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도 국회의사당 출입이 저지당할 수 있다

'신빈곤층'에 한발짝 다가선 A비서관의 2월 27일 일기

검토 완료

한상범(soldat)등록 2009.02.28 17:19
27일 국회 청사출입 제한조치로 본청 입구 출입문이 봉쇄되자 본청으로 들어오려는 민주당 당직자들과 이를 막는 경찰, 국회 방호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A는 민주당 B의원의 비서관이다. 때는 2008년 2월 27일.  B의원의 지시다. "민주당 의원총회에 가셔서 현재 상황이 어떠한지 수시로 보고해주세요!"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A는 둥근 돔이 있는 건물, 국회의사당 본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날 A는 국회의사당 관리와 관련한 <국회청사관리규정>이 개정되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국회의원실에 속한 보좌관, 비서관조차도 국회본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국회 경위와 전경들의 물리적 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취임 이후 보좌관, 비서관에 대한 국회 본청 출입제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A에게는 첫 경험이다. 지난 2월 초순에야 B 의원실에 임용되었기 때문이다.

B의원의 지시사항을 보좌하기 위해 본청으로 향한 A는 그를 막는 국회 경위 C에게 청사 진입을 막는 근거를 물었다. C 경위는 '박계동 사무총장의 지시'를 얘기했다. 박 총장의 지시의 법적 근거를 물었다. 경위 C는 '청사관리규정 제5조'이라고 했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A는 국회사무총장 명의의 벽보가 국회 본청 유리창에 큼지막하게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정확한 법적 근거는 그 벽보에 있을 테지만 금요일 저녁 피곤에 지친 A는 발걸음을 집으로 향한다.)

비서관 A는 국회의원 B의원실에서 일하는 보름여의 기간 동안 그가 근무하는 공간인 국회청사관리규정에 대해 찾아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미션을 수행하지 못한 A 비서관은 국회사무총장 지시에 의한 출입제한조치의 근거조항이 과연 어떻게 규정되어 있을지 너무도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B의원에게 이야기할 변명거리를 찾고 있었다. 참고로 A는 법학 전공자다. 서둘러 국회청사관리규정을 살펴보았다.

청사관리규정은 불과 2달여전인 2008년 12월 1일 개정되어 있었다. 개정된 부분은 주로 제3조였다. 한 문장으로 되어 있던 제3조가 제1항에서 제4항까지로 구성된 제법 긴 조항으로 개정되어 있었다. 개정 전의 제3조(청사출입의 통제)는 "의장은 청사의 관리 및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청사출입의 제한 및 통제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개정 후의 제3조를 보자.

제3조(청사출입의 통제 등)
① 의장은 청사의 관리 및 보호를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청사출입자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하여 청사출입의 제한 및 통제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1. 제5조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경우
2. 청사방문자의 규모가 과다하여 청사내의 질서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3. 그 밖에 청사의 관리 및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② 의장은 제1항에 따라 청사출입의 제한 및 통제 등의 조치를 받은 청사방문자에 대하여 안내실에서 관계자와의 면회를 허가할 수 있다.
③ 제1항제2호에 따라 청사출입의 제한을 받은 자는 대표자를 선정하여 출입할 수 있다.
④ 청사방문자는 용무를 마친 경우에는 즉시 퇴청하여야 하고, 회의 방청 등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방문 당일 23시까지 퇴청하여야 한다.

왠지 복잡해보이지만 제 3조의 개정목적을 비서관 A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규정의 개정목적은 제5조 제1항 제1호의 '우려'에 있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A의 출입을 막는 근거라던 '제5조'는 일정한 행위들을 '금지'하고만 있었다(제5조는 기사 하단에 수록함). 개정 전 규정에 의하면 5조에서 정한 '금지행위'를 하는 사람을 주요 대상으로 하여 국회의장이나 사무총장이 청사출입의 제한 및 통제조치를 할 수 있었다. 한데 작년 12월의 개정을 통해 '금지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청사 출입을 제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려'가 바로 개정목적인 셈이다.

A 비서관의 본청 출입목적은 'B 의원의 업무지시 -> 본청 입장 -> 의원총회 참석 -> 진행상황 보고'다. 제5조의 금지행위와 A는 무관하다. 출입제한의 또 하나의 근거였던 제4조의 '통상의 목적 외 사용'과도 무관하다. 개정 전 규정에 의하자면 A는 아주 간단한 상황보고업무인 이번 지시사항을 잘 수행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A는 이처럼 간단한 업무조차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의 사고'로 인해 조치권한이 있는 박계동 사무총장의 '우려'로 인해 본청에 들어가지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A는 B의원의 간단한 업무지시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어려운 정책보좌도 아닌 현황보고도 제대로 못하다니 비서관으로는 대단한 결격사유다. 아다시피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비서관은 정규직 공무원이 아니다. '계약직'도 아닌 '별정직'이다. 의원의 말 한마디면 그 신분이 박탈되는 '별정직'인 것이다.

A의 해석에 의하면 개정된 규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의장 또는 사무총장의 '우려'로 인해 본청의 의원총회에 참석하지 못한 A비서관은 이명박 정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신빈곤층'이란 용어에 한발짝 다가서게 됐다. 기억하자. A비서관의 행복 끝, 불행 시작은 2009년 2월 27일이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B의원으로부터 '그만두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파리목숨' A는 지금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그 불안의 원인은 A의 해석대로라면 청사관리규정 개정의 핵인 박 총장의 '우려'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고용불안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진 A의 미소와 관련한 이야기다. 법학 전공자인 A의 해석에 의하면 B의원도 국회본청으로의 출입이 물리적으로 제지될 수 있다. 왜냐고? 제5조에 규정된 금지행위의 주체는 '누구든지'다. '누구든지'! 즉 B의원도 '누구' 중의 1인에 해당한다. 헌법기관인 B의원도 국회의장의 '우려' 뿐만 아니라 국회 사무총장의 '우려'로 인해 국회 본청으로의 통행이 저지될 수도 있다고도 해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국회의장과 국회사무총장 앞에선 헌법기관인 B의원도 별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신빈곤층 예비생'이자 '파리목숨'인 A비서관의 입가에는 살포시 미소가 번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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