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비이간적인 섬뜩한 사고

비뚤어진 인간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

검토 완료

김상순(quaynews)등록 2008.09.07 13:47

                      인간의 비인간적인 섬뜩한 사고

 

 

                                   

 

                                                                김  상  순

 

 지구상에 인간이 너무 많은 탓일까? 아니면 황금 만능 시대의 각박해진 세상살이 때문에 정신적 장애가 생긴 때문일까. 다양한 인종이 부대끼며 사는 지구상에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충격적인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독일에선 남매가 부부를 이루어 결혼상태를 유지하다 법정에 섰다. 호주 남쪽 아들레이드에서 아버지와 딸이 혼인관계를 유지하며 딸까지 낳아 잘 기르고 있다. 딸은 외손녀이자 자매이기도 하다. 이 부녀 부부를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은 어쩌다가 그런 근친상간의 불행한 늪에 빠졌으면 수치심에 남이 알까 숨길 일이지 TV 인기프로에 아이까지 안고 나와 온 천하에 공개하느냐다. 생활이 궁색해서 돈이 목적이었다해도 정신적 장애가 아니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들도 인간이라서 자책감에 많이 시달렸을텐데.

 이런 근친상간은 대단한 충격이지만 고대 이집트 파라오를 비롯한 몇몇 왕족의 순수 혈통 보존을 위한 역사적 사실이 있었기에 일시적 험담 정도로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다음 사건은 제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이해가 안간다.

 

아들 안전보다 애견  목숨이 우선이다?

 

 센트랄 코스트 어느 작은 마을에서 자기 집에서 기르던 개가 세살 난 아들을 공격해 죽음 일보 직전에서 생명을 건진 사건이 일어났다. 하늘이 도와 살았지 한 번만 더 공격했으면 생명이 위태로웠다는 것이 맹견 전문가의 의견이다. 송아지만한 세파드가 공격해 16바늘이나 꼬멘 상처는 사진으로 보기에도 아찔했다. 상처의 크기는 완치 후에도 커다란 흉터로  인상마저 험악해질 것이 분명했다. 엄마가 빨래를 널기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런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인간을 공격해 살상을 입힌 개는 법으로 사살된다. 동물보호소 직원이 공격한 개를 처분하기 위해 방문했으나 애기 엄마가 내줄 수 없다며 한사코 반대했다.

 “폴라(개의 애칭) 도 나의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폴라가 점심을 먹는데 내 아들이 귀를 잡아당겨 화가나서 문 것이다. 잘못은 내 아들에게 있다. 사건 후 서로 화해하고 친해져서 앞으로 그런 일이다시는 없을 것이다. 가족인 폴라를 죽도록 내줄 수는 없는 일 아니냐.”

 애기 엄마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동일한 보호쟈였다. 동물보호소 직원은 피해자로서의 의견을 존중해 사살을 고집하진 않았다.

 꿰맨 상처 아래 천진스러운 눈동자가 윤기를 띠었다. 애견을 향한 각별한 애정이 자식 생명보다 소중하단 말인가. 철 모르는 아들의 아찔한 상처를 보면 애견이고 뭐고 두 번 다시 보기가 겁나는 것이 이 세상 모든 엄마의 모정일 것이다. 겨우 세살의 아기가 한눈 파는사이 다시 맹견의 귀를 잡아당기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맹견의 야수 돌변은 순식간이다. 정상적인 모성이라면 몸서리치는 아찔함에 먼저 자청해 사살을 요청했어야 했다.

 같은 또래와 장난치다 병원 치료조차 필요 없는 가벼운 상처로 피 흘린 경우 이 엄마는 상대 아기에게도 이처럼 관대했을까. 남편이나 친지가 애를 돌보다가 이런 사고를 당했다면 과연 무사했을까. 아무래도  애견에 대한 비뚤어진 집념 같다.

