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포항 H기업 해외투자기업 연수생의 고민

검토 완료

김효성(elchevive)등록 2008.12.24 14:58

H기업의 해투연수생인 부쭝히에우 씨는 귀국 직전까지 임금을 받지 못했다 ⓒ 김효성

 
해외투자기업 연수생(이하 '해투연수생')제도는 해외투자기업의 노동자를 국내 모기업에 초청해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본래 목적과는 달리 해외법인을 가진 국내기업의 인력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로 악용되고 있다.
 

경북 포항시에 위치한 H기업에는 8명의 베트남 해투연수생이 일하고 있다. 그들은 9월 부터 12월 현재까지 석 달간 단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했다. 귀국일이 가까워져오자 해투연수생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몇몇 연수생은 만약 회사가 돈을 주지 않으면 한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에게는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기쁨보다 임금을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큰 듯했다.

 

연수생 제도를 악용하는 H기업

 

8명의 해투연수생들은 베트남 동나이(Dong Nai)성 출신이다. H기업의 동나이 현지법인은 올해 7월, 한국으로 파견할 연수생들을 모집했고 8명의 연수생들은 한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지원했다.

 

법무부가 2003년 제정한 '해외투자기업 산업연수생 등에 대한 사증 발급인정서 발급 및 관리에 대한 지침'에는 해외기업의 근무경력 6개월 이상이 연수생의 선발 요건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베트남 해투연수생들은 H기업 현지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전혀 없다. H기업 현지법인에서 계약서에 서명한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럼에도 H기업은 거짓서류를 꾸며 법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연수생들을 선발했다. 편법을 저지른 이유는 분명하다. 연수생을 초청하면 적은 비용을 들여서 노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체불임금 560만원은 어디로?

 

부쭝히에우씨의 10월 급여 지급명세서.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면 70만원이 부족한 금액이다 ⓒ 김효성

베트남 해투연수생들은 9월 10일부터 12월 5일까지 약 3개월 동안 포항시에 위치한 H기업 국내공장에서 일했다. 회사에서는 9월 임금으로 50만원을 지급하고 10월부터는 최저임금인 시급 3770원을 적용하겠다고 통보했다.

 

부 쭝 히에우(Vu Trung Hieu·26)씨는 10월 한 달간 기본근로 168시간, 연장근무 90시간, 야간근무 39시간, 휴일근무 84시간으로 총 381시간을 근무했다. 회사 측의 방침대로라면 시급 3770원을 적용해 총 143만6370원을 10월분 임금으로 지급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연장·야간·휴일 근무에 따른 임금 지급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연장과 야간근무의 경우 최저시급 3770원의 150%에 해당하는 시급 5655원을, 휴일근무의 경우 250%에 해당하는 시급 9425원을 적용해야 한다.

 

따라서 수정된 시급을 적용할 경우 기본근로시간에 따른 임금 63만3360원, 연장근무에 따른 임금 50만8950원, 야간근무에 따른 임금 22만545원, 휴일근무에 따른 임금 79만1700원으로 총215만4555원을 지급받아야 한다. 이 금액은 H기업이 부 쭝 히에우 씨에게 지급 예정인 금액과 무려 70만원 이상 차이를 보인다. 회사 측에서 8명의 베트남 연수생에게 미지급한 금액은 10월 한 달만하더라도 560여만 원에 이른다.

 

생활비는 당연히 임금에서 제외한다?

 

H기업의 해투연수생 쩐황안(23)씨. 그는 얼마전 H기업 베트남현지공장에 취직하려 했지만, 회사측의 거부로 실직의 위기에 몰렸다. ⓒ 김효성

산업연수생 노동부 예규에 따르면, 해투연수생을 초청하는 국내 모기업이 연수생에게 기숙사 및 생활비용 전반을 의무적으로 제공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기업에서는 연수 기간 동안 지급한 생활비 47만원을 임금에서 공제했다. 연수생들은 매주 1만3000원씩 지급되던 생활비가 임금에서 빠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쩐 황 안 (Tran Hoang Anh·23)씨가 말했다.

 

"회사에서는 우리에게 한 번도 임금을 준 적이 없어요. 대신 일주일에 얼마씩 식료품 살 돈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이 우리가 받을 임금의 일부인 줄은 몰랐어요."

 

60%에 이르는 무단 이탈률

 

H기업의 경우, 해투연수생의 이탈률은 무려 60%에 이른다. 2005년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해외투자기업연수생 노동시장 실태분석의 조사에 따르면 연수생의 이탈률이 40%를 초과하는 사업체의 경우 57.7%가 해투연수생을 활용하는 주된 이유를 '국내 모기업의 인력부족을 충원하기 위해서'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회사에서는 연수생 개인 여권의 사측 보관, 임금의 체불 등의 불법적인 장치를 이용해서 연수생의 이탈을 막고 있지만 큰 효과가 없는 실정이다. 노동력 착취라는 검은 목적 하에 제도를 악용하는 H기업의 태도가 노동 환경에 악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연수생들은 현재와 같은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기보다는 불법이더라도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고자 한다.

 

기숙사 청소를 게을리하면 임금의 100불을 감한다?

 

기숙사 곳곳에 '청소를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월급에서 100불을 제하겠다'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 김효성

인격 모독에 관한 문제점도 노출되었다. 베트남 해투연수생들은 H기업이 제공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 호실당 5명 정도가 생활하고 있으며 침대와 간단한 가구가 갖춰져 있어 생활하는데 큰 불편은 없었다.
 
그런데 방 곳곳에 H기업 관리자의 것으로 보이는 글이 붙어 있었다. 청소를 깨끗이 하지 않으면 임금에서 100불을 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응우옌 반 호아(Nguyen Van Hoa· 29)씨가 말했다.
 

"우리가 쓰는 방을 깨끗이 정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회사에서는 조용히 말할 수도 있는 일이었어요. 베트남 사람이기 때문에 더럽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요? 심지어 그렇다 하더라고 임금을 깎는다는 방침은 이해할 수 없어요."

 

회사측, 연수생들의 현지공장 취업 거부

 

12월 8일 귀국한 8명의 연수생 가운데 H기업 베트남 현지공장에 취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H기업에서는 계약 당시 연수생들에게 귀국 후 현지 공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는 말을 바꾼 상태다. H기업의 연수생 초청 목적이 노동력 착취임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단면이라 하겠다.

 

H기업에서 이처럼 불법을 자행해 왔는데 단 한 번도 제재를 당하지 않은 이유는 관리 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에 있다. 관리 기관인 출입국관리국의 인력부족, 전문성 결여 등의 문제 등으로 인해 해투연수생 제도는 산업연수생제도의 빈자리를 빠르게 매워나가고 있으며 기존의 산업연수생제도가 지니고 있었던 문제들을 그대로 안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H기업만의 것만은 아니다. 해투연수생 제도를 활용하는 대기업들 대부분이 다양한 편법으로 연수생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해투연수생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장기적으로는 노동력을 착취의 경향이 짙은 해투연수생제도를 폐지하기 위해서, 시민사회의 각성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산업연수생 제도의 변화와 폐지를 앞당긴 것은 다름아닌 시민사회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08.12.13 19:11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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