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도 좋지만 좀 쉬어 가는게 어떼?

금융위기시대의 로맨틱 우화, <내 남자의 유통기한>

검토 완료

노철중(almadore)등록 2008.11.27 15:55

내 남자의 유통기한 영화 포스터 ⓒ 콘스탄틴 필름

아마도 보험 광고였던 것 같다. 소파에 젊은 남자가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다. 그 옆에 무언가를 해달라고 요구하는(물론 돈과 관련된 것이다) 아내가 있다. 그리고 짧은 테이크들로 연속적으로 빠르게 편집되면 그 요구는 점점 더 커지고 동시에 아내도 남편도 쏜살같이 늙어간다. 게다가 옆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던 아들이 눈 깜빡할 사이에 커서 유학 보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영화 <내 남자의 유통기한>를 보는 사이사이에 미래에 대한 장황한 계획을 늘어놓는 ‘이다(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 分)’를 바라보며 짓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오토(크리스찬 울멘 分)’의 얼굴 표정을 볼 때마다 떠올랐던 광고 이미지이다. 

이 영화는 돈이나 성공에 대한 큰 욕심 없이 그저 자유롭고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오토’와 자유분방하지만 동시에 성공에 대한 욕심이 많은 ‘이다’의 좌충우돌 결혼이야기이다. 첫 눈에 반해 단 하루 만에 청혼하고 결혼한 그들의 모습은 매우 로맨틱해 보이지만 그 달콤함은 얼마 가지 못하고 깨져버린다. 임신과 육아 그리고 성공에 대한 열망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이다가 직면하게 되면서부터 그들의 결혼생활은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랑과 전쟁’이 되어 버린다.

설득의 매체인 광고와는 달리 보다 복잡한 감수성의 매체인 영화 사이에 놓인 간극의 차이는 매우 크다. 위 광고의 메시지는 현실적인 가속도의 무게감을 보험으로 방어하라는 것이지만, 이 영화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보다는 인간의 내면들, 즉 삶(현실)에 대해, 욕망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자고 권유하고 있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오토(자연, 사랑, 소통)와 이다(일, 성공, 현실)의 갈등양상들로 구성된다. 내러티브를 주도해가는 것은 이다의 성공 스토리지만 그녀의 승승장구에 제동을 거는 것은 오토가 지향하는 가치들이다.

이러한 갈등은 서로의 노력으로 곧 해결되지만 갈등과 화해는 계속 반복될 뿐이다. 그들이 사는 집의 규모가 커지고 이다가 만드는 의상의 화려함이 더해질수록 부부간의 내적인 감정의 소통은 단절되고 그 폭은 점점 더 넓어질 뿐이다. 또한 그 갈등에 대한 표출은 점점 더 폭력적으로 되고 다시 화해를 향해 상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보다 더 자극적이고 마조히즘적인 유혹을 필요로 하게 된다.

내 남자의 유통기한 점점 화려함에 익숙해져 가는 이다 ⓒ 콘스탄틴 필름


사실 요즘과 같은 신자유주의 체제 내에 자본주의는 욕망을 고도로 발달시킨다. 그에 따른 도덕적 해이가 많은 폐해들을 야기시키지만 거대한 화려함으로 그것을 은폐시킨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부담스러울 만큼 화면이 붉은 톤으로 가득차는 것은 부폐의 과잉을 상징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눈 먼 자본은 자아가 없는 욕망과 같다. 아파트, 뉴타운, 대형마트 등 화려함의 그늘을 보지 못한다. 철거민, 세입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무래도 좋으니 강부자와 대기업만 잘 되면 나라 경제가 발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대운하가 망쳐놓을 한국의 자연은 보지 못하고 오직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한 장면 오토는 현실과 괴리된 듯 붕어에게만 집착한다. ⓒ 콘스탄틴 필름


그러나 필자가 본  살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사실 영화는 매우 유쾌하며 재길 발랄하다. 감독 도리스 되리는 1994년 <파니 핑크>를 통해서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웃음이 묻어나는 따스한 감동으로 승화시킨 적 있다. 주인공 파니는 늘 검은 의상을 입고 다니며 자신이 누울 관을 만들고 있다. 빈민들이 모여살고 고장 투성이의 지저분한 아파트는 늘 다툼이 끊이질 않는다. 아파트 주인은 세입자들을 돈 내라고 달달 볶는다. 하지만 파니는 특유의 상상력과 포용력으로 주위 환경을 껴안으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내 남자의 유통기한>에서도 도리스 되리는 조화와 소통을 이야기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 영화의  ‘우화적인 화법’은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에서 내래이터로 등장하는 잉어 부부는 인간이었으나 서로 너무 싸워서 잉어가 되었다. 그들이 다시 인간이 되는 방법은 오직 오토와 이다가 3년이상 사랑을 지속하는 것이다. 여기서 3년은 '사랑은 3년이면 끝난다'는 속설을 의미한다.

관객들은 과연 잉어 부부가 다시 인간이 될 수 있을까에 관심을 두고 이다와 오토 사이의 코믹하면서 무시무시하고 괴이한 싸움을 지켜보게 된다. 또한 이다와 오토가 그들의 갈등을 해결하고 진짜 현실을 살아가는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 결국 영화는 판타지와 현실 사이를 오가면서 관객들이 두 개의 다른 층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비록 우리는 영화와 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것을 미쳐 느끼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간다. 좋은 영화는 우리에게 다시 생각할 여유를 준다. <내 남자의 유통기한>이 즐기는 영화가 아니라 감상하는 영화인 이유이다.

영화 밖 현실은 냉혹하다. 그러나 현실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다와 오토와 같이 서로 두 손을 마주잡고 사랑을 확인하면서 함께 가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은 딱 3년이 고작'이라는 속설을 믿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단순한 고정관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사랑이 거기서 끝이라고 해도 보다 더 따뜻한 정으로 평생을 함께 살아갈수 있는 것이 부부다.

이처럼 영화는 속설 같은 것에 휘둘리지 말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앞서 말했던 자본의 욕망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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