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감수성, 삶에 대한 감수성으로 그/녀들을 응원합시다

[서평] 이랜드 노동자 이야기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검토 완료

이대암(blurrytie)등록 2008.08.23 12:27
  ‘노동문제가 사회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가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사회 모든 구조물의 기반을 이루는 힘'인 노동과 노동문제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입니다.’ - 후마니타스 출판 철학 중

그간 노동문제와 관련된 도서를 지속적으로 출간해온 후마니타스에서 신간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를 내놓았다. 지난 2007년 6월 매장 점거 농성으로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랜드 노동자들. 어느새 그/녀들의 파업 투쟁은 1년을 넘어섰다.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는 사람 냄새나는 진솔한 인터뷰와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의 글을 모아 이랜드 노동자들의 그 1년이라는 무수한 아픔과 눈물이 밴 시간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물론 활동가들의 글도 가치있으나 뭐니뭐니 해도 이 책의 참 맛은 크고 작은 총 14개의 인터뷰이다. 인터뷰는 이랜드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터뷰어들이 인터뷰이 1명에서 4명 등과 자연스럽게 소박하고도 절실한 대화들을 엮어가며 채워진다. 이외에도 고등학생인 한 조합원의 자녀, 납품업체 직원과의 인터뷰, 미니인터뷰 또한 그 맛이 새록새록하다.
인터뷰의 내용들은 차갑고 딱딱하고 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따스하고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에 닿아있다. 노동조합, 매장점거, 투쟁 등의 단어를 들으며 왠지 그/녀들이 낯설고 문제있고 무언가 엇나간 억센 사람들이란 이미지로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통해 그/녀들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들어보자. 그/녀들은 1년이 넘도록 투쟁, 투쟁! 거칠게 외치지만 이내 우리의 귀에는 구수하게 익숙한 우리 이모, 우리 삼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들은 결코 먼 나라 다른 별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오히려 우리 옆에서 때론 함께 때론 각기 울며 웃으며 동행하던 우리 이모, 우리 삼촌에 더 가깝다.

  아무래도 제 생활이 집회 위주다 보니까 가정생활은 뒷전이 되죠. 남편이 가사일을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중학생, 초등학교 5학년짜리 아들 둘이 있는데, 못 챙겨 주는 게 미안하죠. 엄마 마음은 항상 애들한테 빈자리에 대한 죄책감이 있잖아요. 중학생 아들은 며칠 전에도 ‘엄마가 꼭 이겨야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야 ‘내가 비정규직 인생 안 산다’고. 그런 애를 보면서 다른 사람도 저럴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무언으로 지지해 주는 사람들. 그런 노동자들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새 그러고 살아요. (장은미, 월드컵분회 조합원)

  일 끝나고 집에 오면 딸아이 자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봐요. 딸아이가 커서 힘들게 공부해도 어디다 써먹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요. 1년 있으면 직장에서 나가야 되고, 10년 동안 일하다 보면 일고여덟 번은 직장을 옮겨야 할 텐데. 아이들이 우리처럼 그렇게 살아갈 걸 생각하면 정말 슬퍼져요. 아, 아이들이라도 꿈꿀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근데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그런 세상은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조희숙, 월드컵분회 조합원)

그/녀들의 목소리를 계속 들어보자.

  우리가 하는 게 옳지만 왜 바보처럼 네가 하냐고. 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하겠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다른 누군가도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도 소리를 안 낼 테니까 나라도 소리를 내는 거다, 이런 당당함은 있지만 주위의 시선이...... 빨갱이로 몰리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고 바보 취급 받는 것에 대한 억울함도 있고. 이런 이야기를 더 힘든 사람이 옆에 있는데 꺼내기가 서로 쉽지 않은데, 길어지다 보니까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하지만 내가 이렇게 하고 있는 거를 우리 아이들이 다 알고 있는데 포기해 버리면......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저희 큰 아이 같은 경우는 엄마가 이랬어, 이런 이야기를 내가 했던 게 아니고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들어서 알게 되고, 그래 엄마 열심히 해봐, 도와줄 거는 없지만 신경 안 쓰게 공부만 할게, 이런 애한테 엄마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했다, 엄마 옆에 있는 사람들 등지고 나왔다 이런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는 않은 거지. (황선영, 월드컵분회 조합원)

  투쟁을 계속하실 수 있는 원동력은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나를 지키는 거요. 그거 없으면 운동 못하잖아요. 여기서 내가 만약에 포기한다면 나 자신이 용서가 안 되는 거지. 그래서 있는 거예요. (이선화, 00분회 조합원)

  요구안을 100퍼센트 따 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살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거를 알게 되었다는 것. 정치도 그렇고 내 권리가 뭔가, 내 권리는 내가 목소리 내야 되는구나, 한두가지가 아니죠. 삶에 대해 느끼는 게 많아요. 이게 성과죠. (이경옥, 이랜드 일반노조 부위원장)

‘이러한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곧바로 그/녀들을 지지해야하는 게 정답이다.’라고 강요하진 못할 것이다. 허나 이 하나만은 확실히 물어도 되리라, 젖은 애환으로 촉촉한 그/녀들의 목소리는 너무도 인간적이지 않은가, 인간의 목소리?

또한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어가다보면 촛불집회와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럼 먼저 그/녀들의 투쟁을 살펴보자.