 

애견 시비로 아들을 총살한 아버지

 

 지난 주9월 5일 최고 법원에선 아들을 사살한 아버지에 대한 선고가 있었다.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최고 법원은 맬레이라 부르는 애견을 놓고 언쟁끝에 아들을 총살한 아버지에 대해 14년의 징역을 선고했다. 아버지 호와드는 23살의 아들 딕비를 사살하기 전 아들과 애견을 놓고 말다툼이 있었다.  이웃해 살고 있는 부자는 집 근처  주요소에 들린 일이 있는데 이때 아들은 자기 애견을 사무실 문 밖에 앉혀 놓았다. CCTV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사건의 발단은 아버지가 주유 대금지불 후 사무실 문을 나오면서 애견을 원래 아들이 앉혔던 자리에서 한쪽으로 얼마간 옮긴 것이 발단이 됐다. 이 애견의 무단 옮김 때문에 부자간에 말다툼이 일어나 점점 격해지고 아버지가 칼을 휘둘러 아들 목에 대고 위협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펀치볼에서 도로를 사이로 마주보고 사는 부자는 휴전 후 일단 귀가했다. 그러나 밤 늦게 아들은 아버지 집을 찾아 다시 따졌다.  언쟁이 격해지더니 급기야 화가난 아버지가 아들을 집안 차도에서 사살하고 만다. 검찰의 기소에 의하면 경고 사격 후  가슴을 맞아 절명해 차도에 누워 있는 아들을 다음 탄환이 머리를 관통했다는 것이다.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사망자의 할머니요 살인범의 어머니였다.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범인은 아들 시신을 손가락으로 가르쳐주기까지 했다.”

 개죽음보다 못한 23살의 짧은 인생이 허무하게 끝난 것이다. 인간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자식보다 귀여운 존재가 세상에 그 무엇이 있을까. 아버지와 아들이 적군과 아군으로 대치했던 것도 아니다. 아들을 죽이지 않으면 아버지가 죽는 그런 급박한 상황도 아니다. 두 사람 증 어느 한 생명을 선택해야만 할 절박한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23살의 아들과 자기 생명을 맞바꾸어야 옳았다.

 

제 아들 확인사살까지 감행한 아버지  

 

 심리를 계속 들어보자.

 “기소장에 의하면 아버지는 맥주 세병을 마신 후 발에 피가 묻은 체 아들 집으로 가서 내가 방금 딕비를 죽였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가슴에 총을 맞고 절명한 아들 머리를 다시 쏘아 확인 사살 한 셈이다. 체포 후 경찰 진술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협박성 메세지를  여러 번 받았는데 그때마디 생명 위협을 느껴 자위 수단으로 사냥총을 구입해 침대에 항상 대비해 두었다는 것이다.”  

 부자 관계란 결코 끊어질 수 없는 혈연 관계다. 태어나면서 본능적으로 쏟아붓게 되는 사랑스런 분신인 아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힘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 살인은 부지불식간의 순간적인 충동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애견을 놓고 농담 한마디로 서로 웃으며 끝낼 사소한  일을 아버지는 악의에 찬 증오로 토끼 사냥하듯 쏘아버린 것이다. 이 상황에서 그는 아들을 싸안고 천하가 뒤집히는 미움도 부정으로 달래야 했다. 설령 맞아 죽는 한이 있다 해도 참아야 했다. 왕권 유지를 위해 아들을 뒤지에 가둬 죽인 역사적 배경을 가진 나지만 섬뜩한 충격을 한동안 떨쳐내기 어려웠다. 범인의 진술은 계속된다.

 “아들이 달려들기에  먼저 머리 위로 위협 사격을 한방 쏘았다. 경고 사격에도 불구하고 계속 따지고 달려들어 위협을 느꼈다. 그래서 눈을 감고 두 번 세  번 방아쇠를 당겼다. 눈으 뜨니 죽은 아들이 땅에 누워 있더라.” 

 아들 생명을 한순간에 끝내버린 아버지의 진술이다. 확인 사살은 증오에 찬 악의에서만 나온다. 제 자식 생명의 소중함은 몰라도 원수에게 분풀이하듯 망자 머리를 쏘는 확인사살은 인간 도리에 어긋남을 알았을까. 방아쇠를 당기면서 그래도 눈을 감은 걸 보면. 

 인류 역사상 자기 자식을 살해한 아버지는 과연 몇이나 될까. 조물주가 흙을 구워 영혼을 불어넣을 때 자식 죽이는 증오를 넣지 않아서 극소수일 것이다.

 이 살인자는 수천년 자기 조상들이 지은 죄보다 더 무거운 아들 죽인 죄를 무슨 수단으로 갚을 것인가. 평생을 두고 양심 가책에 회오리쳐도 터럭만큼도 못 갚을 것이다.

 호주에선 사형제도가 폐지된지 오래다. 아버지는 감옥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죄의식으로 차라리 사형제도를 그리워 할지도 모른다.

 

2008.09.07 13:47 ⓒ 2008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