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집회가 반가운 사람

"백만의 촛불로 충전하는 오연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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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연(jupallue)등록 2008.06.12 17:33

“언론재단 앞에 오마이 뉴스 중계차가 있을 거예요. 커서 잘 보일 겁니다. 거기서 보죠.”

오연호 대표에게 문자가 왔다. 중계차 앞은 방송 준비로 분주해보였다. 6.10 100만 촛불 대행진을 맞이하여 오마이뉴스에서는 <생방송 자유발언대>행사를 마련했다. 이 행사를 오연호 대표와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늦게, 멀리서 그가 나타났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은 까무잡잡했고 말끔히 차려입은 양복이 커 보일 정도로 살도 빠진 듯했다. 반갑게 손을 내미는 그의 눈빛은 예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졌다.

 

 

 10일 오후 5시. 광화문 네거리와 시청 사이에 세종로 일대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생방송 자유발언대>가 5시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이한열 추모제 행사 중계 때문에 조금 늦춰져 6시가 돼서야 시작되었다.  아무런 사전 계획도, 대본도 없이 카메라 앞에서 섰다. 오 대표 말대로 즉흥이 이 행사의 중심 모토였다.

 

<생방송 자유발언대>를 진행하는 오연호 대표와 시민앵커 지주연 오연호 대표가 태평로의 전체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변태섭

 

 오 대표가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사전 마이크 테스트를 했다. 촬영 준비는 모두 끝났다. 촬영 기자는 오 대표에게 사람만 가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는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바로 <생방송 자유발언대>의 오프닝을 열었다. 조금은 어수선한 출발이었다.

 

 시민들에게 말할 공간을 주다

 

 첫 번째 자유 발언자는 여중생 3총사였다. 시험 한 달 전인데도 나왔다는 열혈 촛불 참가자들이었다. 아이들은 촛불 집회를 가지라 말라는 가정통신문과 중학생이 무얼 아느냐며 무시하는 일부 어른들에 화가 나있었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욕 좀하겠다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냥 어려보이지만은 않았다.

 

 두 번째 자유 발언자는 성공회대학교 김민웅 교수였다. 그는 조금 전까지 청계 광장 입구에서, 민주노동당 주최의 '08촛불대항쟁의 교훈과 과제' 토론회에서 강연을 했다. 소통이 불통된 것이 답답하다는 그는 촛불 한 개는 끌 수 있어도 하나가 된 촛불은 절대 꺼질 수 없다며  6.10 촛불 문화제가 역사의 새로운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발언을 하고 있는 시민과 진행자 지주연 김용국씨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시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 이영은

 

 

 이 두 발언자를 끝으로 1부 <생방송 자유발언대>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오 대표가 한손을 돌리며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벌써 한 시민은 카메라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와 마이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말을 하고 싶은, 나를 표현하고 싶은 시민들은 예상외로 많았다.

 

 대구,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학생, 교수, 목사, 스님, 농부, 노동자, 주부 등 각 계 각 층이 자유발언에 참여했다. 웅변하듯 외치기도 하고, 떨려서 입을 계속 가리기도 하고, 때로는 침착하게, 때로는 거칠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내뱉는 데는 주저하지 않았다. 오빠가 조금 있으면 군대 가서 걱정이 된다는 아이들, 엄마들이 뿔났다며 직접 뿔을 달고나오는 엄마와 딸, 한인미주주부 모임에서 진실을 알리겠다고 나온 교민, 대운하와 민영화 등 새 정부의 정책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하는 시민들. 그들은 제각기 다른 말들을 했지만 그들이 이곳에 나온 이유는 같았다.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오 대표는 멀찍이서 시민들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 2분을 초과해도, 말을 잘 못해도, 욕을 해도, 그는 자르지 않았다. 그저 시민들이 “오마이뉴스 짱” “수고 많으십니다” 등의 말을 할 때마다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오후 7시, 태평로에는 쭉 늘어앉은 시민들로 가득했다. 이제 곧 촛불 문화제 공식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는 <생방송 자유발언대>1부를 마치고 촛불 대행진 후에 2부를 진행하기로 약속했다.

