단 밑을 보금자리로 택했을까. 삶에 지친 사람들의 무거운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기 위한 것일까? ⓒ 김영섭


양재천은 우리 집의 큰 뜰이다. 그 뜰 안에 최근 새 식구가 생겼다.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사람을 도통 두려워하지 않는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양재천에 내려갈 때마다 반갑게 맞는다. 발길을 묶어 놓는다. 쉬면서 발걸음을 가볍게 하라는 듯하다. 엄마 고양이는 혹 새끼들이 사람들에게서 위해를 당할까 두렵다. 경계심이 가득한 눈초리다. 하지만 새끼 고양이들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사뭇 태평스럽기만 하다. 장난기가 넘치는 고양이들을 보면 온갖 잡념이 사라진다.

며칠 전에는 영동5교와 영동6교 사이에서 너구리 일가족을 만났다. 새끼 너구리가 네 마리나 눈에 띄었다. 해질 무렵의 일이었다. 이번엔 이들 가족을 찍을 요량으로 핸드폰을 챙겨갔다. 하지만 두 시간 이상 잠복근무(?)를 했는데도,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새끼 너구리들이 더 커서 이사를 가기 전에 조우하는 행복을 가질 수 있을까. 새 생명이 피어나는 양재천은 요즘 희망과 위안과 휴식의 천국이다. 여유롭고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는 별장이 따로 없어도 마냥 좋다. 양재천이 몽땅 내 집 뜰인 것 같은 초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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