점거 농성을 하고 경찰의 탄압에 맞서 싸우다 연행되기를 여러 날, 그래도 놓아 버릴 수 없어 돌멩이 맞고 물대포 맞으며 여기까지 왔다. (진재연, 사회진보연대 회원)

나는 점거하다가 털린 것보다 그때가 더 속상했던 거 같아. 물대포, 그거를 세상에. 천막에다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어쩌면 사람한테 그럴 수 있어. 세상이 원망스럽고 경찰이 밉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전경들 중에는 ‘오버’하는 애들이 있어요. 나이도 어린 애들이 우리한테 입에도 담지 못할 욕을 하고. 감정이 있는 인간이다 보니까 화가 나서 그런다지만 방패로 사람을 찍고, 욕하고, 때리고. 그러면 우리가 너무 억울하지, 어린 애들한테 그렇게 당하니까. 또 자본가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구나, 정말 힘이 막강하구나 하는 거를 투쟁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정미화, 월드컵분회 조합원)

또 사진 찍힌 사람, 동영상에 나온 사람들한테 민사로 손해배상이 들어오고 있어요. 연행되어서 몇 십만 원 벌금받은 사람이야 아주 많고. 한 분은 농성장 안에서 편지 낭송을 했는데 쓴 사람도 아니고 대신 나가서 읽었는데 그걸로 1억100만 원 손배가 와 가지고 너무 어이가 없는 거지. 도대체 나한테 이걸 받겠다는 거냐? 한 달에 80만 원 벌어서 이거 언제 다 갚겠냐? (황선영, 월드컵분회 조합원)

집회, 농성, 구호, 팔짱끼고 눕기, 점거, 물대포, 연행, 방패 찍기, 사진 채증, 강제 해산, 손해배상, 장기화. 어디 보자, 이 모든 것들은 촛불집회가 진행되어 온 모습 속에서 너무도 너무도 익숙한 장면들 아닌가? 정부에겐 집회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냐 작냐의 차이였을 뿐 그들의 정책에 반하는 ‘불순세력’에 대한 대응태도는 이렇듯 ‘일관성’이 있었다. 어차피 그들에겐 촛불시민이나 이랜드 노동자나 일부 불순세력일 뿐인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앞서 소개한 그/녀들의 이야기에서도 살필 수 있듯 그/녀들은 투쟁을 이어가는 이유로 대의를 내세운다. “나라도 안나서면 안된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일이다. 힘들지만 계속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답은 촛불시민에게 왜 계속 촛불을 드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과 기가 막히게 일치한다. 촛불시민들이 굳이 퇴근 후 개인시간, 꿀같은 주말의 자유시간을 써가며 비 맞고 목쉬고 얻어맞고 폭도로 몰리며 밤을 새지 않아도 되 듯 그/녀들 또한 돈도 못벌고 자기 돈 써가면서 뙤약볕 아래에서, 칼바람 속에서 집회하고 연행되고 벌금물고 여러 날을 박스 깔고 돌바닥에서 자지 않아도 되었다. 하루 벌어 살기가 빠듯한 그/녀들은 서둘러 복직하거나 다른 직장을 찾아서 적은 임금이나마 벌어도 된다. 그게 당장 편한 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늘도 대의를 내세우며 가뭇한 희망의 밥숟갈을 넘긴다.
이렇듯 이랜드노조의 투쟁과 촛불집회는 진행되어가는 구조의 유사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 이유만으로 그/녀들의 대의에 박수를 쳐달라고 억지를 부릴 순 없다. 다만 촛불집회와의 그 유사성에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그/녀들의 억울한 마음과 진지한 눈빛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럼 한 발 더 나아가 그/녀들의 대의에 대한 이야기는 한 인용문을 던지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들은 비정규직 투쟁의 구심점이란 대의를 오늘도 치열하게 외치고 있고, 아마도 곧 비정규직이 될 우리의 청년들은 학점, 영어점수, 자격증을 통한 비상을 위해 오늘도 치열하게 웅크리고 있다. 그/녀들의 외침이 지금은 남의 일이겠지만 몇 년 후에도 꼭 남의 일이란 보장의 가능성은 그저 희박하다.

지금의 20대는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곧 비정규직이 될 운명 앞에 서있다. 8백만 명을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평균은 119만 원이며, 전체 임금에서 20대가 평균적으로 받는 비율을 적용하면 88만 원이 된다. 그나마도 세전 금액이다. 따라서 하루 8시간을 일하는 20대 비정규직이 한 달에 확보할 수 있는 경제력은 그보다 적다. 이 임금을 기준으로 한 달에 50만 원을 저축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려면 죽음 같은 삶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렇게 10년을 모으면 6천만 원이고, 20년을 모으면 1억 2천만 원이 된다. 그리고 50대가 되었을 때, 그나마 비정규직 일자리조차 남아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렇게 본다면 20대는 평균적으로 전세는 물론 결혼도 하기 어려운 세대이다. 결혼을 해서 소넹 얻는 돈은 중산층이 자녀 한 명에게 들이는 사교육비 정도이다. 아니, 이들도 전부 그만한 돈을 들여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 아닌가? TV가 시키는 대로 물건을 사들이고, 잡지가 시키는 삶의 방식을 채택한다면, 20년 후에 1억 2천만 원의 자산 대신 그만큼의 빚이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20대, 그들이 바로 ‘88만 원 세대’이다. (우석훈, 박권일, 88만 원 세대)

‘그런 그/녀들을 응원하고 싶은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는 이 책을 만들었다.’는 엮은이의 말처럼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라는 책이 그/녀들의 그간의 상처를 다소나마 어루만져주고 그 상처를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감수성, 삶에 대한 감수성으로 공감할 기회를 제공해주고 나아가 가뭇하기만 그/녀들의 희망, 아니 우리들의 희망을 부디 더 맑고 향기롭게 가꾸어가는 데 작지만 귀중한 힘이 되길 바란다. 나의 이 얕은 서평 또한 그/녀들에게 작은 응원이 되길 감히 바래본다.

덧붙이는 글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출판사 후마니타스, 가격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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