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차라리"압박붕대 사용 금지법"을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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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hantanet)등록 2008.10.06 14:34

(주장)-한나라당은 차라리 압박붕대 사용금지 법안을 만들라

최진실이 죽었다. 파란만장한 삶을 마치고 잠들었다.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의 호들갑이 또 우리를 우울하게 할 모양이다. 그중의 압권은 정치권이 벌이는  ‘최진실법’ 논쟁이다. 이른바 인터넷 실명제와 사이버 모욕죄의 신설이다. 그것도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최우선 목표로 추진한다고 한다.

입법의 논리는 최진실은 사이버상의 허위사실로 인해 너무 괴로운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사실상 사이버 테러의 희생자였다는 것이다. 이에 야당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아전인수법이라고 맞서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나라당의 진단과 처방은 배 아픈데 ‘아까징끼’바르는 격이고 민주당은 체증을 암이라 침소봉대하는 느낌이다. 충분한 논의와 논쟁이 필요한 대목인 것은 분명하다.

필자도 한때 포털싸이트 검색순위 1위를 해본 경험이 있다. “국회에 암약중인 간첩”이라는 정치인 아니 대한민국 국민에게 씌워질 수 있는 최악의 호칭이 붙여지던 날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항변해도 소용없다. 수십 ,수백의 카메라가 터지면 머릿속은 온통 하얗게 되고 만다.경험 하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가족 친지 지지자들의 아픔은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렇게 난리 법석을 피우고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또 다른 검색순위에 밀려 사라지지만 당사자의 기나긴 고통은 이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최진실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그녀의 아픔이 왜 시작되었는지 사려 깊게 생각하는 철학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사실 대중에게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사생활은 그 자체로 부담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스타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자주 망각한다. 그들의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는 엄청난 죄악이 되기 일쑤다. 스타는 대중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맞잡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사람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스타는 달리는 자전거에 올라탄 사람처럼 끊임없이 대중의 환호와 관심을 갈구하는 페달 질을 할 수밖에 없다. 한번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 달리던 최진실을 두고 사람들은 오뚜기 처럼 재기했다고 환호했지만 그 마음을 들여다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달리는 자전거에 올라탄 스타 최진실이었을 뿐이다.

우울증과 여러 가지 강박이 그녀의 영혼을 죽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연이어 일어나는 주변 일들이 우울증의 깊이를 더하게 했고 스스로 감당하기엔 술 한잔으로 잊어버리기엔 너무도 버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영혼은 이렇게 메말라 가는데 카메라 앞에서만큼은 꿋꿋하게 웃음을 보여야 하는 아픔이 너무 오래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최근의 루머가 비틀거리는 최진실을 벼랑으로 밀어버린 것이다.

사실 대중스타는 온갖 루머와 소문이 있게 마련이다. 파파라치 또한 유명세에 비레해서 집요함도 그만큼 크다. 그런 입밥에 올라주는 일이 스타의 사회적 효용성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을 반드시 지지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다. 대통령을 비판하고 욕하는 것도 민주주의의 피할 수 없는 반면이다. 루머와 소문 때문에 죽어야 한다면 과연 살아남을 대중스타와 정치인이 몇이나 될까?

최진실 죽음의 근본 원인은 오래된 우울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한나라당의 진단과 처방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차라리 우울증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양시키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이미 대부분의 인터넷 싸이트가 자신의 실명을 제시하지 않으면 로그인 할 수도 없고 댓글을 쓸 수도 없으며 언제든지 신분을 찾아 낼 수 있다. 한나라당의 법안이 아이디를 실명으로 하자는 애기인지는 모르지만 인터넷은 이 세상의 모사일 뿐이다. 차라리 전 국민에게 이름표를 달고 다니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상대방을 모욕하고 음해하고 과장하여 덧씌우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정쟁을 잘(?)하는 것으로 따지면  한나라당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하지 않는가? 또 그걸로 재미도 톡톡히 보았고 말이다. 아예 이참에 ‘압박붕대 사용금지법’을 만드는 건 어떨까?

참으로 치졸하다. 그런데 치졸한 게 먹히는 이 나라가 우리를 우울증에 빠지게 한다.

우울증은 섭섭함에서 시작된다. 최진실도 죽기 전 국민들이 섭섭하다고 절규했다고 한다. 사실 국민들로부터 받은 사랑에 비하면 섭섭함이 더 크기야 하겠냐 만은 우울증은 그만큼 섭섭함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 섭섭한가? 언제 억울함을 느끼는가?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은 집단적인 우울증을 앓고 있는지 모른다. 패배주의는 우울증을 낳고 우울증은 도피를 낳고 도피의 정점은 자살이다. 엄청난 자살률이 이를 반증한다. 우리가 읽어야할 최진실 코드는 이것이 아닐까? 사이버 모욕죄는 상대의 고소고발이 없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국민의 모욕감도 대신 느껴주는 사법부가 고맙고 전지전능함이 놀랍기만한 대목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에 내몰린 대한민국은 이제 사법독재의 길이 활짝 열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고소 고발이 일본의 6배가 많은 나라다. 무엇이든 법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이모든 사회문제가 사법부의 몫이 된다는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군사독재의 물리력 앞에 무릎 꿇던 나약한 서생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 얼마 전 대법원장이 한때 잘못된 판결의 시대가 있었다고 고백했지만 아직도 그 역사가 진행형이라고 믿고 있는 국민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대법원장이 ‘국회가 법을 잘 만들어야지 법원은 법대로 판결할 뿐이야 ’ 라고 사석에서 한 말이 오늘 또렷이 생각나는 것은 한나라당의 입법태도 때문이다.

국민을 ,약자를, 정의를 섭섭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지 그로인해 대한민국이 집단적 우울증을 앓고 있지는 않은 지 되짚어 보아야 할 때이다.

촛불집회 이후 국민들의 우울증은 더 깊어지고 있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는데 집권여당은 모든 것이 좌파 때문이라며 스스로의 책임을 면하는데 급급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괴담과 폭력 때문에 모든 게 어렵단다.

그래서 언뜻 자신들이 최진실과 같은 동종의 피해자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 모양이다.

이 대목이 결정적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사람은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우울하지는 않다. 다만 섭섭함 때문에 우울해 지는 것이다.

훗날 역사가들이 대한민국의 역사상 가장 우울했던 때를 바로 우리가 사는 오늘이었다고 적을까 두렵다.

지난 100년간 식민지, 전쟁, 쿠데타 등 한 국가가 겪어야 할 모든 아픔과 억울함을 겪었던 우리, 아직도 비이성적인 이념과 흑백 논리를 가능케 하는 분단, 그리고 갈수록 인간미가 사라져가는 경쟁사회의 고통이 국민들로 하여금 자꾸 정의를 외면하게 하고 있다.

사실 이것이 대한민국 우울증의 근원이다.

이제  국민이 힘을 내야 한다. 법이 치밀하면 도둑은 더욱 많아진 다는 고전의 교훈을 다시 새겨보아야 할 때이다. 우리가 ‘국민배우’ 최진실의 우울증에서 국민의 우울증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이글에도 엄청난 악플이 달릴 것이다.

이러면 어떨까? 한나라당이 사이버 모욕죄를 만드는데 ‘좌빨’ ‘빨갱이’‘간첩’ ‘보수꼴통’ ‘친일파’등의 모욕적 단어를 못 쓰게 하는 조문을 넣는 조건으로 민주당이 찬성하는 것 말이다.

과연 이렇게 되면 누가 더 참을 수 없을까? 궁금하다.

2008년 10월 6일 경기북도 한탄강가에서 이철우

 

 

2008.10.06 14:30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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