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웨이코 진압을 임기중 가장 실패한 일로 꼽았다!

검찰과 공성진의원, 용산참사를 사이비종파 진압사건으로 몰아가

검토 완료

백찬홍(zskmc)등록 2009.02.02 21:06
용산참사에 대한 검찰과 한나라당의 대응이 마치 막장 드라마의 끝을 보는 듯하다. 검찰은 2일 용산참사에 대한 해외유사사례로 지난 1993년 미국 텍사스 주 웨이코(Waco)에서 발생한 '다윗파 사건'을 들었다.

다윗파 사건은 지난 1993년 미국 텍사스 주 웨이코라는 도시 외곽에서 데이비드 코레쉬를 교주로 하는 종말론 자들인 '다윗파'가 FBI등 정부기관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어른 53명과 어린이 25명이 불에 타 숨져 미국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은 바 있다.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다윗파 사건을 예로 들며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경질 요구를 체제 전복 의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윗파 신도들이 인질극을 벌이자 탱크와 무장군인까지 동원해 진압작전을 펼쳐 82명의 신도가 사살되거나 자살했지만 작전을 지시한 법무장관과 FBI국장 인책론은 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검찰과 한나라당이 아예 용산참사를 사이비 종교집단의 농성으로 간주하고 경찰의 과잉진압에 면죄부를 주고 모든 책임을 철거민들에게 있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검찰과 공의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2005년 11월 10일 미국 호프스트라 대학에서 자신의 재임기간을 평가하는 회의에 참석해 재직기간 실패한 일로 르완다 대학살에 대한 늑장대응과 웨이코 다윗파에 대한 연방수사국(FBI)의 성급한 진압을 꼽았다.

이날 회의에는 웨이코 참사의 최고 책임자였던 재닛 르노 전 법무장관도 참석해 클린턴 전대통령의 주장에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았다. 웨이코 사건은 클린턴 전 대통령 취임 첫 해, 강력한 '법과 질서'를 내세운 리노 법무장관의 강경진압책이 일으킨 엄청난 참사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클린턴 정부의 적극적인 방어로 사건 책임자들이 사임 등의 법적 책임을 모면했으나 의회청문회 과정에서 국민을 적으로 보는 정부 관리의 편향된 시각이 결국 폭력, 혼란, 대량살인을 야기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웨이코 사건은 1995년 4월 19일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청사 폭파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웨이코 참상에 격분한 티모시 맥베이라는 청년이 3톤 가량의 폭탄을 적재한 트럭으로 연방청사에 돌진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어린이 19여명을 포함해 168명이 숨지고 수백 여명이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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