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경제학 ③ ; ‘뉴라이트’집단, 매국과 반역의 무리임에 분명하다

깨어나라! 대한민국! 물속에 비친 제 그림자 보고 지금 입에 물고 있는 먹이조차 놓쳐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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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석(yesoh)등록 2008.08.20 21:32
탐욕의 경제학 ③ ; ‘뉴라이트’집단, 매국과 반역의 무리임에 분명하다

* 탐욕의 경제학 제3회 - 소위 ‘뉴라이트’ 집단을 매국과 반역의 무리로 규정하고자 합니다. 최소한, 악(惡)의 씨앗입니다. 지난 광복절 촛불집회에서 외쳤던 구호, “깨어나라! 대한민국!” 환청으로 들려옵니다.
무자비한 ‘인간사냥’으로 그날 집회를 절단 냈던 경찰청장 어청수, 그리고 최근 PD 수첩 등과 누리꾼 등을 전방위 압박하는 검찰총장 임채진 등은 과연 누가 임명했던 자들입니까. 바로 노무현이었습니다.
지금 이명박은 집권하자마자 공기업 사장 등 갈아치우기는 물론, 심지어 공영방송인 KBS 사장까지 무리하게 인적청산 작업에 나서는 데, 냉정히 말하면, 자기들로선 제 할 일 하는 겁니다. 지난 10년 세월의 민주정부, 권력사정기관 등은 물론 매국적인 통상경제관료 등을 전혀 인적으로 청산치 못하고, 소위 제도니 시스템이니 하면서, 여기저기 몹쓸 자들을 함부로 임명하는 등 한마디로 세상을 어지럽혔던 죄과를 우리가 대신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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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공간’과 함께 흐른다. 광대무변과 영겁의 우주 속으로…

지금 지구에 도달한 600만 광년 거리의 별빛은 우리 인간 종이 아직 지구상에 발생하기 전에 출발했고, 1백 수십억 광년 거리의 별빛은 우주탄생의 비밀을 전한다.
태고로부터 오늘까지 연속된 모든 시간의 장면들을 한꺼번에 펼쳐내는 일대 ‘파노라마’다.

자연법칙에는 어떠한 예외도 없다. 인간의 감각기관이 제대로 식별할 수 없을 뿐이지, 내 앞 3미터에 서있는 동료의 모습은 그의 ‘현재’ 가 아닌, 1억분의 1초 전 ‘과거’ 모습이다.
(초속 30만 킬로미터의 빛이 3미터 이동에 걸리는 시간은 10-8초)

현실의 역사가 바로, ‘시간’의 씨줄과 ‘공간’의 날줄로 짜여진 ‘4차원’ 세계다.
일찍이 역사학자 카(E. H. Carr)가 이를 두고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로 규정했던, 본 뜻이다.

돌이켜보면, 인류 역사의 어느 시대건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세상의, 사회 전체의 공익으로 바꿔치기하는 ‘이데올로기’ 전문 제조업자들이었다.
이른바 ‘상식’과 ‘담론’의 이름으로 이를 선전선동하고, 만약 뜻대로 대중을 세뇌시키지 못한다면 심지어 물리력까지 동원하며 폭압을 일삼았던 것이, 지난 역사가 주는 엄연한 교훈이다.

오늘 세계사의 지배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는 주문, “우리가 과거에 해왔던 대로 하지 말고, 지금 말하는 대로 하라!”

그동안 다자간 협정을 통하여, 근래에는 주로 쌍무협정, 곧 FTA를 통하여 끈질기게 세계화를 권장하고, 수틀리면 강요하기 십상이다.
리스트의 표현을 빌면, 뒷사람들이 앞선 자신들을 따라잡지 못하게 하는,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 수법이다.

소위 G8, 곧 세계 8대 강국들은 매년 정상회담을 열어 자유무역, 자본자유화, 민영화, 규제 완화, 단 지적소유권은 보호강화 등 각종 신자유주의 의제들을 토의하며, 소위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국제거대자본>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한다.
흔히들 일컫는 ‘다국적 기업’ 또는 ‘다국적 자본’은 핵심 사업은 제외하고, 일상적 영업활동 수준만 다수 국가에 걸쳐있다는 현실경제적 의미에서, 이른바 표기와 표의가 불일치한다.

