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포티' 를 꿈꾸며

공간에 대한 고찰 (영화 Jumper 를 보고 )

검토 완료

오윤주(100miso)등록 2008.04.02 14:44

영화 jumper 포스터. 주인공은 텔레포티 능력으로 어느 곳이든지 갈 수 있다. ⓒ 오윤주

세상에 가상으로 등장한 초능력들이 무수하다. 그들 중 내가 가장 탐내던 능력은 '텔레포티' 능력이다. 어릴 적부터 '황미나'의 만화를 즐겨봤던 나는 그녀의 sf 만화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 능력에 열광하곤 했다.

 

얼마 전 봤던 심리 테스트 결과가 기억난다. '많은 초능력 중 갖고 싶은 능력이 무엇이냐?' 는 질문이었다. 내가 고른 답만 기억이 나는데 '텔레포티' 능력을 고른 사람은 시간에 많이 쫓기는 사람이며 늘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사실 난 별로 바쁘지는 않다. 아마도 너무 게을러서 그런 것 같다. 게다가 늘 많은 공상에 빠져 사니 깨어나 보면 몇 시간씩 지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나에게 영화 '점퍼'는 별로 좋지 못한 평점에도 불구하고 꽤나 흥미롭고 진지하게 다가온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텔레포티가 가능한 '통로' ⓒ 오윤주

이 '텔레포티 통로'를 통해 jump (텔레포티) 할 수 있다. ⓒ 오윤주

 

이 영화에서는 텔레포티 능력이 본인에게만 제한되지 않는다. 은행 금고의 수많은 돈들과 함께 이동할 수도 있고 쇼윈도의 멋지게 장식된 고급 차를 가지고 나올 수도 있다. 아주 혹 하게 되는 능력이다.

 

그런데 내 상상이 너무 깊은 것일까. 이 능력에 대해서는 내 욕심을 무한대로 이끌 위험을 느낀다.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인데 언젠가 이 '텔레포티' 능력 하나만 다루는 꽤나 현실적이고 철학적인 영화가 하나 나오면 좋겠다. 공간과 시간에 대한 제약이 사람들 특히 내 자신의 인생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알고 싶다. 아직 길게 뻗지 못하는 나의 생각. 아마도 시공의 제약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 인간의 능력으로 뛰어 넘을 수 없다고 여기는 내 무의식의 차단인 것 같다.

 

인간의 능력은 종류로 나뉠 수도 있지만 '정도' 또한 다양하다. 아마 텔레포티 능력이 있는 세상을 그려볼 때 누구나 똑같이 원하는 곳에 이동할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 아무리 SF라 해도 우리가 '인간'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그다지 의미 없는 세계가 될 것이다.

 

내가, 내 옆에 있는 친구나 회사 동료가 얼마나 시간과 공간에 대한 능력이 탁월한가, 그리고 그 정도의 차이는 경쟁이 될 것인지 아니면 또 하나의 제약이 될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도 조금 전 내 상상을 차단한 무의식, 혹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그 무언가에 대해 갖고 있는 신앙 때문에 결국은 후자로 상상하게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어쩌면 제한 없는 세상은 불가능 하다고 결론 내리지 않을까. 공간에 대한 제약이 줄면 시간을 확보할 수 있지만 그 앞에 놓여진 또다른 장애물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난데없는 텔레포티에 어리둥절한 모습 ⓒ 오윤주

공간에는 '비밀'이 깃들어 있다. 아무리 시간이 늘어난다 할지라도 우리는 늘 은밀한 것을 원한다. 아마도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세상에서는 그 '비밀'을 확보할 수 있는 세계를 꿈꿀지도 모르겠다.

 

제 3의 공간을 그들의 상상 속에 집어 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금연 구역을 설정하듯 법적으로 텔레포티 불가능 지역을 설정하자. 공간에 제약을 두자. 상상의 세계 속에서 또 한번 꿈을 꾸면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경쟁을 고달파 파는 인간들에게 텔레포티 능력차이로 인한 경쟁 그 자체가 제약이 될지도 모른다. 어쨌든 제약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 같다. 인간이 능력이 무한하듯 제약도 무한한 것 같다. 하나를 뛰어 넘으면 또 다른 벽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공간과 시간은 신이 주신 우리의 '선물' 정도로 결론이 나게 되려나?

 

jumper 들을 죽이려는 무리들 ⓒ 오윤주

영화에서는 늘 주인공을 위협하는 '적'이 등장한다. '생존' 하며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스릴, 공포, 안도, 승리감 종합세트를 선물하기 위한 당연한 설정일 것이다. 그런데  많은 '공상 영화' 속에서는 그 '적'이라고 하는 자들이 '신의 대변자'로서 등장한다.

 

이 영화 jumper 에서도 그렇다.  텔레포티 능력은 신이 주신 것이라 인간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있다. 그들의 목적은 이 jumper들을 죽이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나마 그 멋진 능력들을 갖기 원하는 관객들은 신을 보호 하려는 자들을 '악당'으로 간주하고 마음속에서 그들을 몰아내려 애쓴다.

 

'신'과 '인간'의 대결이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아마도 '신'이 이길 듯한데 영화 jumper 속에서는 그 누구의 승리도 없었다. 그저 계속 되는 싸움만 예견하고 있을 뿐이다. 그 '능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또한 그 '신의 대리자'들도 어차피 인간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 인간들은 무의식 속에 '제약' 이라는 것이 어떤 '보호장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영화 '엑스맨' 에서도 초능력자들을 '돌연변이'라 하여 그들을 제거하려는 무리들이 등장하지 않은가.

 

인간은 한없는 욕망을 갖고 제한된 것들을 뛰어 넘고 유토피아 같은 새로운 세계를 꿈꾸지만 그 이면에는 그 세계를 '위험'처럼 간주하고 차단하려는 잠재의식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사실 그것이 '신'이 당연하게 부여한 우리의 또 다른 '능력'인지, 아니면 우리가 갖고 있는 진짜 '제약'인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제약과 초월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제약과 극복의 중간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영화 jumper에서 어떤 승리도 없었듯이 인간들은 계속 꿈을 꾸고 또 그것을 스스로 제한하며 살아갈 것이다 (신의 뜻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승리 없는 결말을 보여주는 장면 ⓒ 오윤주

내가 현재 다른 공간으로 텔레포티 하고 싶은 욕망은 어쩌면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성취 이후엔 또 다른 장벽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거기에 맞서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생각해 봤을 때 뛰어넘고 싶은 ‘공간’ 이 나에게 지니는 의미는 복합적이다. 내 현재 능력과 미래의 가능성을 가늠해보게 해주며 내 안에 있는 보호장치에 안도감도 준다.  ‘제약’ 이라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상징하는 것 같아 절망에 빠질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극복' 에 대한  메시지를 더 크게 보여준다. 왜냐하면 ‘보호장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극복과 제약을 모두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약’이 아니라 그에 대응하는 ‘극복’이 우리의 운명인 듯 하다.  '극복' 이라는 말에는 이미 '제약'이 포함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데 굳이 제약을 한번 더 짊어질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게으르거나 시간이 부족한 나는 '텔레포티'를 꿈꾸면서 그 운명을 발견한다.

2008.04.02 09:21 ⓒ 2008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