 

 오직 오마이뉴스만이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오마이뉴스만의 경쟁력이었다. 기존 언론과 신생 언론과 차별성을 두기위해 항상 고심해왔던 오 대표다. 그는 이번 촛불 집회를 맞이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갔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기치에 맞게 시민 참여 공간을 확대해주는 콘텐츠들을 마련했다. 실시간으로 촛불 집회를 생중계하고, 기사도 시간대별로 계속 내보냈다. 기사든 동영상이든 편집하지 않았다. 편집을 하게 되면 기자의 주관이 개입되기 때문에, 독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날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방문자는 줄었고, 안티는 늘고 답이 없어보였던 오마이뉴스였다. 처음 창간되었을 때의 신선함을 잃었다. 그런데 그들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번 촛불 집회의 최대 수혜자는 오마이뉴스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3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자발적 시청료 내기에 참여했고 16일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1억 5천만이 넘는 돈이 모였다. 오 대표는 예전부터 있었던 제도인데 이렇게 크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이런 일은 세계 최초일 거예요. 우리나 시민이나 서로 감격하고 있어요“ 중계 비용을 시민 스스로 지불한다는 것, 이는 시민들이 이제 방송도 만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연호 앞을 내다 보다

 

그는 두 번째 촛불 집회 이후 거의 매번 현장에 나왔다. 그는 이번 촛불집회가 시민 각자가 미디어가 되는 최초의 집회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이제는 자신의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기사를 쓰고 의제 설정까지 한다며, 점점 직업기자와 시민기자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자들의 몫까지 시민들이 해낸다며 놀라워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그의 말이 새로운 촛불의 현장에서 재현되었다.

 

 오 대표 주변에는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 반 이상은 시민기자 출신이다. 박상규 취재 기자( 33, 남)는 원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누구나 무엇이든 써도 된다기에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렸고 시민기자가 되었다. 정식 입사 이후 요즘이 제일 바쁘다는 그는 “계속 철야 근무예요. 그래도 지치지 않고 좋아요. 시민들이 호응해주니 지칠 새가 없어요.” 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기자의 길을 열어준 오 대표에 대해 그는 “반짝반짝 한 사람이에요. 열정적이죠. 그런데 자기 멋대로 밀어붙여요.” 라고 평했다. “그래도 우리가, 또 시민들이 제안하면 하나하나 수용하는 사람이에요”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박윤미(20, 여) 학생은 학교에서 오 대표의  “온라인 저널리즘” 수업을 듣고 기자의 꿈을 키웠다고 했다. 그전에는 종이신문만 보았지 인터넷 신문을 언론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그녀다. 오 대표를 만나면서 시민 기자 활동도 하고 블로거 활동도 열심히 한다고 했다. 진짜 기자가 되기 전 저널리즘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오마이뉴스가 그녀는 고맙다. 그녀는 “오연호 선생님은 권위적이지는 않지만 권위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가 공론의 장을 개방해 참여를 이끌고 정보를 공유하여, 인터넷 언론매체의 권위를 얻었듯, 오 대표 역시 오마이뉴스와 닮았다는 것이다. 의도 했든 안 했든, 그 역시 스스로 권위를 만들어 갔다.

 

 시민은 오마이 파워

 

 오마이뉴스 중계차 앞에는 조선일보가, 뒤로는 동아일보가 있었다. 그 앞을 지나는 시민들의 태도는 판이했다. 오마이뉴스를 향해서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그는 그런 시민들에게 가벼운 목례로 답했다. 그를 찾아온 시민기자, 학생, 지인, 언론인 등 모두를 악수로 맞이했다.

 

 충전을 하러온 시민에게 ‘이따 찾으러 오세요’라고 친절히 말하고, 타 방송사가 취재수첩을 달라고 하자 흔쾌히 나눠주며, 제보하고 싶다는 시민에게 바로 명함을 꺼내 주는 오마이뉴스팀. 언론의 공간을 넘어, 중계차의 작은 공간마저도 기꺼이 시민들에게 내어주는 그들을 보니 ‘최대 수혜자’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촛불 문화제의 행사가 밤 9시에 끝났다. 이어지는 촛불 대행진과 함께 <생방송 자유발언대> 2부를 진행하려 했지만, 6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행군 앞을 끼어들 수는 없었다. 오 대표는 앞으로의 촛불 집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시민이 기자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사람의 대답치고는 심심했다. 곧바로 한마디가 돌아왔다. “왜냐고요? 시민들은 유동적이니까” 이미 그는 기자의 힘을 빼고 시민을 관찰하고 있었다.

 

 오락성과 투쟁성, 개인의 자유와 연대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촛불집회를 보며, 오 대표는 앞으로의 오마이뉴스를 위해 즐거운 충전중이다.

2008.06.11 22:09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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