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 의원님의 쾌차를 기원합니다.

싸구려 법치주의 확립하시려면 기운 차리셔야죠

검토 완료

임재성(blueljs)등록 2009.03.18 14:11
수준 높은 정치평론이 나오질 않는다. 국가권력과 시민들 간의 팽팽한 긴장과 그 속에서 교묘한 폭력의 지배가 일어나야 평론의 수준이 올라간다. 68세의 할머니께서 51세의 국회의원을 폭행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어 감옥에 있다. 그 할머니에게 폭행을 당한 국회의원은 8주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있다. 수준 높은 분석을 할 방도가 없다. 비극적인 시대다.

경찰은 당시 현장을 면밀하게 분석해보니 폭행가담자가 더 있다고 한다. 50여명의 전담 수사반이 꾸려졌다더니 그 성과가 가시적이다. 연세 지긋하신 조순덕 전 민가협 의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오늘(3월 18일) 오전 10시 남부지법에서 열렸다. 검찰은 이번 사건이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폭거로서, 이 나라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서는 반드시 구속수사가 필요하단다. 또한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이들에게도 체포영장을 신청할 것임을 밝혔다.

법치주의. 이 정부 참 일관되게 법치주의 노래를 부르지만, 법치주의가 무엇인지는 아시나? 작년 촛불이 한참일 때,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성추행을 당하며 닭장차에 태워지고,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경찰에게 집단구타를 당해 깁스를 하고 다녔다. 그러나 아무도 신성한 국회의원에 대해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되지 않았다. 용산참사를 현장조사 하겠다고 나선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에게 돌아온 것은 "국회의원 그 자식 밟아버려"라는 명령과 함께 쏟아진 공권력의 주먹이었다. 그런데 유원일 의원이 공무집행을 방해했기에 불가피했단다. 백번 양보해서 악법도 법이라고 치자. 그럼 그 법이라도 적용해야 할 것 아닌가? 한나라당 국회의원 배지만 금인가? 싸구려도 이렇게 싸구려 법치주의가 없다.

이러니 논평의 수준이 높아질 수가 없다. 저쪽이 한 일만 적어주어도 비판이며 반박까지 끝나서 더 할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나아가보자. 필자의 판단으로는 폭행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지만, 일단 그렇다고 하자. 그렇다면 누가, 왜 전여옥에게 폭행을 가한 것일까? 폭력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맥락을 살펴야 한다. 경찰의 폭력은 무조건 정당한 공권력 행사인가? 칠순 노모의 항의도 엄정한 법집행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이런 고민도 없는 것이 싸구려 법치주의다.

지금 구치소에 구속되어 계신 민가협 이정이 선생님. 민가협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약자이다. 민주화운동으로 자식을 감옥에 보낸 어머님들이 밖에서 수감된 자식을 위한 활동을 벌여나가면서 조직된 단체이다. 이정이 선생님의 자식 역시 동의대 사건으로 복역했다. 동의대 사건에서 경찰이 죽는 불상사가 벌어졌기에 이정이 선생님은 자식을 감옥에 보낸 어머니의 고통과 함께 '경찰을 죽인 살인마의 가족'이라는 낙인 속에서 살아가셔야 했다.

동의대 사건으로 구속된 이들 중에는 많게는 무기징역까지 받은 이들도 있었다. 출소하고도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자식들을 지켜봐야했던 이정이 선생님은 사망한 경찰의 유족과도 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하셨다. 그녀는 자신의 삶 모두를 통해서 우리의 슬픈 과거사를 묵묵히 책임지지고 하셨던 분이다.

이 분이 왜 전여옥에게 가셨을까? 전여옥은 최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된 사건의 재심기간을 연장하겠다는 법안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2002년에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동의대 사건을 거론했다. 이들은 '극렬 불법 폭력배'이며, 이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것은 '부모에게 칼부림을 한 패륜아에게 효자상을 안긴 것'이라고 말이다. 당신이 이정이 선생님이었다면, 저 말을 듣고 어땠을까. 단순한 상스런 말을 넘어서서 구체적인 법안을 통해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된 것을 뒤집겠다는 전여옥의 야심을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이정이 선생님은 구속된 이후 한 언론사의와 인터뷰에서 그런 전여옥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동의대 사건을 잘 모른다면 본인이 설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원 사무실로 들어가는 이정이 선생님은 당연히 저지당할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 지나도록 자기 자식이 군대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유족들은 군의문사진상규명 사업을 가로막은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실에 드러누울 수라도 있었지만, 이정이 선생님은 방법이 없었다.

이정이 선생님은 그러다 우연하게 전여옥이 옆으로 지나갔다고 했다. 본인도 놀랐다고 한다. 황급하게 법안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하는데 돌아섰다. 그래서 머리채를 붙잡았다. 왜 그냥 가냐고. 선생님은 만약 그렇게 만날 줄 알았다면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어쨌든 저로 인해서 병원에 계신다니 죄송하다고 말씀까지 인터뷰에 남기셨다. 실제 어느 정도의 가해가 존재했는가가 여전히도 팽팽한 쟁점이지만, 선생님은 먼저 사과하셨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나자빠지기 바쁜데 말이다.

물론 일방의 말이다. '가해자'로서 구속된 이의 말이다. 그래서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68세의 노인이 자신의 아들을 극렬 폭력배로 몰아간 것에 앙심을 품고 전여옥을 테러하기 위해서 기다리다 급습하였다는 설명보다는 억울한 노모가 하소연이라도 하기 위해서 매달렸다고 것이 정확해 보인다. 그 과정에서 물리적인 상해가 발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상해를 가한 것은 분명 불법이다. 그것도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신체에 대한 상해는 더 심각하게 다뤄질 수 있다.

분명 폭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폭력에는 맥락이 존재하고, 그것을 삭제한 채로 '모든 폭력은 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비폭력도 법치주의도 아니다. 오히려 폭력의 맥락을 적극적으로 살필 때, 폭력을 극복하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 탱크에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에게 이스라엘 군인들은 테러리스트라고 한다. 돌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파괴한 그 탱크를 몰아낼 다른 어떤 방법이 있을까? 결국 그러한 방법이 없을 때 그들이 커서 총을 잡게 되는 것이다.

전여옥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이정이 선생님은 추운 3월의 구치소에 갇혀 계신다. 불법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이정이 선생님은 자신의 자식을 '패륜아'라고 부르며 삶을 바쳐 이룬 민주화 인정을 갈아엎겠다는 국회의원에게 어떻게 항의할 수 있었을까. 약자에게는 선택항이 많지 않다. 모든 파업은 불법파업이고 모든 시위가 불법시위가 되는 시대에 노모의 절절한 하소연 역시 결국 불법폭력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맥락을 알아야 한다.

전여옥 의원님이 빨리 쾌차하시길 바란다. 비록 8주의 진단이지만 많이 노력하셔서 일찍 병상을 털고 일어나시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을 위협한 이들의 마음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고, 하지만 나의 정치적 관점에서는 법안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논리적으로 말해주시길 바란다. 인터뷰를 통해서 폭력행사에 대한 공개적인 사과를 들었기에 형사처벌은 원하지는 않는다고 재판부에도 말씀을 넣어주셨으면 한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 만약 일어나면 전여옥 의원님이 아니시다. 하지만 이것은 꼭 당부 드린다. 월 천 만원이 넘는 국회의원 월급.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좋아하실 전여옥 의원님. 입원기간 월급은 꼭 뱉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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