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국민은 속았습니다

정책은 간데없고 정략만 나부껴

검토 완료

김용훈(yonghun21c)등록 2008.04.13 11:27
 “저는 속았습니다. 그리고 국민도 속았습니다.” 이번 총선과정에서 수많은 말들이 오갔지만 위 말보다 민심을 흔든 말은 없었다. 한나라당 공천과정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前) 대표가 내뱉은 위 말이 이번 총선결과를 바꿔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저 한 마디 말 덕분에 ‘총기 난사 공천’으로 낙천했던 친박(親朴)인사들이 “살아서 돌아오라”는 박 전 대표의 명령에 부응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공천과정에서 주춤했던 친박(親朴)세력을 부활시켜 다시 친이(親李)들과 대결할 구도를 마련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하지만 국민들에겐 그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 문제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정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친이(親李)니 친박(親朴)이니 세력다툼에 모자라 ‘친박연대’라는 정치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정당을 만들어내는 코미디까지 연출했다. 야권도 마찬가지였다. “여권을 견제할 힘을 달라”는 것은 정책이 될 수 없다. 특히, 통합민주당은 국민들에게 ‘읍소’만 했다. 지난 정권의 실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이 이를 받아줄 리 없다는 것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이런 정책 없는 선거의 결과는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로 이어졌다. 이번 선거 참여율은 46%로 투표율의 역사를 다시 썼다. 역사상 ‘최저 투표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따낸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정치권은 다시 지역주의로 회귀했다. 총선 결과, 영·호남 그리고 충청에 꽂힌 깃발의 색깔로 전국은 분열했다. 공천과정에서부터 각 당의 공천후보들은 정책보다는 자당(自黨)에 유리한 지역의 공천을 따내기 골몰했다. 유세기간에는 지역의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발언마저 심심치 않게 터져 나왔고, 또 충청권에 기반을 둔 자유선진당의 한 대변인은 공개 석상에서 “지역에 기반한 정당이 뭐가 문제냐”고 외려 반문하기도 했다. ‘정책’이 아닌 “우리가 남이가?”식의 정치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뿌리째 훼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모를 리 없는 소위 민주화 인사들마저 이번 총선에선 본인의 지역기반을 이용해 자기 사람 챙기기에 나섰다. 다시는 되풀이 돼선 안 될 일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눈여겨 볼 사례도 있다. 은평 을에서 당선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바로 그런 경우다. 통합 민주당이 “여권을 견제할 힘을 달라”며 링 밖에서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 것과는 상대적으로 문 후보는 선거 초반부터 여당의 ‘대운하 공약반대’라는 구체적인 정책을 걸고 그것을 이슈화시켰다. 유권자들은 정책을 보고 판단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여당의 ‘거물’ 이재오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 정책만한 선거 전략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다.       

이번 총선을 통해 정부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말 대로 “힘 있는 정부”로 거듭났다. 299석 가운데 153석을 한나라당의 이름으로 차지했다. ‘불안한 과반’이라고 하나 친박연대와 무소속 친박연대의 당선자들은 “조건없는 복당”을 밝혔으니, 그 이름대로 ‘한 나라’를 통째로 삼켰다는 표현도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반쪽자리였으며, 그 책임은 자신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국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지지를 받고 국회를 점령한 만큼 ‘국민의 뜻’ 운운하며 독단적인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통합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깊이 반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선에 이은 총선의 참패의 원인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원인도 대선 패배의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당을 견제할 세력”은 소위 한나라당 3중대라고 일컬어지는 자유선진당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민주당에 81석을 허락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내용’이다. 즉, ‘어떻게’ 여당을 견제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바래버린 민주당의 색을 다시 입히는 것이 우선이다.  

대의 민주주의의 정의는 다수의 국민이 소수의 대표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면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소수의 대표자가 국민에게 권리를 이양받기 위해선 ‘누구와 친한지’ 밝히는 것보다 자신이 앞으로 어떤 정치활동을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기본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선거에서 국민은 분명히 속았다. 그래서 앞으로 눈을 부릅떠야 한다. 그들이 명목상이나마 제출한 정책을 제대로 실천해나가는지 반드시 감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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