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걱정없는 스님의 밥상, 그곳이 극락이구나

서른명 스님들의 건강한 먹거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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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희(cindy53)등록 2008.05.23 16:33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이어지고 광우병 괴담이 인터넷을 떠돌아 다닌다. 조류 독감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어린이들이 즐겨찾던 동물원이 접근 금지 지역이 되었다. 도대체 무얼 먹어야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까?

“먹는 것이 그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가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곧 삶과도 연결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삶도 편안하고 즐거운 법. 수천 년 수행의 방편이었던 사찰의 식문화는 건강한 육신만이 아닌 건강한 정신과 삶의 태도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최근 발간된 <밥맛이 극락이구나(함영著, 샨티刊)>에서는 밥벌이에 쫓기고 지쳐 정작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하고 사는 우리들, 덩달아 그 음식을 대하는 마음마저 소홀할 수밖에 없게 된 우리들에게 서른 명 스님들은 건강한 식생활이 무엇이며, 식문화의 참된 도리가 무엇인지 일러준다. 더불어 수많은 인연으로 차려진 밥상 위의 음식들을 대하는 마음가짐뿐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정성과 먹는 도리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단순하고 명쾌한 스님의 밥상을 책을 통해 들여다 본다.

어떤 음식이든 먹을 사람을 생각하는 세심한 배려와 정성이 깃들어지면 무엇이든 맛난 음식이 된다고 말하는 부석사 주지 주경스님 ⓒ 도서출판 샨티


서산 부석사의 주지인 주경 스님은 절집 최고의 음식으로 단연 국수를 꼽는다. 면을 삶는 요령에서부터 한 그릇 분량에 적합한 국수의 양과 양념장의 양, 심지어는 듣도 보도 못한 ‘양념장과 날씨의 상관관계’까지 척척 읊으니, 국수 전문가가 따로 없다.

“날씨가 맑을 땐 양념장에 식초를 많이 넣더라도 새콤한 맛이 더욱 살아 그런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하지만 흐린 날에는 식초의 양을 조금 적게 넣는 것이 좋아요. 날씨가 꿉꿉할 때 식초를 많이 넣으면 시큼하고 끈적끈적한 맛이 강해서 국수 맛을 버리거든요. 국수만이 아니라 여느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날씨나 대중의 분위기를 한번쯤 살펴보고 생각해본 후에 간을 하면 더욱 지혜롭게 음식을 만들고 살림을 꾸려갈 수 있어요.”

이러한 이론은 비단 국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음식이든 먹을 사람을 생각하는 세심한 배려와 정성이 깃들어지면 그 무엇이든 맛난 음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단출한 국수 한 그릇도 절에서는 최고의 음식이 되고도 남는다.

라디오 DJ로 인기가 높은 성전스님은 '적게 먹으면 속도 가볍고 정신도 맑아진다'며 스님만의 레시피로 누룽지 치즈죽을 꼽았다. ⓒ 도서출판 샨티


죽이라 하면 일명 ‘누룽지 치즈죽’ 또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성전 스님이 해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해인》의 편집장을 맡고 있을 무렵, 송광사의 한 스님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었단다.

“그곳에서 하룻밤 머물렀는데, 아침에 스님께서 손수 별식이라며 끓여주신 죽이 있어요. 누룽지죽에 치즈를 넣고 끓여, 이름 하여 ‘누룽지 치즈죽’이라고 하셨죠. 그 죽이 어찌나 특별하고 맛있던지, 그 후로 편집실에서 종종 끓여 먹곤 했어요. 지금도 누룽지와 치즈만 있으면 자주 끓여 먹곤 해요.”

누룽지의 구수함과 치즈의 고소함이 어우러진 누룽지 치즈죽은 이름만큼의 값을 하고도 남는 별미다.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이다가 치즈 두어 장을 넣고 저어주기만 하면 되니, 일 바쁘고 뱃속 출출할 때는 가볍고도 든든한 참으로 딱이다.

“불가의 음식이란 육신을 유지하여 성불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에요. 은사 스님은 늘 ‘소식’을 강조하셨는데, 공부하는 자는 포만으로 정신을 침해받지 않고, 늘 청정하게 깨어 있을 정도의 음식만 먹으면 된다고 하셨어요. 비단 수행자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죠. 적게 먹으면 속도 가볍고 정신도 맑아져요. 병은 과하게 먹어서 생기는 것이지, 적게 먹어서 생기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동자승그림으로 알려진 원성스님은 오이 한 개를 먹더라도 그곳에 담긴 수많은 인연과 정성에 감사하면서 먹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식생활의 기본 마음가짐 이라고 말한다. ⓒ 도서출판 샨티


음식을 먹기 전에는 해야 할 일이 있다. 가령, 시금치를 먹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마음으로 “고맙다, 시금치야”라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그것이 좀 겸연쩍다면 절집 사람들처럼 잠깐이나마 두 손 모아 합장을 해도 좋다. 방법이야 어떻든 음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음식은 단순히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맛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맛이나 영양소보다 몇 갑절은 중요한 것이 담겨 있다. 바로 ‘정성’이다. 그것은 오감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기에 자칫 놓치기 쉽다. 그래서 마음 없이 음식을 대한다면 여러모로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제한적인 오감의 테두리 안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마음의 맛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오이 한 개를 먹더라도 싱그럽고 아삭한 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한 감각을 느껴보세요. 오이 입자에서부터 그 기운을 느끼면서 오이에 담긴 수많은 인연과 정성에 감사하면서 아삭아삭 먹는 거죠. 오이 한 개로도 참으로 기쁜 마음이 일어날 거예요.”

