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6.15가 감옥으로 끌려갔습니다!

구속된 통일운동가의 아내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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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유진(woodong94)등록 2008.10.17 18:38
지난 달 2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강진구 전 집행위원장의 아내 박선혜씨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절절한 심정을 담은 편지를 보내왔다.

김대중 선생님!
꺼져가는 6.15의 불씨를 살려주십시오.
해맑던 민족의 옥동자 6.15가 ‘국가보안법’이라는 수갑을 차고 끌려간 지 20여 일째!
민족을 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시작한 단식으로 야윌대로 야윈 6.15를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십시오.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이렇게 눈물로 호소합니다.

구속된 실천연대 강진구 전 집행위원장의 아내 박선혜씨 9월 29일 국가정보원 앞에서 진행된 규탄기자회견장에서 ⓒ 천창영


저는 9월 27일 국가보안법으로 남편을 국정원에 빼앗긴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우리 아이 아빠에게 씌워진 죄목은 ‘남북간 민간통일운동단체들의 승인된 접촉에 참가한 것이 북의 지령을 받기 위해 잠입, 탈출하고 회합, 통신했다’는 것입니다. 615남북공동선언 실천운동을 한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북의 지령에 따른 이적단체라고 합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체포와 구속에 묵비권과 20여 일의 단식으로 4명의 젊은 6.15청년들의 건강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정말 억울하고 기막힌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합니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명칭에서처럼,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두 손 맞잡고 합의한 역사적인 공동선언을 잘 실현하고자 그 해 10월 21일 결성한 민간 통일운동단체입니다.
지난 8년간 관이 하지 못하는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 오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사업을 하기도 했는데 하루아침에 북의 지령을 받은 이적단체로 낙인찍는 건 어느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실천연대가 공개적이고 합법적으로 통일운동을 해온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입니다.

9월 29일 구속된 실천연대 강진구 전 집행위원장 첫째 준일이, 둘째 효준이와 행복한 시간을 담은 사진 ⓒ 박선혜


김대중 선생님!
역사의 수레바퀴는 퇴보하고 있는 걸까요?
6.15를 부정하는 게 애국인 시대가 왔습니다. 민족을 적으로 규정하고 서로를 반목하고 질시하며 대화조차도 하지 않는 지금의 모습은 과거 군부독재시절로 회귀한 듯합니다.

‘잃어버린 10년 되찾기’라고 했던가요?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 되찾기가 6.15와 10.4선언을 부정하고 통일세력을 제물로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성난 파도처럼 들고 일어난 촛불의 민심을 채 읽기도 전에 배후세력이 있다느니, 북의 지령을 받은 좌파세력이 개입되어 있다느니 떠들어대면서 색깔공세와 빨갱이 타령을 하는 모습에서 정말 그들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남편을 찾아다녔던 국정원, 검찰, 구치소에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소리가 ‘시대가 달라졌다’였습니다. 이 정부 이전의 모든 일은 깡그리 잊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구속과정에서 공안당국의 일련의 반응을 보면서 혹시 이들이 할 수만 있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두고 지난 10년의 일들을 모두 뒤집고 싶은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어제까지 제가 알던 세상은 오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근조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죽었다'는 의미로 상복시위를 하고 있는 실천연대 구속자의 아내들 ⓒ 하유진


김대중 선생님! 
미국과 북도 화해의 두 손을 잡았습니다
며칠 전 미국이 북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시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로 향한 발걸음이 빠르게 진행될 거라는 전망까지 쏟아져 나오더군요. 모르긴 몰라도 ‘북미는 화해 중’인 것 같습니다.
철천지 원수같던 전쟁의 당사자들도 손을 잡는 지금, 현 정부는 왜 민족을 다시 적으로 규정하고 대화를 단절하는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걸까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또다시 먹히지도 않을 색깔공방을 선택한 건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입장이 곤란하다면 이럴 때일수록 우리 아이 아빠 같은 민간 통일단체들을 앞세워 많은 일을 부여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힘쓰는 것이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도대체 세상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길래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김대중 선생님!
국민을 섬기는 당신의 철학이 그립습니다
선생님께서 일전에 말씀하셨던가요? ‘국민의 흐름속에서 한번도 이탈한 적이 없다’고, 그래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국민은 의로운 사람을 돕고 악한 사람을 벌한다는 선생님의 지론처럼 촛불을 두려워하는 자야말로 진정 악한 사람이 아닐까요?
새삼 이 정권 아래에 서고 보니, 선생님이 간직한 민족과 통일에 대한 경륜이 무척 소중하고 커 보입니다. 단순한 이익추구나 실용주의의 어설픈 잣대로 민족의 미래를 망치는 어리석은 시각을 버리고서야 진정한 국민의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앞선 경륜을 따르려는 겸손함이 필요할텐데요. 

합법이 하루아침에 불법으로 둔갑되고, 통일운동이 바로 이적행위가 되며, 남북 정상간의 약속인 6.15와 10.4선언이 순식간에 거짓말이 되는 기막힌 현실속에서 제가 기댈 곳은 촛불의 양심 밖에 없는 듯 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안락함보다 민족의 하나 된 미래를 더 갈구하며 그 실천에서 행복을 찾던 우리 아이 아빠를 도와주고 지켜줄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남편이 목숨같이 여겼던 6.15공동선언을 살려줄 유일한 희망도 그 속에 있음을 분명히 깨닫고 있습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남북공동선언 발표, 답례하는 두 정상 ⓒ 연합뉴스


미친 소 싫다는 초딩 아들 손을 잡고 통일조국의 주인이 될 우리 둘째를 업고 민주주의와 평화, 통일을 위해 다시 촛불 하나를 들고 광화문으로 달려갑니다.
김대중 선생님께서 언제나 변함없이 평화와 통일로 가는 험난한 여정에 든든한 버팀목으로 서계시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덧붙이는 글 지난 달 27일 오전 6시경 국정원과 경찰은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사무실을 비롯해 대표진과 간부들의 집, 유관단체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연행을 자행하였다. 이번 압수수색과 연행과정에서 노트북과 데스크 탑 컴퓨터 30여대를 비롯하여 각종 연구서적, 물품이 압수당했으며, 최한욱 실천연대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전, 현직 간부 5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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