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경제학 (2) - 사람이 사람릉 힘들게 한다

탐욕의 끝, 집단살상과 문명파괴 그리고 이를 숨기려는 역사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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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석(yesoh)등록 2008.08.13 18:50
탐욕의 경제학 ② ;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한다

* 향후 이어질 장(章)들의 ‘키 센텐스’; <역사의 거울에 비친 세 가지 상(image) - 지배자, 노예, 그리고 자유영혼> <오늘 대한민국의 지배세력, 매국과 반역의 무리인가> <인간 정신의 발전사 - 선악의 끊임없는 투쟁> <부자는 서민에, 자본은 노동에 기생한다> <노동은 자본주의 이전부터 존재했고 자본주의가 사라진 이후로도 영원할 것> 등입니다.

물론, 사고의 흐름과 그때마다 글을 적어나가는 사정 및 형편에 따라 그 내용이나 순서 등이 적지 않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처럼 ‘탐욕의 경제학’시리즈를 마칠 때까지 계속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차제에, 그간 졸고를 읽어주심에 그리고 때론 이메일 등으로 의견 및 질의를 보내주심에,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탐욕이 빚어내는 현대문명의 또 다른 치부(恥部), 전 세계적인 식량위기다.

지금부터 200년 전 맬더스의 대재앙 예언 당시와는, 물론 그 원인과 양상을 크게 달리한다.
오늘 전 세계의 식량 생산량은 지구 위의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먹고도 남는다. 그러함에도, 지구의 한 쪽에서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비참하게 굶어죽는 지경이다.

사태의 진실은, 미국 및 유럽 등 강대국들의 막대한 농업보조금(연간 3,500억 달러) 지급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농축산물의 과잉생산이 초래되고, 이들 잉여생산물을 국제시장에서 강매하다시피 덤핑으로 출하시켜, 농축산물의 가격체계 자체를 교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들의 절반은 하루 1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그 위쪽의 유럽 암소들은 하루 보조금만 마리당 2달러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겨우 180만 남짓한 미국 농민들(재소자 숫자보다 적다)과 카길 등 국제곡물 메이저들의 탐욕을 충족시키고자, 불필요하게도 지구상에서 이런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농축산업, 소위 한미FTA 협정 타결 이후, 이제 궤멸이 임박한 상태다. 아니 축산업에선 이미 재앙적 상황이 시작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선택권이라고는 ‘급사(急死)할 거냐 아니면 고사(枯死)할 거냐’의 문제일 뿐이다.

문화적으로 반만 년의 농경민족 역사에 커다란 수치이며. 가까이로는 지난 수십여 년의 산업화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수탈당했던 농민들을 한꺼번에 ‘용도폐기’하는 후안무치한 짓이다.
현재로서는 <식량주권> 포기의 엄청난 후속 대가를 감히 그 누구도 예측하거나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혹자는, 일본이나 불란서 등의 농축산업 상황을 거론하며 한국농업의 생존 가능성을 가급적 긍정 전망하고자 한다.
이는, ‘수치 조작’ 등으로 한미FTA의 타당성 근거를 제시했던 ‘이경태’(전 국제경제연구원장)식 관변 담론의 연장에 불과하다.

분명한 것은, 일본이나 미국 또는 EU내 강대국들이 우리가 체결했던 한미FTA 같은 방식은 물론, 어떤 형태의 상호 FTA도 자기들 간에 체결할 필요나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역사적 현실이다.
그간 개도국들의 각성 등으로 인해 더 이상은 WTO를 통한 ‘다자간 협정’이 먹혀들질 않으니, 미국 등 강대국들은 자신보다 경제발전 단계가 낮은 국가들을 상대로 직접 ‘FTA' 낚시질에 나선 것이다.

지금의 이명박을 ‘미친 소’ 정권이라 한다면, 노무현은 스크린 쿼터 등 4대조건 진상으로 스스로 미끼를 장만해놓고 덥석 바늘을 문 ‘미친 붕어’ 정도에 비유할 수 있다.

당시 노무현은 김현종이나 김종훈 등 경제통상 관료들에 형편없이 휘둘렸던 것이고, 사실 대북공조 관련 법률가적 안목 말고는 경제사회 현안은 물론 대미관계에서조차 어떠한 역사적 혜안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비록 한때나마 기대를 한껏 모았던 노무현의 ‘정치졸부’적 실상이 여실히 드러났던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한다!

