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 VS 헐크

대조해보면 더 재밌는 영화, <헐크>와 <인크레더블 헐크>

검토 완료

정동원(jungs21)등록 2009.01.06 12:03

 녹색 괴물의 얼굴은 더욱 거칠고 무서워졌지만, <인크레더블 헐크>는 사실 리안 감독의 <헐크>보다 훨씬 '깔끔한' 영화다. 이미 잘 알려진 헐크의 탄생 과정을 다시 길게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영화 초반, 헐크의 기원을 보여주는 짧은 영상을 내보내는데, 이게 편집이 잘 되어 있어서 처음 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존 관객도 과거 TV시리즈와 만화, 리안의 <헐크>와 다른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진지한 이야기를 펼치느라 다소 산만해진 <헐크>와 달리, 오직 싸움과 파괴에 집중하기 때문에 몰입도 더 잘 된다.

 

  더 깔끔하다고 해서 더 잘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헐크가 나오는 점을 빼곤 두 영화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우열을 따지긴 어렵다. 두 영화는 브루스 배너(에릭 바나VS 에드워드 노튼)가 헐크로 변신한 때부터 크게 다르다. 에릭 바나가 연기한 브루스 배너는, 처음부터 자기 속에 헐크를 품고 있었다. 괴물을 심어준 건 아버지다. 헐크는 핏줄의 속박을 뜻한다. 과학은 괴물을 깨운 도구일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과학 기술이 책임을 면할 순 없다. 헐크를 연구해서 명예와 부를 얻으려던 탈봇(조시 루카스)은 비참하게 죽고 만다. 그의 죽음은, 비판 의식 없이 대자본과 결탁한 '순수한' 과학자들을 향한 경고 메시지다.

 

 에드워드 노튼의 배너는 다르다. 그가 헐크로 변한 건 예상하지 못한 사고였다. 헐크는 바깥에서 온 '병원균'이고, 배너는 그것에 감염된 순수한 피해자일 뿐이다. 이런 설정 뒤에서 마치 서구의 독백이 들리는 것 같다. 서양 과학 기술은 진리의 탐구로 시작했지만 그 산물은 폭격기와 독가스와 핵무기 뿐이었다. 서구인들은 그것이 사고였다고 말한다. 예상하지 못했고,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독백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변명한다.

 

 헐크를 추적하는 로스 장군도 두 영화에서 너무나 다르다. <헐크>의 샘 엘리엇은 의무를 다하는 성실한 인간이다. 물론 그는 헐크에게 잔인하게 군 면도 있지만, 그것은 국가 안전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었을 뿐이다. 탈봇이 대신 헐크를 도발하는 악역을 맡았기에, 로스 장군은 악역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인크레더블 헐크>의 윌리엄 허트는 누가 봐도 분명한 악당이다. 그는 배너를 속여 사고를 일으키게 한 장본인이다. 진실이 알려지는 걸 막고, 배너의 고통 따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단지 그를 사로잡아 무기로 쓸 생각 뿐이다. 양민의 고통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은 군부 독재자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에 헐크와 싸우는 건 브론스키(팀 로스)지만, 그의 타락도 로스 장군 탓이 크다.

 

 사실 브론스키는 어차피 타락할 팔자였다. 군인에게 평화는 재앙일 뿐이다. 끊임없이 싸우지 않으면 살아있을 의미가 없다. 물론 최고위 장군과 군수 사업가들은 이렇게까진 병들지 않는다. 1차 세계 대전에서 루즈벨트 대통령과 페탱 장군은 승자였다. 빌헬름 2세와 힌덴부르크 장군은 패자였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미치거나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진 않았다. 전선에서 싸운 병사들만 미치고 병들고 장애인이 되었다. 군부가 보기에 그들은 이제 위험하고 쓸모없다. 헐크는 이런 전쟁의 모순까지 보진 못한다. 그는 위험한 병균인 브론스키만 제거한다. 이로서 그와 군부는 타협한다. 그리고  그는 캐나다에 몸을 숨긴다. 미국-세계의 '완충 지대'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모든 고뇌를 잊어버릴 수 있는 도피의 땅이다. 평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도인이 되고 샹그릴라로 떠나버렸듯이, 배너도 이제 명상을 하며 자기 수련에만 힘을 쏟는다. 사실 <헐크>에서도 배너는 먼 곳으로 떠나지만, 그는 여전히 불의를 향한 투쟁 의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헐크는, 표정은 여전히 거칠지만, 양순해졌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 사람'이 등장한 건 우연이 아니다. 군부는 이제 순해진 헐크를 잘 꼬셔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슈퍼히어로지만 더 영리하고 지도력이 있는 '그 사람'은, 헐크를 '미국의 영웅'으로, 정확히는 자기의 새로운 무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타협에 한몫하는 건 배너의 연인이자 로스 장군의 딸인 베티다. <헐크>에서 제니퍼 코넬리의 베티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사건에 휩쓸린다. 인간 배너와의 관계도 고통과 아픔이 더 많았는데, 그가 괴물로 변하기까지 했으니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실 군부에 헐크를 넘겨주다시피 하는 그녀의 행동은 배신으로 보인다. 하지만 브루스와의 이별은 그녀에게 '해방'일 뿐이다. 반면 <인크레더블 헐크>의 리브 타일러는 강하고 적극성이 있다. 그녀는 끝까지 배너와 함께 하려 하고, 맨몸으로 장군의 작전을 막으려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베트남전 반대 시위 현장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조상 중에는 노예 탈출 열차를 운영한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순수하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미국의 청춘이다. 동시에 그녀는 미국 반전 평화 운동의 환상, '민중은 선하다'는 환상의 산 증거가 된다. 그녀는 처음에는 아버지=군부를 경멸하지만, 마지막에 가면 장군 나름의 '애국심'을 이해하는 듯 하다. 이렇게 그녀=미국 민중=평화 운동 역시 군부와 타협한다. 결국 불쌍하게 된 건 브론스키 뿐이다. 하다못해 팀 로스가 톰 크루즈처럼 생겼다면, <7월 4일생> 속편을 찍었을지도 모를련만.

 

2009.01.06 11:54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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