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버린 양심, 장애 있는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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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happy2know)등록 2008.04.11 19:54

붐비는 2호선을 타고 퇴근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는 것이 싫어서 노약자 및 장애인석 옆의 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잠시 후 한 여성이 지하철에 탑승했다. 155cm정도의 키에 약간 마른 체격으로 회색 점퍼에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안경 쓴 얼굴에는 다부지게 다문 입이 부정기적으로 실룩거리고, 지하철을 들어서는 발걸음은 한쪽 다리가 약간 불편한 듯 보였다.

 

그 여성이 지하철 타는 것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내 앞의 노약자 및 장애인석을 둘러보았다. 많지 않은 6개의 자리에는 이미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머리카락이 희끗하고 한눈에도 노쇠하여 힘들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 결혼식장을 다녀온 듯한 노부부 한 쌍, 챙 있는 모자를 눌러쓰고 천배낭을 늘어뜨린 채 앉아계신 지쳐 보이는 할머니 한 분, 술에 취해 이미 잠에 빠져버린 50대의 아저씨, 4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 등. 어느 누구도 지금 막 탑승한, 약간 불편해 보이는 그 여성을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괜시리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50대의 아저씨가 미워보였다. 4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는 더 얄미웠다.

 

노약자의 기준을 명확히 하여 자리를 이용할 사람마다 주민등록증을 확인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장애인이라고 복지카드를 보이며 자리를 양보하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노약자 및 장애인석은 양심이 늙어버린, 양심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2008.04.11 19:58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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