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폐색의 현상, 2008년의 한국

- 강권, 촛불, 그리고 우리 세대 청년들에게 보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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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형덕(doors68)등록 2008.06.30 22:19

2008년의 서울을 보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평론이 한 편 있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평론 <시대 폐색의 현상-강권, 순수자연주의의 최후 및 내일에의 고찰(時代閉塞の現状-強権、純粋自然主義の最後および明日の考察)>이 그것이다.

 

2008년의 한국과 1910년의 일본, 그리고 10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과 도쿄와 서울이라는 공간적 간극 사이에 놓여진 '시대폐색의 현상을' 한 번 살펴보자. 물론 이러한 단순 비교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숙지하고 읽는다고 하여도 아마 여러분은 그 유사성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겹쳐읽기는 사실 매우 괴로운 심정을 안겨준다.

 

1910년과 2008년의 한국의 비교불가능 함에도 불구하고 이 시인이 짚어내고 있는 당대가 어째서 2008년의 한국과 겹쳐지는 것인가?

 

(사진1)

이시카와 다쿠보쿠(1886- 1912년)

 

다쿠보쿠는 "세계 지도 위 이웃의 조선 나라/검디 검도록 / 먹칠하여 가면서 가을 바람 듣는다<9월 밤의 불평>"라는 시구절로 한국에서도 매우 유명한 일본의 시인이다.

 

다쿠보쿠의  <시대 폐색의 현상>은 다쿠보쿠가 죽기 2년전에 쓴 평론이다. 1910년은 조선이 일본에 강제적으로 합병된 해로, 일본에서는 일명 대역사건이 일어나, 1910 년 5월에서 9월에 걸쳐 나가노, 도쿄, 오사카, 구마모토 등 각 지방에 사는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가 다수 체포되었다.

 

다쿠보쿠는 강권과 청년을 일컬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하여 여기에 우리들이 논자(論者)의 부주의에 대해 그 시비를 가리는 것은, 생각컨데, 오늘의 우리들에게 있어 새로운 슬픔이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로 우리들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이해가 특히 너무나도 철저하지 못한 상태에 있음과 더불어 우리들의 처한 현재 및 현재까지의 경우가 저 강권(強権)을 적으로 하는 경우의 불행보다 더욱 더 불행하다는 것을 스스로 승인한 까닭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 누구라도 우선 마음을 가라앉히고 저 강권과 우리들 자신간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반드시 거기에서 예상외의 커다란 간격(불화가 아닌)이 놓여져 있음을 알고 놀랄 것임에 틀림없다.(번역 및 밑줄 필자, 이하 같음) "

 

위의 인용이 2008년의 한국 상황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권력의 횡포를 강권으로 인식하고 청년들의 인식을 논하는 다쿠보쿠의 논점은 현상황과도 이어지는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커다란 '간격'은 '불행'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다쿠보쿠는 한발짝 더 나아가서,

 

" (생략) 적어도 그것에 대변하는 이유를 알지못하고 있음과 같이, 우리들 청년들도 같은 이유로 인해, 모두 국가에 대한 문제를(그것이 오늘의 문제라고 하여도, 우리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관련된 내일의 문제라 하여도), 모든 것을 부형(父兄) 의 손에 일임하고 있는 것이다.  (생략)  국가에 관한 문제가 우리들의 뇌리에 들어오는 것은 단지 그것이 우리들의 개인적인 이해를 침해할 때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전혀 모르는 사람간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라 고 말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촛불집회 상황을 보면 6.10항쟁을 겪었던 현 기성세대가 이 시대의 청년인 대학생들의 참여 저조와 인식 부족을 개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청년(필자를 포함해)들은 정말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관련된 내일의 문제라 하여도), 모든 것을 부형(父兄)의 손에 일임하고"있는 것이 아닌지 말이다. 아니면 중고등학생들에게 맡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진2)

다쿠보쿠의 동상

 

다쿠보쿠는 이러한 청년들의 인식을 "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들 (청년의) 이해는 아직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당대의 청년들을 다쿠보쿠는 이렇게 평가한다.

 

" 일찍이 우리들의 사이에 찬입된 철학적 허무주의처럼, 또한 그것은 애국심의 한 발짝 나아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일견 저 강권을 적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당연히 적으로 삼아야할 자에게 복종한 결과이다. 그들은 실로 일절의 인간적 활동을 백안시하는 것처럼, 강권의 존재에 대해서도 전혀 교섭력이 없는 것이다 - 그런 만큼 절망적인 것이다."

 

물론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 이렇게까지 절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와 같은 요소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다쿠보쿠는 1910년 도쿄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 시대 폐색의 현상은 단지 그러한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생략) 실로 청년들은 참고 또 참아도 억누를 수 없는, 그들을 갇아놓은 상자의 가장 판자가 얇은 곳, 혹은 틈바구니(현대사회조직의 결함)을 향해 너무나 맹목적으로 돌진하고 있다. (생략) 그리고 우리들 일부는 <미래>를 빼앗기고 있는 현상에 대해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경의와 복종을 표시하고 있다. (생략) 그리하여 우리들 창년은 이 자멸의 상황으로 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드디어 그 <적>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들의 희망과 그 외 이유에 의한 것이 아닌, 실로 지당한 것이다. 우리들은 일제히 일어나 우선 이 시대 폐색의 현상에 선전포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서 다쿠보쿠는 "내일에 대한 고찰! 그것이야 말로 우리들이 오늘날에 있어 해야만할 유일한 것이며, 모든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다쿠보쿠는 청녀들에게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

 

"이 실패는 무엇을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모든 '기성'적인 것을 그대로 둔 채, 그 안에서 자력으로 우리들의 천지를 새롭게 건설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

 

다쿠보쿠는 마지막으로 이 평론의 대미를 다음과 같이 장식한다.

 

"(생략) 우리들 모든 청년의 마음이 <내일(미래)>을 점령한다면, 그 때 <미래>의 모든 것이 처음으로 가장 적절한 비평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에 몰두해서는 시대를 비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문학에 바라는 것은 비평이다."

 

"시대에 몰두해서는 시대를 비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격언이 아닌가 싶다.

 

2008년의 한국과 1910년의 일본, 그리고 100년이라는 시간을 간극으로 두고, 다쿠보쿠를 다시 꺼내보는 심정은 그렇게 유쾌하지 만은 않다. 다쿠보쿠의 시를 오늘의 문제가 아닌 과거의 문제로 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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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30 22:18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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