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탄 세 발이면 남북통일 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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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순(quaynews)등록 2008.04.17 14:16

                     훈련탄 세 발이면 남북통일 하고도 남는다

 

                                                           김  상  수

 

 

 나는 “무찌르자 오랑캐”를 부르며 두손을 힘차게 내젖고 행진했던 세대에 속한다. 가슴엔 빨간 리본을 달았던 그 시절 자수기간과 간첩 잡아 상금 타자라는 포스터와 현수막을  전국 방방곡곡 어디서나 구경할 수 있었다.

 

그 포스터가 언제부턴가 금강산과 평양  관광 선전으로 바뀐 걸 보고 세상이 몰라보게 변했다는 충격을 받았다. 멸공통일 리본을 달았을 때 우리는 북진통일은 가능해도 이처럼 휴전선을 사이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직항편으로 평양을 다녀오고 금강산이나 개성 관광은 얘깃거리도 되지 못하는 세상으로 뒤바뀔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과연 통일은 가까이 다가왔는가.  역사적으로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베트남의 남북 통일, 동서독 평화통일 중 우리는 어느 것과 유사하게 전개되는 것일까.

 

통일은 두 개 이상을 하나로 단일화 하는 논리다. 규격과 단위가 그렇고 국경을 둘러친 국가가 그렇다. 그런데 남북한은 통일한다며 한반도라는 가상 국가를 또 하나 만들어 놓고 동상이몽 속에 상대의 항복을 접수하겠다는 형국이다.

 

통일은 국력이 상대국을 압도할 때만 가능하다. 결코 한 두 사람의 목 멘 울부짖음이나 피동적인 햇볕 정책이나 무한정 퍼주기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강한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세계인 것이다.

 

남한은 퍼주기와 자유사상으로 북한 경제도 살리고 공산주의 이념을 탈피시켜 어느날 스스로 무너져내려 통일에 도달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북한은 미사일과 핵무장으로 겁주고 우리의 소원에 목을 메다는 우군을 확보해 남조선에서 어느날 혁명이 일어나 한반도를 사회주의로 통일하겠다는 전략이다.

 

과연 어느쪽이 이길까. 아니면 비기고 말까.  꿈은 미래를 개척해 현실로 만든다지만 이토록 극과 극의 동상이몽이 언제 달성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런 엇박자 통일은 몇 세기가 걸려도 무지개 꿈으로 끝날지 모른다. 겨우 한 세기도 살지 못하는 우리는그 멀고 먼 미래의 꿈만 바라볼 게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미리 한번 가보는 것도 과연 목메달만한 가치가 있는지 가늠하는 한 방법이다.

 

어느날 지하의 단군께서 자손의 통일 노력을 기특히 여겨  오천년 전 한반도에 나라를 세우실 때 옥황상제로부터 받았던 여의주를  물려줄 때가 되었다고 결심하신다. 남북한 고루 한개씩 주었으면 좋겠지만 여의주는 우주 만물에 하나 존재할 때만 여의주다.

 자손의 분쟁 위험을  염려하신 단군은 남한에 먼저 여의주를 주시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주문을 외우자 신통하게도 장군의 돌연 사망이나 유고 같은 급변  사태가 아닌데도 권력층들이 자진해서 기득권을 포기하고 권좌에서 내려왔다. 인민에 사과 후 남한과 동일한  민주 자본주의 체제로 바꾸고 자진해서 남한의 지방자치 단체로 편입했다.

 그토록 눈빛 살벌하던 인민군은 무기를 제철소에 반납하고 방아쇠를 당기던 손은 증권투자 온라인 자판기를 두드렸다. 장군님 사진이 비에 젖는다며 눈물 흘리던 소녀는 바래고 갈갈이 찢긴 포스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형 수술로 달라진 얼굴을 거울에 비추느라 여념이 없었다.