지구상에 인간 종이 출현한 이후 선사시대를 거쳐, 문자와 기록의 역사시대 전 과정을 통하여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탐욕’의 착취는 고사하더라도, 수시로 ‘증오’에 기초하여 인명을 집단 살상하는 일도 불사한다.

지배자들의 ‘위선’. 오늘 신자유주의(=신제국주의)라는 담론으로 자신들의 탐욕을 감추는 것을 넘어, 서민대중들을 향하여 ‘이게 다 너희를 위한 것이다’는 거짓 이데올로기로 ‘역의식화’ 시킨다.

또한 결과의 사후 ‘정당화’. 자신들의 탐욕과 증오에서 비롯된 무수한 인명살상 등 반문명적 죄악을 극구 숨기고자 한다. 증거인멸과 역사왜곡의 문제다.

같은 2차 대전 패전국이면서도 일본은 독일과 전혀 다르다. 일본이 그간 그리고 오늘도 그러하듯이, 패자는 패자대로 또한 승자도 승자대로 엄청났던 죄악의 증거를 인멸시키려 하고, 할 수만 있다면 ‘완전범죄’를 노린다. 잔존 증거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역사왜곡’을 일삼는다.

사실, 이기(利己)적인 행동에 관한 한, 동물 세계도 인간세계와 마찬가지다. 한 마리의 딱새는 다른 종인 두더지와 간혹 지렁이를 놓고 다투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딱새와 그러는 만큼 치열한 경쟁관계는 아니다. 바로 딱새들 상호 간에서, 지렁이를 비롯해 이용가능한 모든 자원을 갖고 더욱 치열히 싸우는 법이며, 특히 동성이라면 교미 상대를 두고서도 한판 승부를 더 벌여야 한다.

여기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동물들은 사람과 달리, 일단 꼬리를 내리거나 뒤를 보이며 도망치는 패배자를 더 이상 쫓아가면서까지 살상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동물들은 그러다가 괜히 다치기라도 한다면, 이는 쓸데없이 같은 종 내 다른 경쟁자에게 이득을 줄 수 있다는, 이른바 ‘이기적’유전자의 경고에 충실히 복종한다.

이에 비해 인간의 탐욕(貪慾)과 증오(憎惡). 일개 세균 등까지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가 공통으로 보유하는 유기분자, 곧 ‘DNA’의 지령을 훨씬 뛰어넘어, 오로지 인간 종만이 갖는 악성의 특장이다.

오늘날 크게 발달한 동물행동학은 동물들의 ‘의식’(意識), 곧 주변 환경과 사물들에 대한 인식능력에 관한 한, 인간 종과 침팬지는 물론, 인간이 공룡 등 파충류와도 사실상 별다른 차이가 없고, 그건 순전히 ‘양적’(量的) 차이에 불과한 것임을 가르쳐준다.

에피소드 하나. 형이상학적 인식론의 거두인 데카르트와 그 제자들은 ‘나는 사고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를 신봉한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틈만 나면 길을 지나는 숙녀들에게서 애완용 강아지를 뺏어다, 길바닥에 패대기치는 장난질을 쳐댄다. 그리고 잘난 체 말하길, “존경하는 숙녀여, 당신이 데리고 다니는 애완 짐승은, 여기 길가의 무수한 돌멩이들과 하등 다를 게  없는, 전혀 의식이 없는 사물입니다.”

굳이, 인간과 여타 동물의 차이를 찾아보자면, 아직까진 지구상의 인간 종만이 언어와 추상, 그리고 이에 기초하여 ‘뇌’ 안의 대뇌피질에다 일종의 ‘모듈’로서 각종 ‘응용프로그램, 곧 ‘역사’와 ‘문화’를 탑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 종과 침팬지 종(현재 인간과 유전자의 99.7% 공유)이 분화했던 500만 년 전을 거슬러 올라, 그 두 종의 ‘공조상’(共祖上)을 찾아 나설 필요조차 없다.
고작 10만 년 전 겨우 1만 명 남짓의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한 오지에서 빙하기의 ‘병목’(bottleneck)을 간신히 넘겼던 것이고, 이후 빙하가 물러가면서 전 세계로 점차 퍼져나갔던 것이다.

