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부터 종교편향…‘정교분리’ 헌법 무시

종교편향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장로교 창시자 ‘칼빈’

검토 완료

김정훈(usrain)등록 2008.09.01 15:46

‘칼빈주의’ 답습 기독교, 종교편향 비난 면키 어려워

 

정부의 종교편향에 대해 뿔난 불교계가 범불교대회에 이어 전국 사찰별로 법회를 여는 등 그 파장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종교편향의 줄기를 따라가 보면 정치권에서부터 자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국회 기독교 의원들의 모임인 조찬기도회 회원은 113명으로 전체 의원 수의 37%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불교 신자를 월등히 앞지르는 수치다. 한나라당 의원들끼리만 갖는 조찬기도회도 따로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최근 국회에선 ‘이스라엘 12지파’까지 등장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조찬기도 회원 가운데 장로 직분을 가진 의원들이 12명이라는 것에 착안해 이들을 연장자 순으로 이스라엘 12지파의 족장으로 삼고 8~9명의 의원들을 부족민들로 배치하기로 한 것. 국회의원들의 사조직이라고 하지만 타 종교를 가진 의원들 또는 국민들이 봤을 때는 이미 정치권에서부터 종교편향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국가의 녹을 먹는 국회의원들부터가 ‘정교분리’와 ‘종교차별 금지’를 명시한 헌법을 위배하고 국민화합을 해치고 있다는 비난에 대해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오죽했으면 ‘범불교도대회 결의문’에 “작금 이명박 정부에서 봇물처럼 터지는 공직자들의 종교차별 사태와 대통령의 방조는 종교차별 금지와 정교분리를 명시한 헌법을 훼손하고 국민화합을 저해하는 심각한 국면에 이르렀다”라고 지적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국회 기독교 의원들의 비율과 달리, 국회 불교 신자들의 모임인 정각회 회원은 47명으로 전체 의원의 16%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수치다. 민주당의 모 의원은 지난 28일 “현재 장관 18명 중에서 불교는 한 사람도 없다. 2000만명의 불교도가 있는데 차관급 25명 중에서 한 사람만 있다. 청와대 수석들도 불교도가 없고 특정 종교 인사로 다 채워졌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부터 정교분리를 명시한 헌법을 위반한 종교편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모든 도시를 거룩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성시화운동과 각 개신교 공직자들과 기관장들이 모인 홀리클럽 또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성시화운동은 칼빈의 제네바 성시운동을 모델로 하고 있다. 여기에는 오늘날 종교개혁가이자, 장로교 창시자로 추앙받는 ‘칼빈(1541~1546년)’의 ‘칼빈주의’가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칼빈이 16세기 제네바를 통치한 5년 동안에 13명이 교수대에 달렸고 10명이 목지 잘리고 35명이 화형 당하고 76명이 추방당했다고 한다. 종교개혁의 기치를 내건 칼빈의 공포정치가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폭력에 대항한 양심-칼뱅에 맞선 카스텔리오’라는 책에서는 칼빈의 폭력과 종교적 광기에 온몸으로 저항한 외로운 전사로서 카스텔리오를 소개하고 있다. 카스텔리오는 ‘이단자에 관하여’ ‘칼뱅의 글에 대한 반대함’과 같은 치밀한 내용의 글을 통해 칼빈의 잘못을 지적한 인물이다. 이 책은 독일의 유명한 저기작가인 츠바이크가 썼는데 저자는 칼빈은 가톨릭과의 싸움을 빌미로 제네바시 전체를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이 관철되는 파시즘적 광기로 채웠던 사람으로 설명한다.

 

카스텔리오의 말에 따르면 칼뱅은 제네바를 통치하기 위해 도덕비밀경찰이란 친위조직을 만들었다고 한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내뱉은 말과 의견, 관점까지 감시당했다. 지정된 음식 외에는 요리해 먹을 수도 없었다. 손가락에 반지가 몇 개 있는지, 신발장에 신발은 몇 켤레가 있는지, 무슨 옷을 입어야 하는지도 통제를 받았다. 도시를 오고가는 모든 편지들은 검열 받는 등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 받았으며,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행위들이 금지됐다.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죄는 바로 칼빈의 독재에 대한 비판은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금지사항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자행되는 인간사냥 때문에 비밀경찰들은 일요일에도 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시의회, 행정, 사법 등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 뜻을 구현하는 성시화운동의 기본 모토를 어긴 칼뱅의 만행에 대해 오늘날 장로교는 얼마나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어쩌면 알면서도 이를 모른 척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의 장로교는 기본적으로 칼빈주의 신학을 기반으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와 대소요리문답을 이어받고 있다.

 

한국교회는 장로교가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한국교회=장로교’라고 해도 무방하다. 장로교는 칼빈을 위대한 종교개혁가이자, 장로교의 창시자로 일방적으로 우상시해왔다. 하지만 장로교는 칼빈주의를 내세우며 자칭 ‘정통’을 자처하는 장로교는 독선적인 모습에 대한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장로교는 내년을 ‘칼빈 탄생 500주년’으로 기념한다. 이는 한국에서 가장 중심적인 교단이 장로교이고 칼빈이 장로교의 창시자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칼빈은 자신의 예정설을 비판하고,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를 했다고, 세례 받기를 거부하고 이단 마녀라는 등 비상식적인 이유를 들어 인간사냥을 자행한 인물이다.

 

또, 칼빈의 사상과 교리를 이어받은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유럽 각국에서 1560년부터 100년 동안 하나님의 이름으로 마녀사냥과 인간사냥이 자행됐다. 칼빈의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청교도들에 의해 미국 인디언들에 대한 살상이 이뤄진 비참한 역사도 있다.

 

칼빈의 교리를 이어받은 오늘날 장로교도 조금이라도 자신들(칼빈)의 사상과 교리에 맞지 않으면 중세 때처럼 인간사냥 하듯 비판하고 손가락질한다. 자신들과 맞으면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들이고, 맞지 않으면 하나님이 버린 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들의 교리 외에 다른 주장과 사상은 성경에 위배된다고 고집하는 것이다.

 

칼빈주의가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예정론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통로인 예수님은 필요가 없고 하나님의 예정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성경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으로, 구원이 예정돼 있다면 구원을 얻고자 신앙하는 신앙의 근본적인 이유를 묵살해 버리는 것이다.  

 

이제는 수십 년간 지속된 기독교의 배타성과 공격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최고조에 달했다. 오랫동안 누적된 종교과잉과 종교차별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런 종교편향에 대해 기독교는 오히려 불똥이 튀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렇지만 이미 종교편향은 기독교 내에서 무차별적으로 자행돼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종교학자들은 한국사회에서 불교와 천주교 신자들은 자신의 종교에 대한 몰입도가 높을수록 다른 종교 또한 더 좋아하지만 개신교 신자들은 종교 몰입도가 높을수록 자신의 종교를 편애하고 타 종교에 대한 관용도가 낮은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지금 우리는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단일종교가 아닌 다종교사회이고 정치와 교회, 그리고 국가와 교회가 일치된 정교일치, 제정일치, 신정정치가 아닌 정교분리사회이다. 칼빈 당시의 제네바처럼 교회가 사회나 국가를 지배하는 중세사회도 아니다.

 

때문에 기독교가 정교분리란 지금의 헌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사상과 다르면 무차별 살인을 서슴지 않았던 칼빈의 만행을 답습하지 않을 때 종교편향이란 화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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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칼빈주의 타파!

2008.09.01 15:33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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