 무엇보다 뜻밖인 것은 적대적일 것이라던 중국 태도다. 한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존중하고 지지한다며 불개입을 선언하고 한반도에 한발짝도 들여놓지 않았다. 다만 압록 두만강 봉쇄에 백만 대군을 동원해 한명의 난민 유입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 자유다. 거주도 여행도 자유다. 말릴 사람도 잃을 것도 없다. 자, 가자. 풍요롭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우리의 소원을 목메어 부르는 동포 품으로. 북한 동포들은 미련없이 짐을 꾸려   남쪽으로 향했다.

  통일의 기쁨은 잠시 후유증은 남북인 모두 감내하기 어려운 현실로 전개되었다. 넘치고 넘치는 난민 유입. 생사를 걸고 한줌 식량을 얻기 위해 혹독한 추위 속의 살벌한 중국 국경을 넘나들던 고난에 단련된 정신과 육체.  

 시위대 물결을 이룬  북한동포의 끊임없는 유입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대도시 풍경을 삽시간에 바꿔놓았다. 어디가나 넘치는 난민으로 도시의 정상기능은  마비되고 법과 질서는 멀기만 했다.

 사찰과 교회는 물론 공공 건물 어디나 난민이 자리잡아 밤이슬을 피했다. 새로 복원된 숭례문 2층마저 영아를 둔 여러 가족이 도우미 안내로 취사를 해결하고 칼잠을 잤다.

 남한정부는 북한동포 우대 정책으로 5분의 1에 불과한 북한 원화를 1 : 1로 통용시켰다. 이런 과대 평가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부동산은 걷잡을 수 없이 남한인 소유로 넘어갔다. 어떤 가치나 이익을 기대한 투자가 아니라 땅을 사랑하고 건물을 선물하는 습성 때문에 묻지마 가격으로  팔렸다.

 북한 난민의 2차 유입이 시작된 것은 부동산이 남한인 손으로 떨어지고  부터다. 시세보다 수십 배 비싼 가격이라  팔고 나니 송곳 하나 꽂을 자기 땅이 없었다. 상실감에 남한으로 발길을 돌렸고 평생 모은 돈이옥탑방 하나 사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허망함에 땅을 치고 후회했다.

 질서와 자유가 서로 모순되는 현실이 남한 일대를 뒤덮었다. 2차 난민 유입으로 도시 농촌 가릴 것 없이 전국이 무질서와 혼란으로 극심한 몸살을 앓았다.  대도시 혼잡은 숨막힐 지경이 아니라 질식사 직전이었다.           

 견디다 못해 남북한이 한마음 되어 통일 이전으로 돌려 놓으라고 시위를 시작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북한에 살 때는 헐 벗고 굶주려도 때가 되면 모자라나마 배급이 있었다. 같이 배 고프고 같이 헐벗었다. 그러나 뭔가. 저 호텔, 저 큰 아파트엔 어느 팔자 좋은 사람이 살까. 이 상실감 이 왜소함 차라리 헐 벗고 굶주려도 다른 생각 못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

 만약 여의주가 배달사고로 북한에 전달되면 어떨까.

장군이 여의주를 받기 몇 해 전, 남한은 징집제가 징병제에서 지원제로 바뀌었다. 경선과 대선 때 내걸었던 김제 공항 배추밭, 천도론, 운하론, 747 구호가  표를 얻어 당선되기 위한 뻔한 속임수라는 걸 경험으로 알아차린 유권자가 그런 헛구호로는 더 이상 속지 않았다. 이때 약삭바른 후보가 마지막 카드인 징집제를 의무에서 지원제로 내걸었다.

 저출산으로 외아들이 대부분인 부모들은 내 자식은 빼고 남의 자식들이 조국을 지킬 것이라며 표를 몰아 당선시켰다. 그러나 지원자가  턱없이 부족해  프랑스 모델의 용병제를 실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휴전선은 네팔 필리핀 인도 인도네시아 용병에게 국제 용역  준 꼴이었다.

 여의주를 받은 장군은 통일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단군자손의 한 핏줄이라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봐라. 국토나 올림픽 메달 세계 순위를 몇개 올리기위해서? 세습왕조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를 도박을 왜 하나. 인민이란 그저 외국과 교류는 철통같이 걸어 잠그고 빈곤 속에 자력으로 살도록 통치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의 본능인 의식주 해결하느라 감히 불평할 겨를이 없어야 한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더 많은 요구를 하며 넘보다가 언젠가 체제 유지의 위험으로 맟선다.

