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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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가영(kkamjigy)등록 2008.07.07 19:46

아버지, 이제 편히 쉬세요!

 

눈보라 치는 어느 겨울 날, 5층 건물 난간에 선 초로의 남자. 그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마지막 아버지의 모습이다. 나의 아버지는 4년 전 겨울 그렇게 세상을 등지셨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는 폐차장을 운영하고 계셨다. “폐차 사업이 얼마나 재미있는 줄 아니? 돌아다니는 차가 모두 돈이 될 수 있거든...”. 그러나 아버지의 바램은 이루어 지지 않았다. 큰 자본금 없이 시작한 사업은 빚이 또 다른 빚을 만들어내는 형국이었다.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아버지는 우리 삼남매에게도 돈을 빌리셨다. 남동생들은 은행에 가서 대출 보증서는 일이 잦아졌다. 큰 동생은 결혼 후 몇 년간 모아 두었던 적금도 아버지 사업 자금으로 드릴 수 밖에 없었다. 돈이 없었던 나는 현금 서비스를 받아 드렸다. 그리고 돌려막기라는 것을 통해 그 빚은 지속되었다. ‘오죽 답답하셨으면 그러셨을까’ 생각하면서도 나는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오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엄마는 그 즈음 나를 보기만 하면 눈물을 보이셨다.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아니 미칠 것 같았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사고로 척추를 다치셨고 대수술을 받고 다시 거동하기까지 고생하셨다. 병원에 모인 우리 삼남매는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다 모두 거리에 나 앉게 되는 건 아닌가...나는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자세히 몰랐지만 남동생들은 벼랑으로 치닫는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도 마음의 준비를 해 두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나는 설마했다.

그렇게 어려운 시간들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즈음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돌이킬 수 없는 낭패감으로 시커멓게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을...어떤 말도 부질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나는 그 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아버지, 힘 내세요. 잘 될 거예요’라고. 그렇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 드렸어야 옳았다. 그 때 이미 죽음의 그림자는 아버지의 얼굴에 드리워 있었다.

내가 첫 아이를 낳은 지 며칠 되지 않아 아버지는 그렇게 가셨다. 사람의 인생이란 그토록 허무하단 말인가.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정지된 느낌이었다. 아버지는 편지와 그리고 엄청난 빚을 남기고 떠나 버리셨다. 나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니다.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이 세상을 원망했다.

출산 후 몇 개월 후부터 다시 일하게 된 나는 어쩔 수 없이 친정집에 아이를 맡기게 되었다. 그러나 꽝꽝 대문을 두드리는 채권자들 때문에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날이 많았다. 엄마도 나도 나의 아이와 조카들까지 불을 끄고 쥐죽은 듯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나는 우리 집으로도 빚쟁이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었다. 어느 날은 엄마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아주머니와 집 앞에서 마주쳤다. 그녀는 처음에는 분노로 몸을 떨더니 그 다음에는 통사정을 한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엄마는 친한 친구분들의 돈을 가져다 아버지의 사업자금으로 쓰셨지만 갚을 수 없게 돼 버린 것이다. 아들 장가들일 돈, 남편 퇴직금, 언니에게 빌린 돈, 계돈까지. 이 죄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나로서는 모르겠다. 더 이상 친구가 없는 엄마는 속죄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야만 한다.

아버지가 남긴 빚은 ‘상속포기’ 라는 제도를 통해 해결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조카의 아이들에게 까지 변제의 의무가 주어진다. 정말 무섭지 않은가. 이제 겨우 1살, 2살 된 아이들이 가늠하기조차 힘든 빚을 떠안고 살아가야 하다니... 길고도 힘겨운 상속포기 절차는 남동생들이 해결하였다. 그들은 이제 나의 오빠라 할 정도로 머리가 하얗게 새었다.

공식적인 빚은 그렇게 해결했지만 개인들에게 빌린 돈은 해결하기 쉽지 않았다. 법원에서 심심치 않게 고소장이 날아왔다. 법원에 출두하라는 내용이었다. 내용증명이라는 것도 그 때 처음 보았다. 엄마는 ‘파산신청’이라는 과정을 통해 금융권의 빚을 탕감 받았다. 우리의 따뜻한 보금자리였던 친정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막내동생네는 엄마와 함께 간신히 월세집을 얻어 이사하였다.

나의 동생들, 힘겨운 세월을 헤쳐오느라 지쳤을 것이다. 큰 올케는 이따금 밤에 홀짝거리며 소주잔을 기울인다고 한다. 작은 올케는 엄마의 우울함을 옆에서 지켜냈을 것이다.

이제는 고소장도 더 이상 날아오지 않는다. 채권자들이 우리 집 문을 부수고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따위도 이제는 없다. 우리 삼남매는 아직도 은행에 많은 이자를 물어가며 그렇게 살고 있다. 엄마는 이후로 모든 의욕을 놓아버리신 것 같다. 살뜰히 가정을 지켜오신 그분에게 이제는 옥상에 상추며 고추 심고 가꿀 일도, 주말마다 아버지와 낚시갈 일도, 우리를 모두 불러 고기를 구워 먹일 일도 없다.

지난 토요일 백중 천도제를 지내고 왔다. 나의 아이들과 조카들은 그 곳의 뜰을 뛰어다니며 더 할 나위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무럭무럭 잘 자라는 아이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만날 수는 없지만, 작은 항아리 안에 계신데요”. 나의 큰 딸아이가 하는 말이다.

한 바탕 꿈을 꾼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그런 꿈 말이다. 아버지 문상 왔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삼남매를 그렇게 잘 키워놓으셨는데...”. 그리운 아버지. 이제는 편히 쉬세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좋은생각에도 보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실명이 나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2008.07.07 19:51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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