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이 거듭된 29-30일 게릴라 시위

계속해서 진화하는 시위대, 여전한 불법체포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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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철중(almadore)등록 2008.06.30 22:39
 29일 오후 5시에 시작된 촛불시위는 30일 새벽 4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전날 경찰의 강경진압에도 불구하고 5천여 명이나 모였고, 비교적 적은 숫자였지만 변화무쌍한 예측불허 시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찼다.

시청광장은 경찰들에게 맡기고....

이날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시위에 앞서 정부는 긴급 담화를 열어 불법시위를 엄정 대처하겠다며 다시 한 번 엄포를 놓았다. 이에 호응하듯이  경찰은 시청 광장 주변을 경찰차로 전부 에워싸고 시청역 출입구 한 개를 막아버리는 이른바 '원천봉쇄'를 시도했다. 원천봉쇠는 80년대 이 후 처음으로 다시 등장한 것이어서 흥미로웠지만 5공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역시 짜증스런 것이었다.

삼삼오오 몰려들던 시민들이 통행권 침해라며 경찰에 강력히 항의하는 등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시민들은 곧바로 도로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지휘부 없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시민들이 어디로 향할지 몰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홍해를 건너는 심정으로 경찰 저지선 앞에 집결

경찰은 가까스로 주요 도로를 봉쇄하고 시민들을 인도로 밀어부치면서 종로2가에서 종로1가로 향하는 보신각 사거리에 저지선을 쳤다. 이 때 시민들이 어느새 모였는지 한 눈에도 수천은 될 것 같은 시위대가 종로 3가 방향에서 무리지어 경찰 저지선을 향해 걸어왔다. 그 선두에는 노회찬 신보신당 공동대표가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 앞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시위대를 이끌고 있었다.

노회찬 대표가 경찰 저시선 바로 앞에 연좌하고 그 뒤로 시민들이 죽 연좌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위대는 약 5천 여명 정도로 늘어났다. 대책회의의 방송차량을 경찰이 사전에 압수하는 바람에 시위대는 오직 힘찬 육성만으로 '이명박은 물러나라' 외치며 나름의 촉제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시민 방송녀 깜짝 등장, 다시 흥겨운 축제로!

그런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서 나타났는지 새로운 방송차량이 나타났다. 비록 이전 것보다는 열악한 음향설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시위대는 그것 만으로도 큰 힘을 얻었고 다시 예전의 축제 분위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날 방송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확성녀'를 패러디한 '국민방송녀'였다.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라와 있다는 MP3 파일에는  확성녀 보다 훨씬 아름다운 목소리로 '전경 여러분, 여러분은 권력에 이용당하는 피해자입니다. 폭력행위를 즉각 중지하십시오. 여러분이 이런다고 밥 더 주지 않습니다. 월급 더 주지 않습니다. 점오시간이 지났으니 어서 숙소를 돌아가십시오. 시민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즉각 철수하십시오. 독한 경찰 전의경들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주십시오. 잠시의 시민기자단이 얼굴 촬영을 한 후 사회적으로 생매장시켜 드리겠습니다' 라며 통렬하게 비판했다.
('시민방송녀'의 목소리를 들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진압 작적 개시

0시 20이 지나자 경찰이 진압에 나섰다. 노회찬 심상정 공동대표와 조승수 전 의원, 송영길 의원 등 10명의 전 현직 의원들이 스크럼을 짜서 경찰의 폭력진압을 원천봉쇄하고 있었지만 일부 병력이 의원들을 에워싸고 나머지는 도로로 진입해 시민들을 인도로 밀어부쳤다. 이날 진압은 전날과 달리 시위대 앞으로 돌진하지 않고 천천히 밀고 들어왔다. 살수차도 없었다.

하지만 단 몇 분만에 착은 시위대들은 거의 인도로 밀려나고 의원들만 도로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인도에서 간간히 전경과 실랑이를 벌이는 시민들도 있었고 의원들 옆에서 같이 연좌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마치 뿔뿔이 다 흩어진 듯 보였다. 전경들도 상당수 병력이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재기 넘치는 게릴라 시위 시작

그러나 시위대는 의외로 끈질겼다. 일부 시위대가 종로에서 동대문까지 도로 행진을 깜짝  감행을 시도했고 과정에서 더 많은 시위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시위대는 동대문에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이젠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공동대표와 전 의원만 남아 연좌하고 있는 종로로 다시 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시로 아직도 종로 일대에 남아있던 시위대와 연락을 취하며 그 곳 경창의 반응을 살폈다. 경찰이 동대문쪽 행동에 낌새를 눈치챈 것 같다는 재보에 시위대는 도로에 에서 인도로 행로를 바꾸었고 세운상가 근처에서 도로로 직진하는 대신에 청계천 쪽으로 우회에서 보신각까지 가자는 계획을 세웠다. 이 모든 과정을 시위대는 매우 즐기는 것 처럼 보였다. 한 시민은 스스로로 자신들이 행동이 진화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하며 무척 뿌듯해 했다.

그런데 을리로 3가 지하철역 근처에서 전경들이 시위대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시위대는 뒤로 돌아서 인도를 따라 행진을 계속했다. 이 때 갑자가 전경들이 이들을 상가 벽쪽으로 일제히 밀어붙였다. 체포 전담반들이 수없이 나타나 이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경찰 불법체포 시작, 계속되는 문제재기에도 아랑곶하지 않아...

이 과정에서 경찰들은 미란다 원칙의 고지도 없었고 체포 사유도 말해주지 않았으며 관등성명도 대지 않았다. 주위에 있던 기자들이 불법체포라고 외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시민들을 경찰차에 밀어넣었다. 경찰차에 오르던 한 시민은 차 안에 있던 사복경찰에 의해 밀쳐져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찧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분명히 시위대는 인도를 걷고 있었기 때문에 도로교통법 위반도 아니다. 구호도 외치지 않았기 때문에 집시법에 걸리지도 않는다. 현행범으로 체포될 이유도 없다.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벌금 50만원 이하의 죄를 지은 자에 대해서는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없다. 또한 그 대상인의 신분과 주거가 확실하고 도주,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는 경우에도 구속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으로 경찰들은 체포를 강행했다.

한 편, 체포가 시작되기 전, 보신각에서는 을지로 상황을 전해 듣고 조승수 전 의원이 한 경찰 간부와 연좌를 푸는 조건으로 시위대를 연행하지 않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경찰은 노회찬 대표와 조승수 전 의원이 을지로 현장으로 향하는 사이 시위대 연행을 강행하여 상황을 종료해 버렸다.

이날 시위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너무나 활기차고 즐거웠다. 또한 시위대가 여전히 진화할 수 있고 발전 가능하다는 희망도 안겨 주었다. 비록 우리의 요구 관철이 늦어지더라도 지치거나 실망하지 않고 촛불들이 계속 모이고 지혜를 모은다면 촛불은 절대로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경찰이 아무리 불법을 자행하고 무력으로 촛불을 압박하더라도 우리는 비폭력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그들을 폭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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