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민망한 자기 만족만 있었다

연말 시상식은 '자위행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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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원(jungs21)등록 2009.01.05 11:51
2008년에도 변한 게 없었다. 한국 방송 3사가 연말마다 펼쳐놓는 가요대상과 연기대상과 연예대상, 그리고 역사(만) 오래된 대종상과 청룡상 영화제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집단 자위쇼를 보는 느낌이 든다. 민망한 낱말이란 건 알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시상식을 움직이는 원리가 자위행위와 똑같기 때문이다.

1. 혼자 한다.

연말 시상식에는 평가와 응답, 반론 등 진정한 상호 작용은 없다. 몇몇 스타와 시청자, 방송사는 모두 혼잣말을 할 뿐이며, 자기 기준에만 갇혀 있을 뿐이며, 아무 자성이나 비판 없이 혼자 만족한다. 기껏 있는 상호작용은, 시상식 직후 인터넷에 넘쳐나는 욕설과 비아냥 뿐이다.

2. 자유롭고 한계가 없는 환상

  방송사는 마음대로 '명배우',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 '인기 가수', '문화 아이콘'을 만들고, 시청자에게 축하해주라고 강요한다. 자신의 왕국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 그러나 아무도 공감하지 않기에, 그 왕관이 종이로 만든 싸구려처럼 보이는 건 단점이다.

3. 환상은 실제 현실에는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TV를 오래 봤던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가을이 지나가기도 전에 그 해 수상자를 거의 다 맞출 수 있다. 이건 무슨 뜻인가? 이 '대상' 시리즈는 실제 문화의 흐름에는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애초부터 몇몇 방송사 관계자들과 대형 기획사 사장들의 쇼라는 뜻이다. 대종상과 청룡상을 받았다고 광고하는 영화를 본 적 있는가? 이 두 영화제는 역사만 길 뿐, 부진한 영화를 재조명받게 하지도 못하고, 잘나가는 영화에 더 힘을 주지도 못한다. 가요대상이 음악계의 흐름을 반영한다고 말하는 건, 강남 부유한 자제들 문화가 한국 젊은이 문화를 대변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연기대상과 '연예대상'은 빈껍데기 덕담만 나도는 새해 가족 모임같은 자리다. 이런 시상식에서도 물론 칭찬받고 주목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 그러나 영화 배우 김윤석은 대종상을 받지 않아도 이미 훌륭한 배우다.


물론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 에미 상도 미국 또는 서구인만의 축제라는 점에서 '자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시상식은 최소한 한 나라 또는 문화권의 추세와 유행을 반영한다. 고작 방송사 안에서나 통할 한국 시상식에 견줄 수 없다. 더구나 이들 외국 시상식은 방송사가 아닌 독립한 주최 세력이 이끈다. 물론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정성과 권위가 훨씬 높다.

시상식을 밥그릇 확인하는 자리로 여기는 한국 현실에서 독립 시상식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든다 하더라도 방송사들이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스타 챙기기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시청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일단 공동 수상이라는 뻔히 보이는 제 사람 챙기기, 신곡 홍보에만 정신 팔린 인기 가수의 공연, 인터넷 영화제에나 어울릴 누리꾼 투표 등 병폐를 없앤 뒤에야, 시상식의 권위 이야기도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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