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쇼스키 형제는 언제나 같았다

<스피드 레이서>, '올바른 기대'를 가져야 즐길 수 있는 영화

검토 완료

정동원(jungs21)등록 2008.05.22 16:12

 <스피드 레이서>가 극장에 걸린 뒤, '기대보다 별로다', '실망이다'라는 반응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문제는 기대의 '양'이 아니라 기대의 '질'에 있다. <블레어윗치>, <헤어스프레이>, <클로버필드>가 한국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을 때와 같은 이유로, 한국 관객들은 <스피드 레이서>를 외면하고 있다(들인 돈과 기술로 본다면 '흥행 성공'이라고 하기 어렵다).

 

 <아이언맨>이나 <나니아 연대기>를 볼 때 같은 마음가짐으로 본다면 <스피드 레이서>는 유치하고 괴상망측한 영화가 되어 버린다. 먼저 우리가 '워쇼스키 표 영화'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 뒤에는 '재미있다', '재미없다' 어느 쪽으로 느끼든 본 사람 자유다.

 

 <블레어윗치> 때와 마찬가지로, 영화사의 잘못된 홍보 전략이 가장 중요한 패착이다.영화 평론가와 영화 '매니아'들의 '방향'을 잘못 잡은 공허한 미사 여구도 관객의 '실망'을 부채질했다. 그들은 이 영화가 '혁명'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과연 이 영화는 21세기 영상 시대 '혁명아'가 되었는가? 그것보다도 , 워쇼스키 형제는 과연 '혁명아'인가?

 

 '혁명'의 본래 뜻에 충실하자면, 그들의 영화는 '기존 영화 미학을 뒤집고, 새로운 미학을 세우는' 영화여야 한다. <스피드 레이서>는 '혁명'인가? 이 영화의 화면과 연출 기법은 신선하다. 그러나 '새로운 미학'이란 거창한 명분은 이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 스누피에게 합스부르크 황제의 코트를 입힌 거나 마찬가지다. 이 재능있는 형제는 애초부터 엄청난 걸 '창조'할 생각도 없고, '옛 미학'을 부술 생각도 없다(그들은 에이젠슈타인도, 앙드레 바쟁도 아니다!). <스피드 레이서>는 만화와 무술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인들이 함께 연출한, 흥겨운 놀이 마당일 뿐이다. <매트릭스>역시 마찬가지다. 보드리야르 책 표지가 잠깐 나오고 뭔가 있어 보이는 설교를 길게 늘어놓는다고 해서, <매트릭스>가 로베르 브레송이나 잉마르 베르히만의 영화가 되는 건 아니다.

 

 슬라보예 지젝 같은 '석학'도 <매트릭스>를 진지하게 논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젝에게 <매트릭스>는 자신의 '철학 놀이'를 위한 '재료'또는 '양념'일 뿐이다. <매트릭스>의 모든 '지적 요소'는 오로지 '후까시'를 잡기 위한 것 뿐이다(일본 상업 애니메이션이 이런 기술에 뛰어나다). 한 영화의 '지적 요소'가 그저 '후까시'인지 진심인지를 알려면, 줄거리보다 '부수 요소'를 주목해야 한다. <매트릭스>는 진지한 주제의 영화라기엔 이 '부수 요소'가 쓸데없을 정도로 많다. 주인공의 지나친 '후까시' 잡기, 다른 매체에서 잔뜩 나온 요소를 짜깁기한 숨은 그림 찾기같은 구성은 무엇을 말하는가?  겉에 내건 '주제'는 그저 보기 좋은 장식일 뿐이며, 감독이 원한 것은 흥겨운 한 판 놀이 뿐이라는 뜻이다. 

 

 <매트릭스>가 대성공을 거두고 나니 워쇼스키 형제는 더 이상 '후까시'라는 안전 장치를 의식할 필요가 없어졌다. <스피드 레이서>는 대놓고 감독의 취향을 드러낸다(<JSA>가 성공한 후 '막나가는'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든 박찬욱과 같은 과정이다). 무술과 닌자, 동물과 꼬마의 ('주접스런') 모험, 온갖 폼을 잡지만 우스운 데다 귀엽기까지 한 적 레이서와 악당들, 이것이야말로 워쇼스키 형제가 처음부터 만들고 싶은 영화였다.

 

 <스피드 레이서>를 즐겁게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우선 워쇼스키 형제는 대단한 '예술가'도 '사상가'도 아니요, 재치있는 오락 영화 감독이라는 것부터 받아들이자. 그들은 오우삼, <300>의 원작자 프랭크 밀러와 같은 부류다. (요즘 '쿨'해 보이려고 애쓰는) 평론가들이 씌워준 부담스러운 금관을 벗겨 놓고 보면 모두 '후까시' 도사다. 단지 오우삼은 '비장한(또는 비장한 척 하는) 후까시', 프랭크 밀러는 '마초 100% 후까시', 워쇼스키 형제는 '발랄한 개구쟁이 후까시' 도사라는 게 다를 뿐이다.  

2008.05.22 16:17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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