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연맹 옛동지가 보내는 심상정 후보의 단일화에 대한 공개서한

심상정 동지, 진보정치의 길에 계속 남아계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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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champjh)등록 2008.04.03 18:57
 고양시 덕양갑에서 출마한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와 민주당 한평석 후보 사이에 단일화가 합의되고, 최장집, 조희연, 조현연 교수, 최민희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등 시민사회 인사들의 반한나라당 후보 단일화 촉구 움직임이 일면서 진보진영 내부에서 논쟁이 일고 있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서울 동작을 지역구에 민주노동당으로 출마한 김지희 후보가 자신의 블로그,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이와 관련한 공개서한을 올려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지희 후보가 금속연맹 동부금속지역노조 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 심상정 후보는 금속연맹 사무차장으로 활동하였다. 노동운동의 오랜 동지이며, 민주노동당 동지였던 두 후보는 오늘 다른 당으로 출마하여 진보정당의 진로에 대하여 각기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동당 시절 심상정 후보가 취해왔던 입장과 다른 후보단일화에 대해 향후 진보진영이 어떻게 평가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지희 후보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심상정 동지, 진보정치의 길에 계속 남아 계시길 바랍니다.

-민주노동당 김지희 후보가 심상정 후보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먼저 아버님을 여의고 빈소를 지키고 계신 심상정 동지에게 위로의 말씀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슬픔에 젖어있을 심상정 동지에게 위로의 말씀이 아니라 고언을 하게 된 이 상황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내일까지 후보 단일화를 하겠다고 하니 오늘 밖에 시간이 없어 이렇게 글을 보냅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권력과 자본에 맞서 함께 투쟁했고, 민주노동당의 당원으로서 대선투쟁을 함께 치렀던 심상정 동지와 저는 지금 당을 달리하여 출마했습니다. 저는 한국 재벌의 상징 정몽준 후보에 맞서 노동자와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무척 힘에 붙이는 싸움입니다. 무명의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대선후보 정동영, 대표 재벌 정몽준의 싸움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비유하기에도 힘겹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우리에게 다가올 진보승리의 날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심상정 동지가 민주노동당을 떠났지만, 고양시 덕양갑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심상정 동지가 민주당 한평석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심상정 동지!
우리는 민주노동당에 함께 몸담고 있을 때, 대선 방침을 결정하면서 네 가지 원칙하에 민주노동당의 외연을 넓힐 진보대연합을 실현하자고 했습니다. 이 네 가지 원칙은 비정규직 철폐, 한미 FTA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입니다. 이 원칙에 심상정 동지도 찬성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제 심상정 동지는 ‘대운하 반대와 덕양지역 발전’을 염원하는 지역주민들과 시민사회진영의 촉구를 수용하여 후보단일화를 수용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저도 대운하를 반대합니다. 지역발전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심상정 동지가 단일화를 수용하는 이유가 민주당이 ‘비정규 악법 폐지’에 동의했다거나, ‘FTA 반대’에 합의했기 때문이 아니라니, ‘민생 정치’를 앞세우고 민주노동당을 떠난 심상정 후보의 결단이 맞는지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심상정 동지, 우리 사회의 진보정치운동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대운하 반대’ 하나에 국한되는 것입니까? 민주당은 한미 FTA를 추진한 세력이고, 손학규 대표도 FTA 통과에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지속하고 있고, 아마 총선이 끝나면 FTA를 통과시킬 것입니다. FTA가 가져올 재앙과 대운하가 가져올 재앙 중 어느 것이 더 클지는 모르겠지만, 작년 재작년 내내 우리는 FTA가 IMF보다 10배, 100배의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투쟁을 호소하지 않았습니까? 심상정 동지가 사무처장을 했었고, 심상정 동지를 국회의원으로 밀어준 금속노조는 작년 6월 ‘FTA 반대’를 내걸고 파업을 했다가 산하 지부장 30여명 전원이 수배되고,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모두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심상정 동지 스스로도 FTA에 맞서서 일주일간이나 길바닥에서 단식투쟁을 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모두 개봉을 앞둔 마이클무어 감독의 ‘식코(SICKO) 영화 보기 운동’을 펼치면서 총선 후 FTA 저지투쟁을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장 총선 끝나고 한나라당, 민주당, 양대 보수 정당에 맞서 FTA 투쟁을 해야 하는데, 지금 심상정 동지의 선택은 그 때 어떻게 평가될까요?
진보신당 비례대표 2번은 이랜드 노조의 이남신 동지입니다. 왜 이남신 동지가 감옥에 갔고 진보신당의 후보가 되었습니까? 민주당이 비정규악법을 통과시켰기 때문 아닙니까? 작년 여름 내내 우리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얼마나 그 비정규악법을 규탄했습니까? 심상정 동지도 이랜드 노조원들과 어깨를 걸고 눈물을 흘리며 싸우지 않았습니까?

대운하 문제도 그렇습니다. 민주당은 여의도에서는 대운하를 반대하고 있지만, 인천 계양구에 출마한 민주당 송영길 후보는 경인운하 조기 완공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경인운하 건설은 작년 7월 민주당이 당론으로 결정한 사항이기도 합니다.

심상정 동지,
동지의 후보단일화 결정을 보면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국공합작을 추진했던 모택동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정치는 생물”이라는 김대중 어록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한나라당에 맞서기 위하여 자민련과 후보단일화를 했던 김대중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자민련과 단일화로 정권은 바꿀 수 있었지만 금융시장 개방, 공기업 구조조정, 정리해고로 비정규직의 나라를 만든 김대중 대통령에게 긍정적 평가를 해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2000년 김대중 정부에 맞서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을 건설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민주노동당 103명, 진보신당 34명의 후보가 지역에서 보수정치에 맞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심상정 후보도 아시겠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오차 범위 내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지역이 많습니다. 이런 지역에서 민주당 측이 ‘대운하 반대’와 ‘지역민의 절실한 요구’를 반영하여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에 후보 단일화를 요구해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보정당이 우위에 있다고 판단되면 후보단일화를 해도 좋고, 아니면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만약 민주당 측에서 ‘심상정 후보와 같은’ 통 큰 결단을 요구해온다면? 그것이 바로 지난날 심상정 동지가 그렇게 비판해마지 않던 ‘비판적 지지 망령’ 아닌가요?

심상정 동지,
동지는 민주노동당을 대표한 국회의원이었고, 국민들에게 진보정치에 대한 인상을 긍정적으로 심어준 훌륭한 의정활동을 했습니다. 비록 지금 서로 당을 달리하지만 동지는 진보정치의 중요한 자산입니다. 저는 동지가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새로운 진보정치의 길에서 성공하길 바랍니다. 이번 총선 끝나고 당락에 상관없이 서로 고생했노라고 어깨 두드려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진보신당에도 당원들의 뜻을 묻는 절차가 있을 것입니다. 당장 총선에서 의석수 하나가 아니라 진보정치가 걸어가야 할 먼 길을 생각하시고 진보신당 당원들의 현명한 지혜에 귀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무릇 정치인은 표를 생각하지만, 정치가는 후대를 생각한다 했습니다. 부디 신중히 생각하시고, 진보정치의 길에 남아주시기 바랍니다. 심상정 ‘동지’라는 호칭이 더욱 길게 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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