 이런 단순하고 초보적인 통치술을 몰라 잘살아보자고 밤잠 설쳐가며 머리 싸메던 남조선 통치자의  비명횡사를 떠올리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남조선은 장군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남조선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협상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퍼주겠다는 일방적인 조건들을 다 내보였다.  한번 껴안는데 5억달러, 몇 걸음 같이 걸어주는데 천만달러를 결식 아동 제쳐두고 자진해서 내겠단다. 경협이란 이름의 쌀과 비료는 받지 않으면 성화에 못견딜 지경이다. 대인은 자기만을  위함에 충분한 존재 의미가 있고 소인은 남을 위하는데 보람을 느낀다는데 장군이 하는 수 없이 받는 것은 주겠다는 자의 보람을 위해서지  인민을 위해서가 아니다.

장군은 이런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욕심내 통일이란 칼로 배를 갈라 죽일 바보가 아니다. 여의주를 확실하게 없에기 위해 원자로에 넣어 녹였다. 그러나 여의주의 신통력을 잘 모른 실수일 뿐 통일은 숨가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휴전선 이북의 어느 미사일기지에서 신병 하나가 졸음에 못이겨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고참들은 모두 휴가가고 혼자 밤새워 발사대를 지키자니 피곤과 졸음이 무겁게 짓눌렀다. 동 틀 무렵 꾸벅이던 머리가 실수로 발사대 버튼을 찧었고 이어 미사일 세 발이 발사 되어 남쪽으로 날랐다.  순간적인 사고였다.

수 분후, 세 발의 미사일은 서울 통의동 안가 마당에 목포의 유달산 정상에  김해의 봉하마을 화단에 한 발씩 떨어졌다. 다행히 훈련탄이라서 폭약이 장치되지 않아 폭발은 없었고 낙하 관성으로 탄두가 땅에 박혔을 뿐 인명이나 재물 피해는 전혀 없었다.

발사 5 분후 NHK 방송으로 발사된 사실을 알아차린 당국은 연속극 중간이라 자막으로 사실을 내보냈다. 30분 후 AFKN은 탄착 지점을 정확히 방송했고 연속극이 끝나고나서야 세 개의 탄착 지점을 카메라가  현장 보도하기 시작했다.

실수로 발사된 훈련탄이 분명하다는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북한에서 발사된 미사일이라는 사실만으로  남한 일대는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 CNN 까지 동원해 피해 전무와 원상복귀 현장을 중점 보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혼란의 도가니는 비등점을 넘어섰다.

수 시간 후, 정부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도로는 아스팔트가 보이지 않게 차로 뒤덮혔다. 바퀴 달린 탈 것은 모두 짐을 가득 싣고 밖으로 나와 피난 행렬에 나섰다.  대도시에 머문다는 것은 곧바로 미사일 표적이다.

사용자 폭주로 통신마저 두절되어 불안감은 더했다.

이건 귀성 전쟁이 아니다. 미사일이 떨어진 실전이다. 모든 도로는 상행 하행 구별 없이 남쪽 한 방향으로 향했지만 고속도 국도 지방도 할 것 없이 주차장으로 변해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차를 버리고 걷기 전엔 불가능이다. 한강 다리가 폭파되었다는 유언비어가 나돈 것은 그 무렵이다.

 야행성인 장군의 잠을 깨운 것은 수령님 사망 후 이날이 처음이다. 사태를 보고 받은 장군은 지금 도로에 묶여 오도가도 못하는 남조선 인민을 해방시키기로 결심했다. 남조선 소인들이 상납했던 달러와 황금열쇠를 트럭에 싣고 판문점에서 용병 사령관과 마주 앉았다.

“여기 달러와 황금이 있다. 이걸 부하들과 나눠 가지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무기를 휴대하고 선박과 항공기를 마음대로 징발해  귀국한 후 돌려주지 않아도 좋다.”

