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기술자 이근안 목사에 대한 생각

검토 완료

박철(pakchol)등록 2008.11.10 21:43
@IMG@

고문 기술자 이근안씨가 목사가 되었다고 해서 찬반 여론이 비등한 것 같습니다. 생각과 입장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그의 간증 동영상을 보고 아연실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근안씨의 동영상을 보면서 지난 여름 보았던 영화 밀양이 생각났습니다.
주인공 신애가 성경말씀에 나오는 대로, “원수를 용서하라”라는 말씀에 따라 자기 아들을 죽인 웅변학원 선생을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고, 형무소로 찾아가지요.

그리고 그에게 말합니다.
“내가 하느님을 믿게 되었다고,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위로를 받게 되었다”고. 그러면서 하느님의 은혜로 이렇게 내가 당신을 용서해 주러왔노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살인자는 오히려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마치 당신의 용서가 필요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은 나도 감옥에 들어와서 하느님을 믿게 되었고, 그래서 마음에 평화를 얻게 되었다”고. 이 이야기를 들은 신애는 기가 막혔습니다.

무릎을 꿇고 빌면서 용서해 달라고 애원해도 해줄까 말까 고민할 판인데, 그는 하느님이 이미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당신의 용서가 필요 없다는 듯이 말했기 때문입니다.

신애는 그만 그 자리에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뛰쳐나와 이렇게 외칩니다.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았대요. 근데 내가 어떻게 다시 그 사람을 용서하냐고요!”

신애는 그만 완전히 미쳐버리게 됩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잘못된 용서관을 날카롭게 비판한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의 문제, 아니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화 속에 나오는 살인자처럼, 그렇게 나의 죄를 하느님에게서 용서받았으니 당신의 용서가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태도입니다.

교권의 중심에 서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보십시오. 교회를 사유화해서 자식에게 세습하고, 교회의 재정을 마음대로 유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에 급급하고 온갖 부정한 일을 저지르고도 죄의식이 없습니다. 잘못을 조금도 시인하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대형교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교인들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지난 대선에 대통령 선거를 치루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지금은 대통령이 된 이명박 장로, 온갖 부정은 다 저지르고, 줄줄이 사탕처럼 그동안 그가 저지른 비리들이 연일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는데도 그의 인기가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본인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눈곱만큼 반성하는 태도가 없고 또 그것을 크게 문제삼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를 따라 사는 길에 있어서 가장 큰 덕목이 ‘용서’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한국교회는 참된 용서가 무엇인지를 잘못 가르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원한을 품고 있다고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마 5:23-24)

하느님께 예배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형제자매에게 용서를 빌라는 말씀은 가르치지 않고 어떤 죄가 있어도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면 받을 수 있다고만 가르친 결과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그리스도인을 양산한 결과입니다. 그러다보니 양심마비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근안의 간증을 잠깐 들으면서 신애의 아들을 죽인 웅변학원 원장이 생각났습니다. 하느님께 용서를 받았으니 더 이상의 용서는 필요 없다는 듯이 묘하게 웃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참으로 섬뜩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가 목사가 되었다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듭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