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her's War, 엄마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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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yipd)등록 2008.04.27 11:58

무려 18년만의 귀향이었다.

물론 그동안 고향을 아주 등지고 살았던 것이 아니고, 몸이 아프거나 해서 2~3주간 머물렀던 적도 있었으며 교생실습 기간에는 한달이 넘게 머무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잠시 머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쭉 살기 위해 고향 떠난지 햇수로 18년만에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대학입학을 위해 서울에 입성한 이래, 학교생활, 백수생활, 직장생활, 결혼생활 등 더 자세히 말하자면 한도끝도 없이 늘어지겠지만 하여간 성인이 된 이후 18년을 서울에서 살았고,

순천에서 태어났지만 유아기, 청소년기 등을 포함하여 19년을 순천에서 살았으니 서울은 흔히 말하는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라 하여도 좋겠다.

학교생활도 워낙 유별났던데다 남들이 보편적으로 하지 않는 직업선택을 하였던 관계로

서울 살이의 잇점, 꼭 잇점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음...

사람많고 사고도 많고 일도 무지무지 많은 서울에서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을 해왔으니

어찌 보면 작고 조그만 도시 순천이 나에게는 따분하고 재미없게 여겨질 수도 있다. 

 

실제로 순천을 다소 불편하게 느꼈던 시절도 있었다.

나의 대학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과 불필요한 마찰을 만들지 않으려는 의도로

방학이 되어도 잠깐, 명절때도 잠깐 얼굴만 비치고 서울로 돌아가기도 했고,

며칠동안 머물더라도 만날 친구도 없고 특별한 일도 없는 순천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서울애들의 표현을 빌어 '시골' 출신인 나는 서울 출신인 친구들보다 서울 지리에도 훨씬 훤했고(오랜 시절 과외로 연마된 솜씨랄까), 자가운전을 시작한 후에도 간선도로 나들목이나 시내도로 사잇길 등도 내비게이션 없이 척척 찾아다닐 정도로 이른바 서울체질이었다.

 

성치않은 몸을 이끌고 호호할머니의 모습으로 자연을 벗삼고 싶어진다거나 영면을 앞두고 고향산천에 뼈를 묻어다오 하는 유언이라도 남기기 전에는 고향에서 절대 살것 같지 않던 내가,

서른이 넘고 서른다섯도 넘어가면서 조금씩 고향을 그리워하기 시작하였다.

동향인 남편을 만난 탓도 있겠지만 사람에게도 회귀본능이란 게 있다면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향을 찾고싶어졌다. 쉽게 말하면 고향땅이 땡겼다.

그러나 이미 생활터전을 잡고 있던 마당에 고향이 땡겨도 서울살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던 나를 고향으로 귀환하게 한 놀라운 힘은 남편도 부모도 아닌 콧구멍만한 내 아이다.

아이를 출산하고 1년이 넘도록 온통 병원에 쫓아다닌 기억, 아픈 아이에게 약먹인 기억, 의사로부터 치명적인 얘기를 전해듣고 남몰래 눈물흘린 기억, 물리치료를 위하여 서울과 수원을 오가며 막히는 도로에 머물렀던 기억, 잠못자는 아이에게 짜증부린 기억으로 내 머릿속은 꽉 차있었다.

물론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이, 남편과 더불어 즐거운 시간도 매우 많았다.

하지만 아이의 잠버릇이 심각해진지 두달 남짓, 나 또한 수면장애에 시달린지 반년 정도가 되었을 때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두려움이 선뜻 스쳤다.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또 아이아빠에게도 이대로는 안되겠다.

해서 내린 결정이 순천행이었다.

이른바 마더스워, 즉 아픈아이 육아와의 전쟁-엄마의 사투 끝에 고향으로의 귀환. 

 

남편과 나는 중요한 결정을 상당히 쉽게 내리는 경향이 있다.

순천행을 결정하는 데는 단 5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순천에서 아이의 치료 문제가 예상대로 장벽에 부딪혔을 때 너무 성급한 결정이었나 잠시잠깐 후회하기도 하였지만,

순천에 자리잡은지 이제 한달.

내 마음은 언제 전쟁중이었나 싶게 모든 것이 편안하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 일주일에 한번 서울에 다녀와야 하는 일이 여전히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버거운 일이지만 그것마저도 순천에 오기 전 감당해야했던 것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셈이다.

 

무엇이 우리 가족을 이렇게 편안하게 했을까 불현듯 의아해진다.

서울과 수원을 일주일에 서너번씩 오갔던 무리한 치료일정에서 자유로와진 것이 우선일테고,

격무에 시달리느라 10시가 다되어야 녹초가 되어 퇴근하곤 했던 남편이 '아침 8시반 출근, 6시 반 퇴근'이라는 경이로운 출퇴근시간을 기록하며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것도 이유 중 하나일테고,

가족들이 가까이 있다는 심적인 편안함도 상당히 컸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일등공신은 우리가 정착한 바로 이 곳이 고향이기 때문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 있어요...

2008.04.27 12:01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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