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아이들을 죽였다!

지진으로 드러난 부실 건축공사

검토 완료

박인성(pyx97)등록 2008.09.04 16:58

12일 지진이 강타해 건물이 무너진 중국 쓰촨성 두쟝지안 시 주유안 중학교에서 구조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약 9백명의 학생들이 매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연합뉴스/신화사

 

지난 5월 12일 중국 쓰촨성(四川省) 원촨(汶川) 일대에서 발생한 대지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엄청난 피해와 영향을 주었고, 또 아직까지도 그 영향이 계속되고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애통하게 하는 것은, 수많은 학교 교실 건물이 붕괴되면서 그 안에서 수업 중이던 수많은 어린 아이들과 교사들이 희생되었다는 점이다. 중국 내에서는, 이에 대하여, “애들을 죽인 건 건물이다. 지진이 아니다”라는 문제가 제기되며, 이른 바 콩비지공정(豆腐渣工程)에 대한 조사와 책임 추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관련 실무자와 전문가들의 반성과 참회를 촉구하고 있다.

 

2개 동의 교실건물이 붕괴되면서 278명의 학생과 교사가 사망한 쥐위엔중학교(聚源中學)는, 초기에 현장에 달려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눈물을 흘리고 희생자들에게 3배 절을 하며 애도를 표시하는 장면이 보도되어 눈에 익은 사고 현장이다. 이 학교의 희생자 가족들을 가장 애통하게 하는 것은 주변의 다른 건물들은 단 한 채도 붕괴되지 않고 서 있다는 것이다. 손상 정도가 심한 것도 벽체에 금이 간 정도이다.

 

이 같은 사례는 한 둘이 아니다. 두장옌(都江堰) 소학교의 상황도 비슷하다. 239명의 교사와 학생을 희생시킨 붕괴된 교실건물의 바로 뒤편에 있고, 같은 해에 건설한 유치원 건물과 약 100m 거리에 있는 베이지에(北街) 소학교 건물은 한 채도 붕괴되지 않았다. 물론 그 건물이 붕괴되지 않고 온전한 유치원과 소학교 학생중엔 사망자가 한명도 없다. 따라서 수많은 아이들이 죽은 게 지진 때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교실 건물 붕괴 장면을 목격한 두장옌(都江堰)의 또 다른 중학교 교사의 말에 의하면, 붕괴된 교실건물은 불과 약 10초 만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420명 학생중에 운 좋게 빨리 빠져 나온 학생은 십수명에 불과하였다. 지진이 발생한 당일 오후 2시 28분은 점심식사 후 오수(午睡)에서 깨어나 2분 후에 시작될 오후 수업 준비를 하고 있던 시간이었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계획생육(計劃生育)” 한 자녀 정책의 영향으로 거의 모두가 외동아들이나 외동딸이었다. 사고 직후 소식을 듣고 달려온 부모들은 거의 미친 사람 같은 모습으로 맨 손으로 벽돌과 기와 더미를 파헤치다가, 두세 사람이 힘을 합쳐서 크고 무거운 조립식 콘크리트 패널 조각을 들어올리기도 하였으나, 장비없이 맨손으로 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들의 손과 몸도 상처와 혈흔 투성이가 되었다.

 

폐허더미에서 운 좋게 산 채로 또는 팔다리가 짓뭉개진 채로 또는 절단된 채로 구조된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었고, 얼굴과 사지가 짓눌리고 피투성이가 되어 있어서, 교복 안에 입은 티셔츠 등으로 자기 자식 여부를 판별하여야 하였다. 비상계단이 설치되지 않아서 희생자가 더 많았다. 계단이 무너진 자리에서만 50여명의 시체가 층층히 쌓인 체로 발견되었다.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에, 건물 잔해 밑에 깔려서 서서히 생명이 꺼져가는 자식을 폐허 위에서 내려다 보며 안타깝게 부르며 울부짖고 있는 부모, 뒤늦게 도착한 구조대에 이미 죽은 자식을 가리키며, “저 아이가 내 딸이에요, 우리 딸은 공부도 정말 잘 했어요”하며 실성한 듯 흐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은 보는 이들 모두를 슬프고 안타깝게 하였다.

