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단으로 향하는 길

자연과 동료 그리고 나

검토 완료

조희수(kill1412)등록 2009.05.13 16:35
 

  등산이란 산을 오르는 것 그 자체이며, 심신을 단련하고 즐거움을 찾는 행위를 뜻한다. 또한, 자연을 무대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정상이라는 하나의 목적지를 오른 그 순간. 몸속을 관통하는 전율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험난한 등산은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 과정 속에서 느끼는 동료애와 나 자신의 제어를 통한 수련은 등산으로만 얻을 수 있는 값진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느 명승지가 그러하듯 화엄사(華嚴寺) 역시 많은 문화재와 풍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특히 각황전(覺皇殿) 앞의 석등은 그 높이만 6미터가 넘어가는 것으로 보는 이에겐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들 웅장함을 보여준다. 등산을 함에 있어 주된 목적은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지만, 흔히 첫 출발지가 되는 사찰을 둘러보는 것 역시 뜻 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다가올 시련에 앞서 출발 전의 느긋한 마음과 여유로움을 느껴보는 것 역시 등산의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화엄사에서 찍은 사진. 출발 전의 여유로움이 묻어나온다. ⓒ 조희수

 

  화엄사의 짧은 관람을 뒤로 하고, 오늘의 목적지인 노고단(老姑壇)을 향해 전진을 감행한다. 인원만 수십여 명. 학생들의 재잘거림은 노고단으로 향하며 우리들의 존재를 알린다. 바위로 만들어진 계단위로 작년에 떨어진 낙엽의 길을 걷는다. 자연이 선사하는 그늘과 귓가에 들려오는 계곡물 소리는 피곤함과 더불어 땀의 뜨거움까지 식혀준다. 한 마디로 완벽한 산행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조용한 날씨 속에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움이 느껴졌다.

   

가지와 나뭇잎으로 인해 한 치 앞조차 보이지 않는다. 산이기에 맛볼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이다. ⓒ 조희수

 

  이렇듯 등산을 하다 보면 정상으로의 걸음보다 주변의 풍경에 정신을 놓는 경우가 많다. 도시의 인공적인 구조물과 각종 사회적인 혼잡함 속에서 등산은 잃어버린 자연을 되찾음과 동시에 친숙함과 편안함을 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인간 역시 자연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임을 느낀다.

 

  더불어 자연이 주는 소중함도 깨닫는다. 한 줄기의 바람에 감사와 축복을 느끼고, 흐르는 계곡물에 손과 발을 담그면서 새삼 물의 소중함과 그 의미도 깨닫는다. 평소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황금보다 더 귀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가픈 숨소리와 등 뒤로 흐르는 땀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산을 오른다. 바로 자연을 느끼기 위함이다. ⓒ 조희수

  등산은 힘들다. 정신적인 평화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육체적인 피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정상의 달콤함과 전율은 이 때문에 다가오는 것이리라. 같이 올라온 동료와 함께 정상에서 외치는 거대한 함성. 출발 전의 여유로움이 다시 끔 찾아오며, 웃음이 찾아온다.

 

함께하기에 더욱 의미 있는 등산이 될 수 있었다. ⓒ 조희수

 

  지리산의 정상은 천왕봉(天王峰)이다. 밤과 새벽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천왕봉의 일몰과 일출을 위해 오르내린다. 나 역시 몇 차례 천왕봉을 오르내리면서 일몰과 일출을 바라보고, 작년의 반성과 더불어 올해의 계획을 세운다. 매일 반복적으로 뜨고 지는 태양. 도시에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 태양이 이곳에서 만큼은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석양과 일출은 천왕봉과 다른 느낌을 부여한다. 천왕봉의 태양이 웅장하고, 신비하게 느껴졌다면, 노고단의 태양은 평온 속에 느껴지는 온화함이라고 할 수 있다.

   

노고단에서 바라본 석양.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선사한다. ⓒ 조희수

 

  다음 날. 떠오르는 해를 뒤로 하며, 산을 내려간다. 몇 시간 동안의 달콤한 휴식을 지내고, 마지막 중요한 과정을 시행하려는 것이다. 어깨에는 다시금 무거운 배낭이 걸린다. 발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바위의 묵직함은 지금 걷고 있으며, 동시에 나와 자연과 하나가 되었음을 가르쳐 준다. 지난해에 떨어진 낙엽과 올해 새롭게 매달린 나뭇잎을 바라보며, 자연의 흐름도 느껴본다. 앞사람의 발꿈치와 뒷사람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바라보며, 우리가 함께하고 있음을 느낀다. 힘들어도 걸을 수 있는 이유이다.

   

힘들어도 웃으면서 산행을 할 수 있는 이유. 함께하며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있기 때문이다. ⓒ 조희수

 

  등산이라는 것은 마라톤과 비슷하다. 한번 시작하면 마지막까지 멈출 수 없는 것도 같으며, 길고 긴 여정을 거치면서 나를 이기는 과정이라는 것도 같다. 완결 점에 이르러 느껴볼 수 있는 모호한 감정 또한 같다. '내려오는 산을 왜 힘들게 올라가느냐?' 라는 질문은 우문(愚問)에 불과하다. 단순히 오르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등산은 바로 자연을 가까이 하고, 동료를 돌아보며, 나를 다스리고자 하는 일종의 다리인 것이다.

 

  인간에게 존재하는 수많은 운동 중에서도 등산만큼 상대를 인식하고, 배려하며, 반겨주는 것도 없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반갑습니다."라는 인사를 가볍게 건네줄 수 있는 것. 작은 간식이라도 나누어먹고, 물 한 모금에 무한한 감사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분명 등산밖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도심에선 상하의 지위 속에 살아가지만, 등산을 하는 만큼은 자연이 주는 축복 아래에서 평등과 친근이라는 것이 들어선다. 바로 등산의 매력이다. 만약 이런 마음가짐이 도심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우리는 마지막 종점인 연곡사(鷰谷寺)에 도착하였다. 바야흐로 이번 등산의 끝을 알리는 소위 결승점에 도착한 것이다.

 

출발 전 화엄사에서의 단체 사진. 이번 등산으로 얻은 가장 값진 선물이다. ⓒ 조희수

 

  연곡사에 도착한 것으로 1박 2일간의 길지만 짧은 여정이 끝났다.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았던 1박 2일의 여정. 기계의 이기를 뒤로 한 채, 두 다리로 흙과 바위를 밟으며 걸었던 산길. 온몸의 감각으로 자연을 보고, 듣고, 느끼며, 함께한 동료를 생각했던 시간. 결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은 이 날은 평생 추억집의 한 면으로서 장식할 것이다.

 

2009.05.13 16:33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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