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도, 진보도 배겨나지 못하는 두 가지

금나나, 큰 대(大)와 바깥 외(外)강박증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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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원(jungs21)등록 2009.01.13 11:10
 한국에선 보수는 물론이고 진보도 배겨내지 못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한자로 요약하자면 첫번재는 큰 대(大)고, 두번째는 바깥 외(外)다. 외국,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에 나가서 성공한 사람은 찬양받는다. 첫째 그들은 '큰 일(大)'을 해냈고, 둘째 좁은 한국을 벗어나 '바깥(外)'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갖은 고생을 하며 하버드 대학에 수석으로 들어간 학생, 미국에서 사회 활동을 활발히 해 이름을 알린 청년이 그렇다. 금나나의 이야기 역시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거기다 그녀에게는 '미스코리아'라는 꼬리표까지 붙는다. 아름다운데다 공부까지? 언론과 출판과 대중 모두 탐낼 상품이다.

한국 사회는 착함보다 '위대함'을 좋아한다. 박정희가 사람을 아무리 많이 죽였더라도, 그는 시골에서 아무에게도 해 끼치지 않고 산 농부보다 낫다. 박정희는 무언가 거대한 일을 해냈고 농부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보는 물론 박정희를 찬양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들 역시 다른 곳에서 찬양의 대상을을 찾는 것, 위대함 타령을 하는 건 똑같다. 목숨을 바치는 '투사', 거창한 이론을 펼치며 세상을 일갈하는 '지성'은, 그 내용 때문이 아니라 스타일 때문에 추앙받는다. 진정한 좌파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 진보 세력은 거의 다 민족주의자다. 민족주의를 마냥 욕하는 것도 천한 유행이지만, 요즘 민족주의 진영의 과대망상은 도가 지나치다. 통일한다고 한국이 신내린 강대국이 된다는 운동권 학생회의 자아도취는 민망하다. 중국의 역사왜곡이 밉기로서니, 고구려를 가지고 황당무계한 서사시를 쓰는 게 용인될 순 없다.

우리는 왜 미국 대학에서 성공한 한국 유학생들을 칭찬할까? 물론 그들은 노력을 했고 합당한 보상과 칭찬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 교육이 그들의 재능을 살려주지 못한 건 우리 모두가 반성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 대학의 교육 내용이 이러이러한 점에서 더 우수하다는 걸 알기에, 그들 유학생 젊은이를 찬양하는 게 아니다. 미국은 큰 나라고, 큰 물에서 성공했다고 그를 찬양하는 것 뿐이다. 무엇이 진정한 성공인가, 무엇이 진정한 학문인가라는 질문은 없다. 한국 교육에 대한 진정한 반성도 없다. 그리고 그들 성공한 유학생들 가운데에도 빈 껍데기도 있었다. 그저 권력에만 정신이 팔린, 매끈한 얼굴로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룬 위선자도 있었다. 누군지는 말 안해도 아시리라.

사실 요즘엔 큰 대(大)강박증을 극복한 논자들도 있다. <딴지일보>가 그렇다. 딴지 김어준 총수의 글은 국민교육헌장 등 큰 대(大)강박증의 유물을 때로는 날카롭게 비판하고 ,때로는 유쾌하게 풍자한다. "나는 민족 중흥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며, 나는 단지 나일 뿐"이라는 건강한 개인주의를 부르짖는다.
그러나 <딴지일보> 역시 두번째 바깥 외(外)강박증은 벗어나지 못한다. 김어준은 젊은이들에게 여행을 많이 하라고 권한다. 사람은 바깥에 나가 많은 경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 경험을 쌓는 건 좋다. 그러나 칸트는 평생 자기 고향을 벗어나지 않았다.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에 가보지도 않았지만 성찰과 탐구만으로 <국화와 칼>을 썼다. 도자기 장인은 대개 가마에만 틀어박혀 있지만, 사람들은 그를 부족하게 여기지 않는다. 단순히 바깥 경험이 적다고 지성 또한 적은 건 아니다. 성찰 없이 바깥 구경만 하고 겉핥기 지식만 쌓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바깥 외(外)강박증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 불평등에 무감각하단 것이다. 누구나 바깥 세상에 쉽게 나갈 순 없다. 한국같이 쉽게 국경을 넘나들지 못하는 나라, 외국 여행이 아직도 큰 행사고 특권인 나라에선 더욱 그렇다. 등대지기나 공장 노동자는 평생 일터에서만 살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인생이 무언가 부족하며, 지혜가 없는 인생일까? 우린 단지 사실상 섬과 같은 남한에 살아서, 답답해서 나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무언가 거창한 명분으로 포장한 건 아니었을까? 바깥 외(外)강박증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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