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의 일상침범

리얼버라이어티 쇼, 코미디의 진화인가 퇴보인가

검토 완료

배영경(aimone)등록 2008.08.26 10:50

자기가 휘두른 북채에 자기가 맞고 쓰러진다. 카메라에 비친 클로즈업 샷, 그의 얼굴은 완전히 사팔뜨기 바보의 얼굴이다. 바로 영구다. 키가 들쑥날쑥한 세 명의 남자가 대머리 가발에 콧물 분장까지 하고 나와서 연신 제 머리를 때려댄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다 못해 죽죽 흘러내리고, 결국 세 명이 무대위에 지쳐 쓰러지면 비로소 '마빡이' 개그 코너는 막을 내린다. 자기 머리를 사정없이 때리며, 주저앉는 모습이 영락없는 바보다.

 

그런데 이것이 웃음이 된다. 그러고 보면, 코미디는 기본적으로 무대 위의 출연자들을 바보로 만듦으로써 대중들에게 웃음 준다는 면에서 가학의 성격이 짙다. "콩나물 팍팍 무쳤냐"를 외치며 보는 이의 배꼽을 흔들어놓았던 80년대 이주일, 90년대 영구.맹구, 21세기의 마빡이까지 그 분장과 방법은 달랐어도 그 기저에는 자신들을 바보로 만드는 '가학의 논리'가 공통적으로 깔려있다.

 

사실상 상대를 바보로 만들어 스스로 유쾌해지는 행위는 사회적 금기다. 우리가 어렸을때부터 몸에 익혀야 한다고 배우는 모든 예절의 근본은 바로 타인에 대한 존중이 아닌가. 그러한 면에서 코미디는 가학과 희화화, 비매너를 합법화 시키는 일종의 사회적 장치다.

 

코미디라는 형식안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서로를 웃음거리로 만든다. 외모지상주의, 인종차별, 성적 차별 등의 사회적 타부에대한 발언도 코미디안에서는 비교적 자유롭다. 즉 코미디가 사회적 장치라는 것은, 코미디를 위한 모든 행위와 발언들이 우리들의 일상과 현실로 넘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서로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는 행위가 권투라는 스포츠 형식 내에서는 정당화되지만, 이것이 일상으로 넘어오면 폭력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요즘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리얼버라이어티쇼'라는 타이틀 만큼이나 너무 '리얼'하다. 재미를 위해 출연자들이 상대의 사생활을 함부로 들춰내는 것은 기본이며, 상대가 무안해지도록 비난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때문에 시청자들은 보는 순간에는 재미있게 웃게 되지만, 돌아서면 그 출연자의 성품을 잠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디까지가 재미를 위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그 경계가 혼미해지는 것이다.

 

때문에 요즘의 코미디 프로들을 보면, 코미디라는 형식의 안전장치없이 상대를 함부로 헐뜯고 바보로 만드는 것 같아 불쾌해질 때도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코미디니까 마음껏 웃어도 된다'라는 심리적 안전장치가 리얼리티 코미디에서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리얼리티 코미디'가 오히려 코미디의 본래 성격을 상실한 것 같이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링 밖을 벗어난 주먹질은 스포츠가 아니라 폭력이 된다. 코미디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남을 향한 가학, 희화화가 코미디라는 형식을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건전한 웃음이 될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전제로 탄생한 코미디라는 형식에 '리얼'이라는 타이틀을 도입하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모순이었을지도 모른다.

2008.08.26 10:44 ⓒ 2008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