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닦아서 벤츠를 탄다고!?

장사도 못할 처지에 놓인 구두닦이 노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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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선(goyusun)등록 2008.12.23 11:12

쓸쓸한 구두박스 활력넘치는 경제도시와 대조를 이루는 철거될 구두박스 ⓒ 고유선


차가운 양철박스에 난로 한 대 놓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닦아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구두닦이다. 냄새나는 구두에 손을 넣고 쓱싹쓱싹. 그렇게 10분을 닦으면 2500원이 손에 쥐어진다. 누구보다도 진실하게 오늘을 사는 그들이지만 2010년이면 우리는 그들을 볼 수 없다.

구두박스 철거는 이미 실시되고 있다. 도로를 차지하여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고 미관상으로도 보기 좋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현재는 2억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다. 서울의 한 고궁 앞에서 장사를 계속해오던 할아버님 한 분도 재산이 2억 이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얼마 전 박스를 철거당했다. 이 분은 현재 한 겨울 추위에 맞서 자전거에 도구를 싣고 다니시며 구두를 닦으신다.

2억 미만의 상인들도 안심할 수 없다. 이들은 2007년 11월 서울시가 제정한 `보도상 영업시설물 관리 등에 관한 조례'에 의거하여 두 차례만 신청할 수 있는 ‘1년 동안 도로를 점용할 수 있는 권리’를 모두 썼다. 더 이상 갱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들도 2010년이면 모두 박스를 철거당하게 된다.

반면, 건물에 권리금을 주고 입주하여 그 빌딩의 구두를 ‘월부’로 받아다 닦는 ‘입주구두닦이’들은 이 조치가 반갑다. 박스 철거로 외부에서 더 이상 구두를 닦을 수 없게 된 손님들이 다시금 건물 안에서 구두를 닦게 되었기 때문이다.

광화문에 적을 두고 있는 입주구두닦이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보통 하루에 약 100켤레 정도의 구두를 닦는다고 한다. 반면 인터뷰를 한 건물 바로 뒤편에 위치한 박스구두닦이는 하루 20~30켤레밖에 일감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입주구두닦이는 외부구두닦이처럼 구두를 한 번 닦을 때마다 돈을 받는 구조가 아닌 ‘월부’로 결제를 받는다. 1주일에 2번을 닦겠다고 하면 월 13,000원을 3번을 요청하면 15,000원을 받는다. 수거와 배달 서비스는 물론 제공된다. 외부구두닦이의 경우도 한 달 단위로 구두를 닦아주고 수금을 하는 시스템이 있지만, 수거와 배달이 어려운 환경 때문에 손님이 직접 와서 닦아야만 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입주구두닦이 여름이면 더욱 힘들어요 ⓒ 고유선


입주 구두닦이는 권리금을 주고 주차장이나 비상구의 통로를 ‘분양’받으면 그 이후부터는 건물주에 별다른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월세가 없다는 말이다. 구두를 닦기에는 경제적으로 좋은 환경이지만 이들에게도 고충은 있다. 바로 냉․온방시설이 없다는 점이다. 일터가 건물의 지하나 비상계단이다 보니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반면 외부구두닦이는 구두박스에 여유가 되는 대로 에어컨이나 난로를 설치할 수 있다.

입주․외부 구두닦이를 비교해봤을 때 확실히 경제적 환경과 비전은 입주구두닦이들이 더 좋다. ‘2010년이면 더 비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입주구두닦이의 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구두를 닦아서 벤츠를 샀다더라’ ‘구두박스 앞에 세워진 고급차들이 사실은 구두닦이의 것이라더라’ 등의 소문으로 구두닦이는 한 때 ‘알고 보면 돈 되는 직업’이라는 말도 들었었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었다. 실제 만나본 구두닦이들은 이 말에 실소를 터뜨리며 “구두만 닦아선 벤츠를 살 수 없다”고 말했다. 구두닦이로는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구두닦이들은 이제 생활터전을 빼앗기게될 위기에 처했다.

그들은 벤츠를 바라지 않는다.  단지 생활의 터전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연초에는 이를 위해 길가에서 구두수선대를 운영하는 상인들이 모여 서울시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들은 절박하다.

반짝반짝 흰 천에 구두약을 묻혀 구두를 닦는 손 ⓒ 고유선


외부 구두닦이로 광화문에서만 40년을 일해 온 한 구두닦이는 이제 내년이면 평생 동안 해온 일을 버리고 새로운 돈벌이를 찾아 나서야 한다. 힘들고 천한 직업이라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텨온 40년이었다. 입주구두닦이들의 공세에 점점 밀려가고 있지만 천직이다 싶어 참아온 40년이었다. 그런 40년이 이제 서울시청의 ‘미관’과 ‘통행편의’를 위한 행정에 의해 2010년 막을 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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