어느 누구의 위임도 받지 않고 사실상 세계정부를 사칭하는 일종의 ‘갱단’ 조직이며, 미국(G1)을 왕초로 치면, 여타 7개국 정상들(g7)은 중간 보스 급이다. 선봉 행동대 역할은 당연히 IMF, IBRD, WTO 등의 몫이다.

틈만 나면 이들이‘금과옥조’(金科玉條)로 내세우는 리카도의 소위 ‘비교우위’ 이론, 생산요소인 노동과 자본의 국가 간 이동을 전혀 허용치 않는 상태에서 자유무역으로 양국이 무역이익을 공유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비교우위 이론, ‘헥셔-올린-사무엘슨’ 정리는 모든 국가의 기술력이 동일하다는 더욱 비현실적인 가정에 기초한다.

지금처럼 노동을 전면 제외시킨 채 자본만을 일방 자유화시키는 방식의 세계화, 리카도 등과는 전혀 무관한 21세기의 사이비 점성술이며, 오로지 대다수 사람들의 희생 위에 소수 부자 및 자본의 탐욕을 ‘바벨탑’으로 쌓아올리려는 ‘집단 사기극’이다.

얼마나 더 쥐어짜겠다는 것인가. 세계의  최상위 부자 300명이 벌어들이는 소득이 세계인구의 절반인 하위 30억 인구가 벌어들이는 소득보다 더 많은, 이른바 ‘글로벌’ 탐욕의 현실이다.

세계화의 참 모습, 부자들의 권력과 부를 수호하기 위한 일종의 ‘칸막이치기’, 곧 거대한 ‘성벽 쌓기’다.
NAFTA 이후 미국의 멕시코 쪽 국경 요새화야말로. 오늘의 세계화 놀음이 전 인류적 통합과는 전혀 무관한, 오히려 이를 해치고 분열시키는, 문명사적 죄악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 온통 혼돈과 미망에 빠져있다.

사실 강대국들은 자국의 역사 발전과정에서 그간 직면해 온 과중한 복지비용을 내적 필요에 따라 일부는 서민들에게 부담지우고, 무엇보다 이를 가난한 나라들에게 대부분 전가시키려는 의도에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기치를 높이 쳐든 것이다.

진상이 이러함에도, 한국의 자칭 세계화(=선진화)론자들, 한국경제의 분배 및 복지 과소라는 명백한 현실마저 부러 도외시한 채, 그 몹쓸 지배 이데올로기를 ‘관념적’으로 추종하면서 오늘날 서민들의 삶의 고통을 가중시켜 온 것이다.

한갓 새들도 자신들의 보금자리는 더럽히지 않는 법인데, 한마디로 우리 삶의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국민경제 자해집단>이다.

세계화란 이름을 내걸고 지난 15년여 추진됐던 경제개혁은 과연 축복이었나. 아니다. 오늘을 사는 대부분의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재앙이었다.
90~96년 중 노동소득은 GDP 중 81.6%였으나 2004년 현재 68.4%로 13.2% 포인트 하락했던 것이고, 반면 자본소득(이자+지대+이윤)은 정확히 그만큼 상승하였다.

금액 규모로는 2006년 GDP의 13.2%인 112조원 만큼을 통째로 떼어다가 자본 몫으로 넘겨준 것이다.
그간 세계화의 불가피성 운운하며 자칭 진보임을 떠들던 일부 무리들은 지니계수 등의 소소한 악화 정도를 갖고 마치 큰일인 양, 양극화를 운운하곤 하나, 이는 전혀 진상을 모르고 해대는 이야기일 뿐이다.

지난 15년 세월, 대한민국 역사상 초유로 그리고 최악으로‘ 역분배’ 구조가 심화됐던 과정(그걸 두고 권력은 ‘경제체질’ 강화라고 강변한다)으로, 최근 수 년 간의 선거결과는 노무현 일파만 아니면 아무라도 좋다는, 서민대중의 자포자기적 <선거민란>이었던 것이다.

