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사랑의 상처가 만든 화가 고흐~!

주말에 고흐 전을 관람하고...

검토 완료

김정애(kja410)등록 2008.03.26 17:47

3월의 주말(15일 토요일)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남편 사무실에 주차를 해 놓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반 고흐 전을 보기 위해 청계천 물길을 따라 걸었다. 이제 서울의 명소가 되어버린 그 곳은 때 이른 상춘객들로 북적였다. 한참을 걷다가 계단을 오르니 별천지 같은 빌딩숲이 펼쳐졌다. 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아직도 냉랭한 기운에 몸이 움츠러든다. 

 

서울광장을 지나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섰다. 길 건너 덕수궁 정문 앞까지 길게 늘어선 인파,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일까~ 설마 고흐 전을 보기 위한 관람객은 아니겠지~” 

 

“그런데 웬걸~”  안내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입장을 하려면 1시간 반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순간 갈등이 생겼다. 기다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예까지 발품을 팔아 힘들게 걸어 온 걸 생각하니 도저히 그냥 돌아 갈 수가 없어 남편과 난 대열에 합류해 줄을 이었다.

 

반 고흐 전을 보기 위해 덕수궁 돌담을 에워 싸고 있는 관람객들 ⓒ 김정애

 

미술관 입구에도 장사진을 이룬 인파 ⓒ 김정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돌담을 에워싸고 있는 관람객들, 고흐의 무엇이 후세인들을 이토록 열광케 하는 것일까~? 생전엔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해 일생 동안 단 한 작품 밖에 팔지 못한 가난한 화가였다는데...

 

그가 태어난 1853년 3월 30일은 한 해 전에 세상을 떠난 그의 형이 죽은 날이기도 했다. 어머닌 고흐를 통해 죽은 아들을 보는 듯 그에게 사랑보다는 슬픔을 먼저 가르쳐 주었고 같은 자식임에도 그의 동생인 테오에게만 사랑을 쏟았기에 고흐는 늘 편애에 대한 불만과 어머니의 사랑에 갈증을 느꼈다고 한다.

 

 애초에 그는 사랑과는 인연이 없었던 것일까~ 태어나면서 부터도 그러했지만 사랑을 그토록 갈망했건만 그를 스쳐간 어떤 여인에게서도 위안 받지 못하고 이루지 못할 사랑에 결국 상처만을 가슴에 안아야 했다.

 

그는 자신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다짐을 했다.  “사람들의 눈에 나는 무엇이냐? 없는 사람이거나 특이하고 함께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삶의 목표도 없고 이룰 수도 없는 사람, 한마디로 형편없는 사람이지. 좋다,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특이하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정신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내 작품을 통해 보여주겠다.”라고 ...

 

그의 짧았던 삶 중에도 작품 활동에 바친 10년이란 기간은 소외된 처절한 고통의 삶이었지만 그림 그리는 작업을 통해 활화산처럼 불타오르는 내면을 거침없이 화폭에 쏟아내는 동안만은 행복한 사람이었고 작품에 그의 모든 걸 바친 너무나 인간적인 예술가였다. 어쩜 가난과 사랑의 상처가 그를 예술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처음 미술품만을 감상했을 때보다 영상을 통해 보았을 때에 감동이 더했고 그리고 짬짬이 작품설명이 곁들인 도록을 펼쳐 보면서 더욱 심취하게 되어 마치 오래 전부터 알아 온 사람처럼 그는 어느새 친숙한 이름으로 내 가슴에 남게 되었다.   

 

‘까마귀가 있는 밀밭’이란 작품을 마지막으로 “인생이란 이토록 슬프다는 것을 누가 믿을 것인가?” 라는 말을 남기고 젊은 나이 37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세상을 떠난 고흐, 그의 회고전을 감상하면서 유난히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한 교회의 신도 석을 그린 ‘교회에서’란 작품으로 고단한 삶 속에 마지못해 나와 앉아있는 듯 지루해 보이는 표정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종이에 연필, 팬, 잉크, 수채화 등을 써서 그린 작품 ⓒ 김정애

‘한 인간의 히스토리를 알고 나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말처럼 고흐에 대한 삶을 알고 나니 나도 어느새 열광하는 군중 속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2008.03.26 17:48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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