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종에 처서만 기다린다?

-철따라 새로 쓰는 우리 마을 절기 이야기(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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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lifenamoo)등록 2009.06.11 11:36
내일이 망종입니다. 망종에는 불 때던 부지깽이도 일을 거둔다고 할만큼 바쁜 시기지만 농사일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그런 고단함이 묻어 있는 속담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바쁜 농사철 일손이 없어 아쉬운 마음을 이렇게도 표현했다 합니다.

나비를 찾아라 곤충의 계절, 여름 초입을 지나며 표충망을 들고 나비를 잡아 조심스럽게 관찰통에 넣고 있다. 날개를 다치게 하면 안되기 때문에 장갑을 끼고 날개에 손이 닿지 않도록 한다. ⓒ 한희정


망종에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들어온다.
망종에 발등에 오줌 싼다.
보리타작 할 때는 송장도 일어나서 거둔다.

지난 가을 심은 보리를 거두고, 그 자리에 모내기를 해야 하니 정말 눈코 뜰 새도 없었겠지요. 아이들과 함께 요즘 우리 생활에 맞는 속담을 지어 보았습니다.

망종에 처서만 기다린다.
망종 때부터 모기장, 에프킬라 잘 팔린다.

왜 망종에 처서만 기다리느냐고 물었더니, 처서가 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속담이 생각나서 밤마다 모기에 괴롭힘 당하는 걸 잊고 싶어서 이런 속담을 지었다고 합니다. 기후 변화와 이른 더위에 벌써 깨어나 활개를 치는 모기. 아이들은 너도 나도 4월부터 모기장을 치고 잔다느니, 모기 물린 자국을 보여 준다느니 여러 가지 공감하는 말들을 쏟아 놓습니다. 도심의 열섬 현상과 아파트 환경은 늦가을, 심지어 한겨울인 1월에도 모기들이 살아있게 해 주니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앵두야 떨어져라 산책길, 빨갛게 익은 앵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앵두야 떨어져라 기다리는 아이들! 어쩌다 마음 좋은 주인을 만나면 아이들 앵두 좀 따서 주라고 대문을 열어주시기도 한다. ⓒ 한희정


망종에 앵두, 버찌 줍느라 바쁘다.
망종에 애들 옷, 얼굴, 입, 손이 보라색 된다.

활짝 만개했던 벛꽃이 지고 그 자리에 곤충과 나무의 합작품인 버찌 열매가 까맣게 익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학교에 들어서면 버찌를 줍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이들, 그 버찌를 입에 물고 놀다가 입술에 칠하고, 손톱에 칠하고, 옷에 칠하고, 그림 그리고 글씨까지 씁니다.

우리 이렇게 매일 버찌랑 앵두 주우며 놀아요. 새까만 버찌와 빨간 앵두가 가득한 손, 손가락 끝은 버찌물로 보라색! ⓒ 한희정


버찌를 주워 그림 그리는 아이들 손에도, 입에도, 옷에도 온통 버찌물을 들이는 아이들과 버찌를 주워 노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버찌는 어떤 물감보다 멋진 물감이 되었다. ⓒ 한희정


대추꽃, 밤꽃, 치자꽃이 피면 모심기를 한다는 속담에 맞게 마을에도 밤꽃 대추꽃이 피었습니다. 아까시꽃이 물러가니 마을 골목은 빨갛게 익은 앵두와 빨간 덩굴 장미, 노란 감꽃이 한창입니다. 꽃이 있으면 곤충이 있는 법, 사람들이 농사일에 바쁜 것처럼 곤충들도 바쁜 시절입니다.

곤충눈 체험경을 들고 숲을 산책하며 곤충눈체험경을 들고 친구들을 찾고 있다. 쉽게 찾을 수 없다. 우리가 보는 세상과 곤충이 보는 세상은 이렇게 다를 것이다. ⓒ 한희정


지구에 사는 생명체 중 70-80%가 곤충이라고 할만큼 지구는 곤충의 행성입니다. 유에프오(UFO)가 지구에 와서 인간을 만나고 가는 것이 아니라 곤충과 교신하고 간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곤충은 엄청난 세력으로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답니다. 중생대 이후 포유류는 점점 더 정교하고 복잡하게 신경세포들을 진화시킨 반면, 곤충들은 점점 더 단순하고 작게 스스로를 진화시켜나갔다고 합니다. 쓸데없이 많은 것을 만들며 소비하는 인간의 생활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곤충의 몸이 왜 작아졌을까 알아보는 놀이를 합니다. 접시에 큰 나무집게 10개, 작은 나무 집게 10개를 모아 놓습니다. 아이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 이어달리기 하듯이 집게 하나씩을 물어오게 합니다. 아이들이 '새'고 집게가 새들의 먹이가 되는 곤충인 셈이지요.

새가 되어 곤충 잡기 새가 되어 곤충을 잡아와 모으는 이어달리기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머리카락 휘날리며 달리고 있다. 생존을 위한 싸움은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것인가? ⓒ 한희정


이어달리기가 끝나고 아이들이 집어온 집게를 모아봅니다. 큰 것이 7개, 작은 것이 3개입니다. 아이들에게 "한 쪽 날개만 70cm나 되던 잠자리를 비롯한 곤충이 왜 작아졌을까?" 먹히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몸의 기관을, 크기를 단순화시킨 거지요.

곤충은 삶의 방식을 스스로 단순화시켰기 때문에 지구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오히려 쉽게 적응하며 살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늘어 벌려 놓고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은 발달된 두뇌의 힘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자연으로부터 빼앗으며 살게 될까요? 망종에 처서만 기다린다는 아이들 말처럼, 처서에 모기입이 삐뚤어지면 좋으련만, 처서가 되어도 도심의 열섬현상과 과도한 난방은 동지가 되어도 비뚤어지지 않는 모기를 양산하며 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마을학교 춤추는방과후배움터는 북한산 자락 인수동에 자리잡은 대안학교입니다. 매주 수요일 절기 공부를 하며 우주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 절기 공부는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의 환경교육현장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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