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주도 자전거 여행-마지막편

검토 완료

장용창(pdnote)등록 2008.11.13 16:46

6. 금괴

 

밧줄을 타고 얼마 내려가자 작은 방이 나왔다. 방에는 한 명의 시체가 기다란 총과 함께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나무 상자 하나가 보였다. 만덕은 매우 침착했다. 나무 상자를 열어보니 금괴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금을 찾아 왔는가?” 물어보는 남자의 목소리에 만덕은 놀랐지만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숨을 죽였다. 제복을 입은 군인의 영혼이 만덕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영혼은 위협적이라기보다 불쌍해 보였다. “금을 찾아 온 것이 아니오. 당신을 보았기 때문이오. 당신의 얘기를 들어 주러 왔소. 어찌 하여 내 앞에 나타난 거요?” 만덕은 침착하게 말했다. 만덕은 이 영혼이 맨 처음 학교 도서관에서 금괴 얘기를 들을 때 스쳐 지나갔던 영상임을 깨달았다.

 

“난 일본군 장교였소. 결7호 작전을 수행하다가 전쟁에 졌으니 철수하라는 명령을 듣고 자살을 했소. 전쟁에 진다는 것은 장교의 수치라 생각했소. 그러나 죽고 보니 후회되오. 사람 사는 게 별 거 있소. 낮이면 일하고 저녁이면 가족들과 오붓이 한 끼 밥 먹고 따뜻한 방에서 누워 자면 그만인 것을. 충성이니 영광이니 하는 것이 허망한 것임을 죽어서야 깨달았소. 헌데 내 육신이 이 동굴 안에 있으니 영혼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소. 나를 도와 주시오.”

 

만덕은 심방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산자는 물론 죽은자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 영혼이 살았을 때 친구였든 원수였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산사람에게조차 친구니 원수니 하는 것은 얼마나 유치한 말인가.

 

“저 금괴는 어떻게 할까요?” 만덕이 오히려 물었다. 수십년 세월을 이 영혼이 금괴를 지키고 있었으니 예의상 물어야 하는 것이다. “금괴가 탐이 나오?” “아니, 전혀요.” “그렇다면 다행이오. 금괴란 사람을 파멸로 이끌 뿐이오. 저 밖에 두 아이들도 혹시 이 금괴를 알게 된다면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소.”

 

만덕은 방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뒷쪽으로 다시 좁은 틈이 보이고, 그 아래로는 다시 낭떠러지처럼 수직으로 틈이 있었다. 만덕은 금괴가 담긴 나무 상자를 그 틈으로 밀어 넣었다. “당신이 고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 드릴께요.” 만덕은 이 말을 남기고 총을 챙겨 위로 올라갔다. 밧줄을 단단히 잡은 후 아이들에게 끌어올리라고 소리쳤다.

 

남준과 창완이 차례대로 밧줄을 타고 내려가 유해를 보고 왔다. 동굴 밖으로 나가 아이들은 내일 일을 의논했다. 남준은 금괴가 없어 아쉽다고 했지만, 창완은 총을 발견한 것도 대단한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다음날 어른들에게 알려 유해와 총을 처리하도록 하였다. 유해를 일본으로 보내는 일은 어른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며칠 후 만덕은 일본군 장교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의를 고향마을 선흘리의 본향당에서 홀로 지냈다.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자신의 역할이 점점 더 분명하게 보였다.-끝.

 

 

2008.11.13 14:23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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