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에 빛나는 홍미숙 '신호등' 작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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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kjk4131)등록 2008.12.08 12:00
 “인생도 신호등과 다를 게 없다. 파란 불도 켜졌다. 빨간 불도 켜졌다 하니 그렇다. 어쩌면 빨간 불이 켜졌을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인생살이가 어려운 것이다.”

중학교 3학년 2학기 국정 국어교과서에 수록된 '신호등'의 일부분이다.

홍미숙 신호등 작가 ⓒ 홍미숙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보는 신호등에서 인생의 진리를 발견한 개성 있는 작가의 교훈적인 시각과 통찰력이 돋보인다. 인생을 빨간불과 파란불이 번갈아 켜지는 신호등과 비유한 홍미숙 수필가를 찾아가는 안양5동 쌍떼빌 아파를 찾았다.

진솔한 글의 세계

“집에 있으면 전화도 오고....... 일 못해요 ”
작가는 새 나라의 어린이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고 한다.
후다닥 집안일 하고 매일 9시면 책도 보고 글을 쓰기 위해 석수도서관으로 향한다.
20년을 수리산자락에서 창작을 해 온 작가는, 차를 마시며 마당의 나뭇가지에 앉은 까치소리에도 감격한다고.

그동안 출간된 4권의 수필집을 차례로 펼치자 “별빛 쏟아지는 고향 하늘 아래서 멍석 펴놓고, 감자 수제비를 먹고 싶다. 옥수수와 통감자. 고구마도 먹고 싶다.”는 대목에서 성장의 모태였던 자연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어머니의 손은 손톱 깎기가 필요 없다. 손의 효용가치를 무한히 발휘하여 사시기에 손톱이 닳아 뭉뚝하기 때문이다. 손톱을 길게 길러 빨간 매니큐어를 예쁘게 칠한 여인들의 손과는 대조를 이룬다. 어머니의 손에는 매니큐어 대신 머큐로크롬이 발라져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진솔한 삶의 향기가 짙게 묻어나는 사는 이야기는 온통 주옥같은 아름다운 글의 연속이다. 한국문인협회 김대규 안양지부장은 “홍미숙의 수필은 산 속 옹달샘에서 세수를 막 하고 났을 때의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의 수필을 읽고 나면 마음이 맑아지고 순수해진다.”고 평했다.

작가의 성장 과정.

1959년 경기 화성에서 출생한 작가는 “여식 보아라.”로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할머니가 불러주는 대로 편지를 받아쓰기 시작했다.
연필에 침을 묻혀 가며 꾹꾹 눌러쓰던 편지는 일주일에 한 번 꼴이었다.
한없이 크게만 보였던 4명의 고모에게 할머니를 대신해서 반말을 쓸 수 있는 유일한 기회도 재미있었고, 답장이 오면 큰소리로 몇 번이고 읽는 즐거움도 컸던 시절이다.

작가는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뒷동산 문인석에 올라가서 놀거나, 감나무에 걸터앉아서 책 읽기를 즐겼다.
고향집 마당 가득 그림을 그리며 놀았던 끼는 표어와 포스터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휩쓸 정도로 우수했다.
새마을 운동가였던 부친이 모아둔 문고를 모두 통독했고, 중학교 3학년까지 육상 선수로 뛸 정도로 매사에 다재다능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공채로 입사, 경리사원으로 근무하면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23세에 사범대학 사학과에 합격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직면했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을 누를 수는 없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신문사에서 리포터와 명예기자로 활동했다.
책읽기를 즐겼던 작가는 안양시 여성 백일장 대회를 통해 문학에 입문, 1995년 창작수필에 ‘어머니의 손’이 당선되며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1999년 첫 번째 수필집 ‘그린벨트 안의 여자’에 이어 2집 ‘추억이 그리운 날에는 기차를 타고 싶다’를 출간했다.
작가는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박목월 등 유명작가의 글을 읽으며 어떻게 하면 교과서에 실릴 수 있을까?”를 수없이 생각했었다고.

부족해야 발전한다.

2001년 문학잡지에 발표했던 ‘신호등’이 2003년, 국정교과서에 실리며 작가의 3집 ‘마중 나온 행복’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몇 달째 인터넷 판매 1순위가 지속되었다. 교보문고 화재의 신간으로 특별 전시되던 2006년, 안양시 문화예술진흥지원금으로 4집 ‘작은 꽃이 희망을 피운다.’를 출간하며 한국 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이름이 수면위로 떠오르던 3년 전, 전문가로 초청한다는 방송국의 출연요청이 있었다고.
방청객으로 나오라고 해도 못 나갈 사람이라서 글을 쓴다며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교수 한분을 더 초청하겠다는 방송국의 배려로 출연했다.

평소 뉴스 외에는 TV를 보지 않았던 작가는 방송의 흐름을 몰랐기에 초긴장 상태였다고. 방송에 출연했을 때 사회자는 “방송을 진행하면서 말 못해서 119에 실려 간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유머러스한 한 마디에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며 다소 긴장이 풀렸다고 한다.

작가는 “내가 부족해야 발전해요. 명문대학교 출신이 한번 노력하면 될 것을 나는 열 번을 노력해서 이루지만, 그래서 힘들어 한 적은 없어요.”라며 매사에 긍정적이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창작수필회원. 화요문학 동인회장으로 활동하며 안양시 공무원인 남편 권주택씨 사이에 남매를 둔 어머니다.

홍미숙 작가의 수필에는 향토적 정서가 물씬 풍기는 언어와 서민적인 편안함이 있다. 자연 속에서 자란 작가의 어린 시절은 꿈을 잉태하는 산실이었고, 농촌마을의 서민적 정서는 고향집 어머니의 푸근함으로 독자의 마음 밭을 촉촉이 적시고 있다.
덧붙이는 글 안양시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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