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다시 돌아온 '빨갱이' 논쟁

대한민국에 '빨갱이' 시비가 다시 돌아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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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훈(yonghun21c)등록 2008.06.21 17:11
 1950년 2월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는 “국무성 안에 적어도 250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주장을 한다. 그의 주장은 입증 자체가 불가능한 억지에 불과했지만 경색된 미국 내 반공노선은 그 억지를 진실로 만들어버렸다. 때문에 그 누구도 매카시 의원의 억지를 반박할 수 없었고, 그 결과 무고한 사람들까지 ‘빨갱이’로 몰리는 결과가 발생했다. 물론 매카시의 주장은 결국 에드워드 머로와 같은 정의로운 언론인에 의해 거짓임이 낱낱이 드러났지만, 그가 불러온 미국사회의 일대 파장은 미국의 대외적 위신과 지적 환경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

이미 반세기가 지난 타국의 이야기를 지금 꺼내는 이유는 매카시즘이라고 불리게 된 1950년 미국의 이야기가 2008년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적용되는 까닭이다. 광우병 감염 위험이 다분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치는 이른바 ‘쇠고기 정국’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항의했고 지난 10일에는 전국 각지에 100만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정부를 규탄했다. 시민들이 주장한 것은 분명 ‘쇠고기 재협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어느새 ‘빨갱이’의 배후조정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주목할 점은 대한민국에서 매카시즘은 언제나 정권의 마지막 파수꾼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광주 학살 원흉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구호의 의미가 무엇인지 일반 시민이 알게 되었을 시점인 86년, 전두환 정권은 건대에 모인 학생들은 북괴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들이라고 몰아세웠다. 덧붙여 북한의 금강산댐에서 200억 톤의 물을 방류하면 서울시가 물에 잠긴다는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기도 했다.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문파동, 경제 파탄과 더불어 김영삼의 차남 김현철의 뇌물수수 등으로 인해 지지율이 3%까지 떨어져 ‘정권타도’의 구호가 현실로 다가올 때쯤 그들은 96년 연대에 모인 2만 여명의 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아 국민의 눈을 속이고 위기를 모면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취임한 지 불과 100여일이 지났을 뿐인데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7.4%까지 떨어졌다.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록적인 단기간 내 지지율 추락은 현 정부의 실정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여전히 ‘빨갱이’ 딱지 붙이기로 일관하고 있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과거와 같이 매카시즘으로 이번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86년 ‘금강산댐’ 시절의 그 국민이 아닌 까닭이다. 케케묵은 이념논쟁은 국민의 수많은 관심사 가운데 한 축에도 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쇠고기 정국을 통해서도 보았듯 우리 국민은 이미 이념에서 탈피했다. 냉전적 사고를 탈피하지 못한 것은 오로지 정부와 여당뿐이다. 만약 정부와 여당이 집권 초 주장했던 ‘실용’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계속해서 좌우논쟁으로 이 문제를 끌고 간다면 그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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