노무현과 조중동의 합작품인 한미FTA, 가히 세계화의 완성판이다. 1995년 김영삼의 OECD 가입 및 자본자유화 이후 IMF 위기를 자초하여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 GDP 증가율을 반 토막으로 갉아먹으면서 이를 미국에 갖다 바치고, 국내적으로는 벼룩의 간을 빼다 가진 자에게 몰아주는 이중의 ‘서민대중 착취 프로젝트’속편이다. 머지않아 몰아닥칠 재앙의 모습이 이미 눈앞에 선하다.

소위 ‘노명박’, 여우 노무현을 피하고 나니, 마침내 호랑이 이명박을 만난 셈이다. 후보 시절 이명박은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른바 ”강부자“  ”고소영“내각으로 시작한다. 개발경제 시대의 부동산 개발업자, 투기업자 출신다운 진면목이다.

널리 인구에 회자되길, 개발독재 시절 박정희는 이건희를 경제 하청업자로 부렸지만, 세계화 시대의 노무현은 이건희의 정치 하청업자 노릇, 일종의 ‘위탁판매’ 점장으로 비유되곤 한다.
그렇다면 이명박은, 재벌 및 대기업이 직접 파견한 ‘직영점포장’으로 쳐줘야 격에 맞을 것, 점포 명은 당연히 ‘기업 프렌들리’다.

진정한 진보와 보수,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이상, 비록 처방은 다를지언정 문제의 원인이나 진단 등에 대해선 서로 현실 인식을 달리 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한쪽이 내일의 민주주의를 더욱 가꿔내고자 한다면, 다른 한쪽은 오늘까지 얻어낸 민주주의를 지켜내자는, 동 시대의 역할 분담일 따름이다.

새로운 정치 지배세력으로 부상한 소위 ‘뉴라이트“ 집단, 매국과 반역의 무리임에 틀림없다.

7,80년대의 ‘반공’(反共) 논리를 90년대 초반‘세계화’(世界化)의 불가피성 논리로 치환시키면서 조중동의 지원 하에 시민운동의 일부로 급부상했던 박세일, 서경석, 이영희 등을 두고 자생적인 ‘1세대 뉴라이트’로 칭할 수 있다.
21세기 들어, 지난 80년대 과격 마르크시즘에 찌들었던 신지호, 김영환 등 일부 386세대를 중심으로, 역시 조중동의 엄청난 지원 하에 급부상한 ‘2세대 뉴라이트’ 또한 존재한다.

이들 무리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제2의 국난으로 불리는 소위 IMF 위기를 두고 ‘위장된 축복’(blessing in disguise)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일제 강점기가 정당하며, 한국에 축복이었다”는 한승조(고려대 교수) 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지난 시절 모택동 식 공산주의를 가장 열렬히 추종하며 “남한은 미제의 식민지라 근대화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소위 ’미제식민지론‘을 주창하더니만, 오늘은 똑 같은 머리로 “일제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근대화가 가능했다“는 해괴한 논리를 아무렇지 않게 주장한다.

하지만, 전혀 놀랄 일은 아니다. 소련과 동구권의 체제 전환 과정에서도 서민대중은 이에 적응하지 못하며 대부분은 낙오자로 떨어졌지만, 공산당 시절 핵심 간부들은 손쉽게 적응하면서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부상했던 것이다.
이런 군상들의 정체, 옛 종교였던 ‘공산주의’ 대신 새 종교인 ‘시장근본주의’로 개종한 것일 뿐, 마침내 새 주인을 찾아낸 것이다.

과연 매국과 반역의 무리다운 사고들을 여실히 드러낸다. 온 몸을 던져 일제에 저항했고 , 광복 후 남북분단만은 기필코 막아내려던 김구 선생을 “빈 라덴 같은 자”라고 하더니(지만원) 이젠 안중근 의사까지 “테러리스트라”로 지칭한다.(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장, 유석춘).