최소의 조리로 재료의 맛을 살린 음식이야말로 가장 '좋은 음식'이라고 말하는 성남 봉국사의 효림스님 ⓒ 도서출판 샨티


성남 봉국사의 효림 스님은 대부분의 스님들이 그렇듯 담백한 음식을 좋아한단다. 출가 전에는 ‘가난한 덕분’에, 출가 후에는 ‘절에 사는 덕분’에 가벼운 음식으로 몸과 정신을 맑게 할 수 있었으니. 그 또한 ‘복’이라면 복이다.

“그래서 저는 가급적 조리하지 않거나 조리를 하더라도 간략하게 조리한 음식들을 좋아해요. 흔히 프랑스나 중국이 요리를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에는 그렇지 않아요. 복잡한 양념으로 지지고 볶은 음식들은 맛도 그렇거니와 건강을 위해서도 그다지 좋은 음식들이 아니죠.”

일례로, 일본의 생선회를 보자. 거기에 별 다른 조리가 따로 필요하겠는가. 단지 생선에 칼질을 해서 내놓았을 뿐인데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고급 요리로 대접받지 않는가. 굳이 일본의 요리를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우리네 부엌 한 귀퉁이에서 익어가는 동치미만 봐도 알 수 있다. 무를 통째로 소금물에 담가 놓았을 뿐인데도 소금의 짠 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진 시원 달큼한 그 맛은 표현할 길이 만무하다. 최소의 조리로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린 음식이야말로 스님이 추천하는 ‘좋은 음식’이란다.

두툼한 감자전을 받침삼아 김치와 온갖 야채를 버무려 얹고, 마지막에 피자치즈를 뿌려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완성되는 초간단 '사찰피자'를 소개하는 홍승스님 ⓒ 도서출판 샨티


사찰음식 연구가로 활동하는 홍승 스님은 사찰요리 책자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새로운 절 음식을 꾸준히 개발하고 보급하고 있다. 스님은 일반인들의 입맛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퓨전 사찰음식 개발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요즘은 스님들도 신세대 출신들이 늘어나 식성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아이스크림이나 원두커피, 피자 같은 음식들을 좋아하는 세대들이다 보니, 새로운 사찰음식이 하나 둘 개발되기도 하죠. ‘사찰 피자’가 대표적이에요. 어느 절에서 피자공양을 받게 되어 알게 됐는데, 원조가 누구인진 몰라도 피자를 무척 좋아하는 어떤 스님이 절집 식으로 개발하셨을 테죠. 그러한 음식들이 각 절 스님들에게 구전되고 알려지면서 새로운 사찰음식으로 정착되기도 하죠.”

두툼한 감자전을 받침삼아 김치와 온갖 야채를 케첩에 버무려 얹고, 마지막에 피자치즈를 뿌려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완성된다는 ‘사찰 피자’. 이 피자는 ‘먹는 법도’ 또한 남다르니, 반죽이 질어 손으로 들고 먹을 수 없기에 젓가락 사용이 필수다.

음식의 맛을 '정성'으로 표현하는 금강스님. 그는 욕심없이 먹는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 도서출판 샨티


‘절’이란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에 정성스러움을 배게 하는 것. 이마와 두 무릎, 두 팔을 땅에 대어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세상을 받들어 올리는 ‘오체투지’는 다름 아닌 자신에게 정성을 들이는 행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절을 많이 하면 말이나 행동, 마음씀씀이까지 정성스럽게 나오게 된다. 그렇게 만든 음식은 당연히 맛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음식은 ‘정성’이 곧 맛인 법이다.

“우리의 오감은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죠. 몸 전체가 사실 욕심 덩어리니까요. 그러나 그것들 하나하나의 욕망들을 다 채울 수는 없어요. 음식을 대할 때도 맛을 탐닉하고자 하는 욕망보단 그 음식에 담긴 수많은 정성들을 생각하며 먹는 것이 중요해요. 몸은 삶을 살아가는 도구로써 잘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그것이 불가에서 몸과 음식을 대하는 기본자세예요.”

<밥맛이 극락이구나>에는 이밖에도 다양한 사찰음식의 조리법과 스님들의 추억담이 담겨있다. 책 마지막에는 부록 형태로 스님의 레시피가 정리되어 있다. 다가오는 주말, 책에 나온 단순한 레시피로 푸짐한 밥상을 차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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