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마피아의 출현에 즈음하여

이 땅의 주인이어야 할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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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urangin)등록 2009.06.15 10:32
아이들아,
우리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었듯이, 우리는 민족몰락의 엽기적인 사태를 목도하고자 지금 이 땅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잘먹어대는 까닭으로 평균수명마저 단축되어 버린 돼지처럼 한 치 앞을 못 보고 그저 밥그릇에 밥이 적다는 소리만 꿀꿀거리며 살아 왔구나.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소리도 미안해서 못할 정도로 미안하다. 장차 너희들의 것이 되어야 할 이 땅에 우리는 그만 신종 마피아를 끌어들이고 말았나보다. 이 새로운 마피아의 특징은  신종 인플루엔자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그것과는 아예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막강파워를 자랑하고 있구나.

이들은 천상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도덕과 윤리와 아름다움 같은 것들이 설 자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해서 우리가 죽은 뒤에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괴로움으로 통곡해야만 하는 그런 끔찍한 플랜을 만들어놓고 착착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너희에게 이 땅을 물려주기 전에 그것들의 출현을 감지했다고나 해야 할 테지만, 하지만 이런 따위 자위로는 아무 해결도 못 본다.

아이들아.
돌이켜 생각하면 재래종 마피아는 그나마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라도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들은 다섯 수레의 책 속에 파묻혀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백면서생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무지를 보완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노래나 그림을 접하면 그 앞에 무릎을 꿇기도 했었지. 그런데 오늘날 새로 등장한 마피아들은 재래종 마피아들의 그런 최소한의 가치의식마저도 파기해야 할 '죽은혼'이라고 선언해 버리는구나.

경찰관 생활 삼십 여년에 겨우 임대아파트 한 채 분양을 받아 입주한 것을 자축하는 사람과, 역시 경찰관 생활 삼십 여년에 겨우 일금 삼십 억원밖에 축재하지 못했다고 스스로의 무능을 자책하는 사람이 있을 때, 재래종 마피아는 앞의 전직 경찰관에게는 남몰래 금일봉을 보내고 뒤의 전직 경찰관에게는 더러운 '짭새'라고 욕을 했지만, 오늘날 새로 등장한 마피아는 앞의 전직 경찰관은 무능한 놈이라고 아예 밟아 버리고 뒤의 전직 경찰관에게는 '우리가 섬길 만한 국민' 어쩌고 미사여구로 가득한 초대장을 보내 행동대장을 삼는다.

세상에는 음양이라고 하는 불변의 법칙이 있는 것이어서, 경찰관이든 검찰관이든 세무관이든 일반 국민이든 어느 조직을 막론하고 청빈한 자도 있고 그 반대편의 부패도 조금씩은 있기 마련이다.

유사 이래로 부패한 인사들은 '네 죄를 네가 알렸다'고 해서 스스로도 부끄러워 어둠 속으로만 살살 기어다녀 왔던 것을, 오늘날 신종 마피아가 등장하면서 이들에게 괜찮아, 괜찮아,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너의 권리인 것이야, 하고 백주대낮에 면죄부를 남발하며 전국민의 부패화를 추진하는 일방 그래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는 다섯 수레의 책 속에 파묻혀 있는 백면서생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다가 대로변에 세워놓고 발가벗겨서 속옷이 어떻네, 발톱에 때가 끼었네, 지껄이며 키득거리는 일을 앞서 포섭한 부패한 것들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부패야말로 도덕이나 양심보다 훨씬 우월한 상위개념이라는 인식을 유포, 확산시키는데 이것이 저 신종 마피아가 이 땅에 출현한 일차적 목표이다.

이렇게 해서 모든 공직자들의 부패화가 완성되고, 모든 국민의 도덕불감증화가 완료되면, 그 뒤에 오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묻는 것은 차라리 부질없다. 도덕과 윤리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같은 것들이 사라진 자리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진부한 단어로 표현을 하자면 무법천지가 될 것이거니와, 이 무법천지의 상태야말로 저 신종 마피아들이 노리는 바이다.

그들은 머잖아 법질서확립이라는 이름으로 다섯 수레에 달하는 법을 만들 것이고,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우렁찬 구호 아래 모든 지자체마다 의무적으로 감옥을 설치하도록 할 것이며, 부패라는 단어가 들어간 모든 책과 문서들을 수거해서 분서갱유할 것이며, 도덕이라는 단어를 잊지 못하고 있는 자는 몇월 몇일까지 교화소에 들어가 재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어기는 자는 이마에 붉은 도장을 찍는다는 내용의 포고령이나 담화문을 발표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정한 친구의 입이 무섭고 자신의 입도 무서워서 함부로 술에 취할 수도 없고 노래를 부를 수도 없으며, 언제 어디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몰라 여행을 다닐 수도 없고 마침내는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기쁨마저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아.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저들은 가련하게도 부모나 혹은 선배를 잘못 만난 까닭에 양심이라는 인간의 천부적 지혜를 물려받지 못하고 태어났거나 받았다 해도 활용하는 가슴을 그만 잃어 버렸다. 유사 이래로 이런 종류의 하류인생은 구정물이 맑은물에 대비되듯이 그 나름 고급한 인생을 선망하기도 하고, 고급한 품격의 소유자에게는 또 아차 실수하면 저런 하류로 떨어진다는 교훈과 경각심을 주기도 하는 등 역설적으로나마 이 땅의 정화에 일정부분 기여한 바가 있기도 하다.

평생을 음지에서만 떠돌며 몽매에도 그리워하던 양지를 이들 마피아들에게 아무런 대안도 없이 제공한 것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또 한 번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렇다. 꿈속에서나 그리던 양지를, 대로변을 활보하고 다녀도 괜찮다는 자신감을 저들에게 심어준 것은 슬프게도 다른 어느 것도 아닌 우리들 자신이었다.