 

지진이 지나가고 난 후 보름 후에, 교실 건물이 무너져서 127명의 학생이 사망한 쓰촨성 미엔주시(綿竹市) 푸신진(富新鎭) 제2 소학교 부모들이 죽은 자식의 영정을 가슴에 품고, 폐허가 된 학교 문 앞에 모여서, 상급 행정청이 있는 더양(德楊)시로 항의하기 위하여 도보로 행진을 시작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미엔주시 당위원회 장(蔣)모 서기가 이 행진을 만류 저지하려고 대열 앞에 4차례나 무릎 끓고 호소하는 장면이 사진과 함께 보도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중국에서, 정부에 항의하기 위한 인민들의 집단행동과 그것을 만류하고자 당서기가 보통 백성들 앞에 무릎까지 끓은 것, 그 사실을 중국의 관변 매체들이 사실 그대로 보도한 것 모두 보통 때 같으면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이 소학교의 부모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도, 무너진 교실건물 주위에 있는 다른 건물들은 하나도 붕괴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1960년대에 지은 건물조차도…? 어른들이 지은 “콩비지” 교실건물이 수많은 아이들을 죽인 것이다. 이 죄를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

 

붕괴된 교실건물은 3층 건물로 매 층에 4개의 교실이 있고, 연건축면적 1073㎡이며, 1988년 6월에 착공하여 1989년 5월에 준공되었다. 그러나, 설계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인근 타 중학교 교학루 건물 설계도를 복사하여 사용하였으며, 게다가 내력보의 단면적을 500㎜×240㎜에서 500㎜×200㎜로 줄이고, 원 설계대로 2층구조로 골조공사를 마무리한 상태에서 다시 3층을 증축하는 식으로 건조되었다고 밝혀졌다.

 

폐허가 된 현장에 널려 있는 조립식 콘크리트 패널 조각을 들여다 보면, 콘크리트 안에 철근이라기 보다는 철사가, 심지어는 철사 조차도 없는 경우도 많았다. 5월 14일 쓰촨성 교육부문이 밝힌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붕괴된 교실 수는 6898개이다. 그러나, 가장 피해가 크고, 지진 직후에 여진과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하여 봉쇄 조치된 원촨(汶川)과 베이촨(北川) 지역의 수치는 포함되지 않았다.

 

대지진 발생 이틀 후에, 쓰촨성 교육부문은 교실건물 붕괴 원인을 5가지로 발표하였다. 첫째, 지진이 예상한 강도를 초과하였다. 둘째, 수업시간에 지진이 발생하였다. 셋째, 학생들이 집중하는 교실과 복도는 지진 피해에 특히 취약하다. 넷째, 건물이 낡고 노후하였다. 다섯째, 학교건물 설계에 항진(抗震)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였다.

 

이에 대하여 쓰촨성 교육청 소속 모범 공무원 린치앙(林强)은, “교실건물이 붕괴되고 수 많은 학생들이 죽은 비극을 지진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염치없고 양심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붕괴된 베이촨 중학에서 약 700미터 거리에 있는 한 소학교가 붕괴되지 않고 건재한 이유를 설명하였다. “간단하다. 시공 감독과 감리를 잘 했다. 그 학교는 중국과학원이 출연해서 지은 희망소학교이다. 그러나 붕괴된 건물들 대부분은 이 같은 감독감리가 없었다.”

 

린치앙은 쓰촨성 대표로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선정되어 있었으나, 자책하고 반성하는 의미에서 성화봉송 주자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현장 조사차 파견 나온 건설부 소속 한 전문가의 탄식하는 말도 인상적이다. “이렇게 많은 어린 아이들이 죽다니… 우리 정부직능부문과 계획가, 건축사, 구조공정사 등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대지진이라는 재앙을 인민들을 단결시키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이벤트로 활용하는 듯한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대응을 보고 있노라면, 비록 그 안에 후진적이고 독재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일사분란한 국가지도 체제와 리더쉽의 권위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사스(SARS) 사태와 같이 재앙을 극복하면서 8월 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중국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학교 건물의 건설시공 방면에서도 반성과 참회와 자각이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국토연구원 발간 월간 [국토] 7월호용 국토글로벌 중국편 원고로 보낸 내용을 약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2008.06.23 14:59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국토연구원 발간 월간 [국토] 7월호용 국토글로벌 중국편 원고로 보낸 내용을 약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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