사실 지구상의 오늘 60억 인구 중 그 누구라도, 당신이 어느 곳에 살 건, 무슨 일을 하고 있건, 어떤 생각을 품고 있건, 당신의 조상은 나의 조상이고 나의 조상은 또한 당신의 조상이다.

탐욕과 증오의 끝, 집단살상과 문명파괴 그리고 이를 숨기려는 역사왜곡이다.

멀리로는, 여성을 통해서만 유전되는 세포내 ‘미토콘드리아’를 통해서 우리 인류의 조상들은 지금부터 수만 년 전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던 것으로 실증된다.

가까이로는, 우리 중 일부인 서구인들이, 고작 총포 등 물리력에서 조금 앞섰을 뿐인 과학문명의 우위를 갖고. 또 다른 일부인 북미거주 원주민들을 사실상 절멸시켰다.
거의 동시대에 중미의 아즈텍 문명 및 남미의 잉카 문명을 흔적조차 거의 남기지 않고 지워버렸다. ‘완전범죄’다.

오늘의 최강대국, 미합중국은 1776년 7월 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내외에 선포한다. (우리나라의 3.1 독립선언이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포일 쯤에 에 해당한다) 이를 전후하여 8년간의 독립전쟁(1975~1983)을 거친 후, 그보다 13년 후인 1789년에야 미합중국의 초대 정부를 수립한다.

당시로는 이른바 USA(United States of America), 문자 그대로 영어 문장 상 ‘복수’ 취급을 받는(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한 이후로 ‘단수’ 취급) 국가들 간 연합 형태, 느슨한 연방이었고. 총 인구 수는 450만 내외에 불과하였다.

이보다 대략 3백 년 전인 1492년 10월 12일(매년 ‘콜럼버스의 날‘로 기념된다), 콜버스의 신대륙 '발명'(discover 아닌 invent) 이후로, 자신들보다 먼저 북미 지역에 정착했던 인디언들을 사실상 절멸시켰다. (1492년 북미 인디언 총수는 약 500만 명이었던 걸로 추산되는데, 1900년 현재로는 25만 명만이 생잔한다)

오늘날. 미국 내 사막지대에 군데군데 남겨놓은 소위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eservation), 지난 역사에서 인디언을 사람 아닌 짐승으로 취급했던 엄청났던 죄악을 감춰보자는 기실 ’역사왜곡‘의 산 현장이다.

내일 모레면, 바로 대한민국의 63주년 광복절이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을 중심으로 일부 얼빠진 무리들이 8월 15일을 광복절 대신 60주년 ‘건국절’로 기념하겠다는 등 감히 역사왜곡을 서슴없이 해치울 기세다

이들은 작년 말 대선승리로 재차 집권에 성공하자마자, 자신들이 1948년 이승만 깡패정권의 단독정부 수립부터 6,70년대 박정희의 군사독재와 80년대 전두환 등의 유혈독재 등을 계승하는 세력임을 60주년 ‘건국절’ 행사를 통해 내외에 선포하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들 세력의 기관지 격인 소위 ‘조중동’을 통해서 틈만 나면 떠들어댔던 소위 ‘잃어버린 10년’(서민대중이 잃어버린 10년을 말하는 건 일면 수긍할 만)에 대해, 이전의 ‘국민의 정부’ 등은 비록 맞불로나마 언제 한 번 공개적으로“잃어버린 50년” 등을 운위한 적이 있었던가.

이들 집단은 때때로 서울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휘날리며 마치 자신들의 조국인 양 우러러보는 미국조차, 1919년 우리네 3.1 독립선언일과 개념상 일치하는 1776년의 독립선포일, 곧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 Day)는 해마다 기념할망정, 그 이후 8년간의 독립전쟁 등을 거쳐 13년 후에야 수립된 미합중국 초대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따위로 기념하는 ‘파당적’ 짓거리는 결코 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 장을 마감하면서, 궁금증은 더해간다. 인간들의 탐욕과 증오의 실체, 단순한 감정이나 정서의 분출인가, 아니면 합리와 이성의 논리체계인가?

무엇보다,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 종 특유의 문화에 기인하는,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적 세뇌작업에 기인하는 것인가?

2008. 8. 11. (월)   오용석 / 개방과 통합 (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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