고급관료와 장군, 국회의원 등등 '오적'들을 향해 가래침을 뱉으면서도 없는 데서만 그리하고 있는 데서는 허리 굽신거리며 떡고물 같은 것 좀 없는가 기웃거리는 야비와 굴종의 정신이 우리에게 있었다. 권력을 비난하면서도 내 새끼는 어떻게 슬쩍 권력의 끄나풀이라도 잡게 해줄 수 없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두 얼굴의 비굴이 우리에게 없었다고 할 수도 없다. 농사를 천직이라 생각한다고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면서도 자식은 농사꾼이 되지 않게 하겠노라고 논밭을 팔아 치우는 너무나도 모순된 자기기만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것 또한 우리는 아프지만 인정해야 한다.

세상이 나를 그렇게 했다고, 나는 한없이 당당하게 올곧게 살고 싶었지만 세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변명은 물귀신작전에 불과하다. 내 자식이 어떤 특기를 가졌는가를 알아보기에 앞서 '오적'들을 많이 배출한 대학에 합격했다고 현수막을 만들어서 오거리 사거리 도처에서 펄럭펄럭 미친춤을 추게 만든 자는 누구인가. 다정한 친구가 검찰에 불려갔다 나온 뒤로 헛소리나 해대는 둥 총기를 잃어버렸다고, 그놈의 소굴에서 밥을 먹는 것들은 인간도 아니라고 욕에 욕을 해댄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내 아들이 고시에 패스했다는 둥 신문광고를 내고 마을 잔치를 벌이며 '나는 이제 어제의 내가 아니에요'따위 철지난 유행가를 불러대는 식으로 자기가 자기를 부정해 버리는 그 자는 또 누구인가.

그 자는 다른 그 어느 누구도 아니었다. 우리들 자신이었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이라면 무엇이든 다해버리는, 다해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마피아들의 웅변에 귀를 기울이고 박수를 쳐 주었다. 우리도 그와 같이 될 수 있다는, 되고 싶다는 바람이 우리에게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철면피가 아직 없었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얼굴색 하나 붉히지 않을 뻔뻔함이 없었다. 우리가 그와 같은 더러운 경지에까지 도달하려면 우리에게는 아마 천 년도 더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나중에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이 땅의 주인이면서도 스스로 주인이기를 포기한, 포기한다는 생각도 없이 결과적으로 포기하고 있었던 우리에게 복수라도 하듯이 마침내 저 무도한 신종 마피아는 음지에서 벗어나 양지를 활보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들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일 수도 있다는 잠언에 의지해서 너희에게 말해두고자 한다. 뭔가를 많이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식의 시비를 하지 못한다. 안 하기도 하고, 못 하기도 한다. 인간의 품격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차마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 그러나 뭔가를 많이 모르는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아주 쉽게 시비를 걸고 그 사람을 넘어뜨려놓고 밟아 버린다. 왜냐하면 모르니까. 무식하니까. 무식이 용기라는 말은 그래서 의미 깊은 말이기도 하다.

신종 마피아의 특징이 무식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나름 유식하기도 하다. 다만 그 유식이 자신의 이익과 결부되었을 때만 빛을 발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보편적인 지식이 아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닌 이웃과 나눠먹을 때 일어나는 가슴속의 울림과 그 울림의 성질을 안다는 것이다. 이때의 울림이란 바람에 깃발이 흔들리는지 내 눈이 흔들리는지 알 수조차 없을 정도의 그것과도 같은 미세한 떨림일 수도 있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눈물'을 흘려야만 하는 거대한 서정일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그것을 뭉뚱그려서 행복감이라고 말한다. 이 미증유의 행복감을 아는 것, 죽어야만 하는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이 이상의 커다란 지식이 무엇일 것이냐.

그러나 신종 마피아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우리가 행복이라고 말하는 가슴 안의 미세한 떨림이라든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흘리는 눈물을 철부지 소녀의 감상이라고 치지도외하며 킬킬거리고 조롱한다. 이 땅을 '눈 먼 자들의' 세상으로 만들어 버리고자 불철주야 광분하는 저들의 킬킬거리는 소리에 우리는 이제 정말로 눈이 멀고 귀가 멀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들아.
우리 세대에서 저 무지막지한 신종 마피아를 퇴치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행하게도 아직 알 수가 없다. 만약에 우리가 실패한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너희에게 전이될 터인데 어쩔 것이냐. 바라건대 이것을 기억해 두도록 하여라. 저들이 너희에게 어느 날 백 만원어치의 이익을 준다고 하거든 천 만원어치의 손해가 적어도 일 년 뒤에는 반드시 오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라.

유류세 환급금이라고 이십 만원어치 이익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우리는 그 알량한 개밥에 취해서 십 조원이 넘는 이익을 땅부자들에게 주고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그 이십 만원어치의 이익마저도 일 년여 뒤에는 이백 만원어치의 부담으로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것은 다만 하나 아주 작은 실례에 불과하다. 눈을 조금만 크게 떠도 보이는 저들의 저 사기성 충만한 민족분열 정책의 실상을 이 자리에서 어찌 필설로 다 말할 수 있겠느냐.

아프다. 너무나 아프다. 꽃이 핀다고 하는데도 꽃이 피는 줄을 모르겠고 바람이 분다고 하는데도 바람이 부는 줄을 모르겠다. 그러나 저들은 내일도 꽃놀이를 간다 하는구나. 잊지 말고 기억해 두어라, 아이들아, 아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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