유관순 열사는 “폭력시위를 주도한 여자깡패”(친일작가 김완섭), 일제하 정신대는 “자발적 창녀”(서울대 교수 이영훈)라고 하더니, 마침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근거가 있다”(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안병직)며 아예 손 벗고 넘겨줄 태세다.

자칭 신자유주의자, 세계화론자라고! 신자유주의자는 무슨 신자유주의자, 단지 짝퉁 무리들로, 기실 패권국들의 신제국주의 사조에 부역하는 이 시대의 ‘사대주의자들’일 뿐이다.

뒤돌아보면, 일본의 막부는 1854년 불평등의 ‘미일화친조약’(오늘로 치면 미일FTA) 을 체결하였는데, 그보다 12년 후인 1866년 이런 막부의 매국행위를 이른바 ‘메이지 유신’으로 젊은 청년장교들이 무력으로 타도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 일본은 자신들이 당했던 수법을 당시 조선 등에 대해 써먹는 ‘새끼 제국주의’국가로 태어났다는 점이다.

만약 오늘의 대한민국 지배세력들이 우리보다 경제발전단계가 낮은 아프리카나 중남미, 동남아를 상대로 FTA 체결 등의 방식으로 세계화를 추진한다면, 일종의 ‘새끼 제국주의’로서 비로소 자신들을 신자유주의자로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 서면, 한․칠레 FTA 같은 경우 포도 등 과수농가의 피해보상만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면, 국익 전체 관점에서는 순 이득으로 이를 용인할 수도 있다.
매국 아닌 참 보수라면, 미국이나 EU 등 우리보다 발전단계가 높은 강대국들과의 FTA는 실리측면에서도 이를 당연 거부하는, 오래전 일본 메이지유신 정도의 결기는 갖춰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지난 시절 최빈국의 지위는 벗어났지만 아직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한, 중심부도 주변부도 아닌 중간 상태다. 아무런 성찰과 혜안도 없이 그저 앵무새처럼 세계화나 선진화를 떠드는 오늘 같은 ‘가짜 선진화’ 놀음은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다.

깨어나라! 대한민국!  물속에 비친 제 그림자를 보고 지금 입에 물고 있는 먹이조차 놓쳐버리는 어리석음은 의당 피해야 할 것 아닌가.

이번 광복절 날, 역사를 거의 20년 전 ‘5공 시대’로 후퇴시킨 인간 사냥꾼들 소위 백골단들 앞에서 외쳐댄 합창이다. 민족적, 민주적 각성을 외치는 비명의 절규다.
그릇된 신제국주의 망령에서 벗어나라는 외침이자 무엇보다 오늘 대한민국의 지배집단, 뉴라이트 무리의 매국적 행태를 당장 집어치워라는 마지막 경고다.

촛불의 자유영혼들, 자기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참 바보스러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지난 100여일 이상 이를 지켜보면서 때론 참여하면서 고결한 영혼들로부터 배운 것 하나, “만약 조중동이 정론지면, 우리 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

일상의 삶 속에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위대함을 감추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지켜보며 함께 시대를 살아간다는 일,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행운이자 행복이다.

오늘의 촛불, 누구든지 머지않아 몸은 썩어 없어지고 정신도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지지만, 그  위대한 행동과 실천은 대한민국 역사라는 동아줄의 한 타래로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윤민석 작사작곡 오지총 노래, “대한민국아” 몇 구절이다.

“대한민국아, 사랑하는 나의 조국아! 역적과 떼강도들에 능욕당한 나의 사랑아! …… 허나 더는 울지를 마라. 지금은 비록 피눈물 흘려도, 80년 5월처럼 87년 6월처럼 우리 다시 싸워 승리하리니 …… 대한민국아, 사랑하는 너를 위하여 매국의 무리, 반역의 무리 기필코 쓸어내리라!”

마감의 변, 오늘의 낮은 산이 어제의 높은 산을 가린다. 시공을 관통하는 <역사의 원근법>이다.

2008. 8. 20. (수)   오 용 석 / 개방과 통합 (연) 소장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현재 <대자보>에서도 연재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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