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샘바다마을의 부부나무

활기를 찾은 부부나무의 영험함이 온 누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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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성(hanaro)등록 2008.09.23 09:59
오랫만에 샘바다마을의 부부나무를 찾아가 보았다.  아무리 봐도 좋다.   내가 어쩌다 부부나무,샘바다마을에 빠졌는지 모르겠다.   그냥 좋다.   6~7년이 넘었지만 가끔씩 가 본다.   당시  광주일보에 근무했었다.   취재차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지만 할 일이 없으면 여기 저기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면 거기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런 천성이 있나보다.   그러니 예나 지금이나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많다.   샘바다마을,부부나무,천년이 넘은 우물,정읍사,수제천 등 모두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정읍에는 정읍사공원이 있다.   학자들의 주장에 의해 그 자리에 세워진 모양이다.   샘바다마을을 자주 다니던 시절에도 정읍사여인의 마지막 자리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나도 한마디 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당시의 상황으로 봐 군사적 요충지에 해당하는 곳에 도로를 건설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리가 어디일까.   우리는 학창시절에 유명한 작가의 손으로 씌어진 내용을 배웠다.   정읍사 여인의 남편이 소금장사를 다녔던 전주를 일컫었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간다.   정읍에서 전주까지의 거리를 봐도 그렇다.  비포장도로였던 80년대 초반에 전주에서 정읍까지 한나절이 넘게 걸어왔던 기억이 있다.  시골장은 새벽에 서고 오전 10시면 끝난다. 

1300여년전에는 그 험난한 길을 어떻게 다녔을까를 생각 해 봤다.    당시 현 영원면과 고부면이 당시에는 고사부리현이라 불리웠었다.   샘바다마을 인근은 정촌현이었다.   정촌현에서 고사부리현 또는 태인현으로 장사를 다녔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정촌현에서 두개의 현을 향하는 길을 한꺼번에 볼 수있는 곳이 어디일까?   그리고 길 떠나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막걸리 한잔을 마실 곳이 어디에 있을까?   그런 것들을 추측해 보았다.   그리하여 '부사치'라는 작은 야산을 찾았다.  나즈막한 야산이지만 거기 올라보면 고사부리현에 해당하는 천태산까지 훤히 보인다.   부사치 인근에는 6.25를 전후한 시기까지 주막집이 있었다.  내가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자비를 들여 그 흔적을 샅샅이 찾아보고 싶었다.   우리의 주장은 그냥 주장일 뿐이다.   유명한 교수님이 한 말씀 하시면 거기에 비중이 실리고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정읍 샘바다마을에 있는 부부나무 부부나무는 행정의 지속적인 관리를 받으며 활기를 얻고 있다. ⓒ 하재성


샘바다마을과 수제천 그리고 정촌현 복원사업에 대해 멋진 문화상품을 구상했고 그것을 행정에서 받아들여 진행되었다.   수백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정촌현 복원사업은 진행되다 토지보상비를 이유로 지난해에 보류되었다는 말을 몇차례 들었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시민들의 반응이다.   적극성이 부족한 행정을 생각하면 웬지 개운하지는 않다.   음악에 대해 무지한 내가 수제천 기사를 쓰기 위해 국립국악원의 자료를 검색했고 여러 사람의 자문을 구했었다.   이때 현 정읍시 영원면장인 이성재면장의 자문을 구했는데 그때부터 아시아 전통음악으로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수제천에 대해 행정의 관심이 깊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왜 거기에 관심이 쏠리는지는 모르겠다.   부부나무를 처음 알렸던 사람이라는 자부심도 있다.   방송국에서도 묻기에 알려줬고 여러번 방영되었다.   부부나무의 영향인지 그 마을 사람들은 이혼한 가정이 없다.   박광배시인은 샘바다마을을 돌아보더니 눈물을 흘리며 감탄했다.   60년대부터 21세기까지 다양한 모습이 담겨있는 그 마을을 보고 반했다며 영화촬영을 하기에도 좋다고 했다.  방송을 본 할머니,아주머니들은 가끔씩 그 나무앞에서 손바닥을 부비는 모습도 있었다고 한다.   보호수로 지정이 되고 관리예산을 편성 집행하면서 인근의 수백여년 된 아름드리 나무들이 활기를 찾아 더 아름다와지고 있다.   부부나무의 영험함이 있다면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음양의 부조화로 건강을 잃은 사람들도 거기에서 수련을 하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새로운 구상이 떠오른다.   정촌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정촌(井村)'이라는 성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것도 확인되면 좋을 것이다.   당시 일본대사관 홈페이지에 문의를 했지만 지금까지 답변이 없다.   수천년전에는 이 일대가 바다와 접면되었다고 한다.   그런 지명들이 실제 많이 남아있고 언젠가 토목전문가가 공사 도중 시추한 흙에서 뻘흙을 봤다고 한다.   '보기만 해도 낫는다'하여 유명했던 최영단할머니는 샘바다마을과 백두산 천지의 물이 밤낮으로 교류한다고 했다.   태극기의 가운데에 그려진 S자의 형상으로 말이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전설과 촌로들의 입으로 이어지는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이 모든 것을 조합한다면 멋진 작품이 될 것이다.   1,700여년 된 우물의 물을 떠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는 부부나무 앞에서  은은히 흐르는 수제천음악을 들으며 전통혼례식을 하도록 기획한 정읍시의 사업계획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인근에 조성되고 있는 첨단생명산업단지를 찾는 수많은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토록하는 백제 정촌현 복원사업이 이뤄지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2001년 6월 당시 재직중이던 광주일보에 보도되었고, 다음해에 오마이뉴스에 소개했었다. 이후 신문,방송에 많이 소개되어 샘바다마을을 찾는 탐방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정촌현 복원사업 등 행정의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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