돈이 목적인 용병들이 거절하거나 망설일 하등 이유가 없었다. 장군의 사나이다움에 경의를 표하고 즉각 부하들과 귀국을 서둘렀다. 살상 무기가  용병 손에 있어 어느 누구도 감히 방해 할 엄두를 못냈다.           

 통일 3일 후 봉하마을 꽃동산에서 통일에 이바지한 두 사람에게 상훈 수여식이 장군을 대신한  통일전선부장으로부터 있었다. 수상 소감을 보면,

 수상자 1 :

 5억달러를 주고산 상보다 더 보배로운 공화국 영웅칭호를 내려주신 장군님께 감사드린다.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지만  그때마다 살아난  것은 오늘의 조국 통일을 보라고 살려주신 것 같다.  이제 안심하고 눈감게 해주신 장군님 은혜에 감사드린다.

수상자 2 :

 국민의 혈세를 경협이란 이름으로 마구 퍼주면서도 항상 부족하다는 죄책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서해 5도를 떼주지 못해 천추의 한으로 남는다. 이런 과오에도 불구하고 과분한 영웅 칭호를 내려주신 장군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가슴이 뛴다. 빨리 지하의 장인을 만나 칭찬 받고 싶다.

 수상자 2는 감격과 감사의 눈물이 뒤엉킨 긴긴 울음으로 눈꺼풀이 눈동자를 덮어 처진 상안검이완으로 성형수술을 받아야 했다.

 무혈로 남한을 점령 후 장군은 고루 잘 사는 이상향을 선포하고 남한의 원화 무효화에 이어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실시했다.

 공산주의만 되면 비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찬양한 공으로  타워 펠리스나 저 많은 아파트 중 하나는 돌아올 것이라는 설레임은 물거품이 되었다. 당원과 간부 우대 정책으로 우선적으로 그들에게 배분되었다. 고루 잘 살아야 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남한인들이 북한 구석구석 탄광으로 강제 이주가 시작된 것은 불과 통일 한달 후의 일이다.

  장군의 위대한 지도력은 무상몰수 무상분배 강제이주 과정에서 한사람의 불평분자도 없었다는 것이다. 공권력 앞에 그토록 죽기살기로 투쟁하던 대학생 종교지도자 선생 노동자도 갓 허물 벗은 물렁게마냥 온순하게 순종했다. 죽음이 전제되지 않았을 때만 극한 투쟁의 미학이 있는 것이지 죽음의 확실성 앞에선 비겁은 얼마던지 용서되는 것이 인간생명의 존엄이었다. 

 통일은 의외의 선물도 안겼다.  잔업까지 챙겨야 겨우 살아가던 나와 비서 두고 결제 몇 번하고 수백억씩 배당받던 사장과 동일한 수입이라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음료수 한모금 커피 한잔 옷 한번 입어주면 거액이 저절로 굴러드는 그 잘난 사람들과 동일하다니 얼마나 기막힌 사회주의 제도인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메도록 부르려면 넘치고 넘치는 난민 홍수에 익사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한다. 수령 우상화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한마디 불평 없이 받아들일 각오가  서야 한다.

남북한은 유엔에 동시 가입하여 헌장을 준수하겠다는 엄연한 독립국가다.

 돈을 주면 통일을 사고 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무심코 부르는 통일 노래에 살벌한 음모의 발톱은 없는가?    

천칭의 한쪽엔 쇠를 다른 쪽엔 솜을 달아도 솜이 무거우면 그쪽으로 기우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상대가 쇠를 놓으면나도 쇳덩이를 놓아야지 햇볏 정책이나 퍼주기가 뭔가. 핵실험을 했으면 더 강한 중성자탄 개발을 서둘러야지 비빔탄이라 왜 애써 변명하는가.

 진정 통일다운 통일의 의지가 있다면 나라 망할 경협이란 허울로 마냥 퍼주는 무상원조나  턱없이 비싼 입산료 관광을 일체 중지하라. 그래서 금단의 고통에 시달리게 하라. 막바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걸 겁내지 마라. 쥐에 물린 고양이 보았는가. 그것이 쥐의 최후다. 

  

 

 

2008.04.17 13:58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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