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한국어로 뭐예요?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 28] 훔쳐온 말 '스트레스'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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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희(drkoo)등록 2008.02.19 17:50

어드로이트 칼리지 겨울학기 초급반 학생들 스트레스 없이 재미있게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 -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스트레스'에 관해서 질문을 던진 태진아 씨 ⓒ 구은희


'스트레스'의 한국어는?

"선생님! '스트레스'는 한국어로 뭐라고 해요?"
"그냥 '스트레스'라고 해요. 한국 사람들은 본래 '스트레스'가 없었나봐요."

'도전 1000곡'도 시청할 정도로 한국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 가사에 나온 단어들의 뜻을 물어보곤 하는 태진아씨가 뜬금없이 '스트레스'가 한국어로 뭐라고 묻는다. 기자도 순간 당황했다. '스트레스'가 한국어로 뭐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어서 궁금해지기도 했다.

'카메라, 텔레비전, 라디오, 컴퓨터'와 같은 눈에 보이는 외래어 이름의 제품 외에도, '미팅, 스터디, 그룹' 등 추상적인 외래어들이 나올 때에도 한국어 반의 학생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이상하게 생긴 글자를 열심히 읽다보면 바로 영어에서 온 단어들임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강태풍씨는 이러한 단어들이 나오면 '훔쳐온 말(stolen word)'이라고 혼자 웃곤 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쓰는 '스트레스'라는 말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썼었을까?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는 초등학생 아이들부터, 가족간의 불화로 인터넷 '속풀이 방'을 찾는 주부들의 스트레스, 그리고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등등 그런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현대인들과 달리, 우리 조상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았던 것일까?

이스트베이 분교 초급반 학생들 모습 왼쪽 뒤에 있는 학생이 한국 가요를 아주 좋아하는 태진아 씨이고 앞줄에 있는 학생이 한국 여자 친구가 있는 강태풍 씨이다. ⓒ 구은희


글자 모양도 이상한 '스트레스'라는 말

수업을 마치고 '스트레스'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강압, 업악, 강제' 등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흔히 쓰는 '스트레스'라는 말의 뜻과는 좀 다르게 느껴지는 표현들이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스트레스'라는 말로 검색을 해 보니, '스트레스 해소', '스트레스 풀기' 등의 관련 검색어가 나온다.

'스트레스'라는 글자의 모양을 살펴보는데 어쩐지 불안정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국어사전에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나온다.

스트레스 [stress] <명사>

① ≪의학≫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신체적 긴장 상태. 이런 상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심장병·위궤양·고혈압 등의 신체적 질환을 일으키기도 하고 불면증·노이로제·우울증 등의 심리적 부적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② ≪언어학≫...

어쩌면 이러한 '스트레스'라는 의학적 증상이 발견되기 전에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못 느끼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라는 말은 의학적인 병증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흔히 느끼는 그러한 감정의 일부분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선 시대의 스트레스 및 스트레스 해소 방법

조선 시대의 '스트레스'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재미있는 구절이 나온다. 대부분 그 당시 '스트레스'는 '화병(火病)'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울화병'의 줄임말로 조선 시대 국왕들의 사망 원인이 거의 이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벗어나지 못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화병(火病)'이 정말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스트레스'의 개념인지는 불분명하다. 우리가 흔히 '스트레스 받는다', '스트레스 쌓인다'라고 할 때의 '스트레스'는 아직은 질병으로 가기 직전의 상태를 말하는데, 기록에 나와 있는 '화병(火病)'의 경우에는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던 정신병 증세를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격무에 시달리는 임금들이 '화병(火病)'에 걸리지 않도록 '웃음 내시'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 웃음 내시가 하는 일은 임금에게 우스운 이야기를 해주거나 웃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줌으로써 스트레스와 근심을 날려버리도록 돕는 것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재미있는 기록은 조선 시대 여성들은 방망이질이나 다듬이질을 하면서 쌓인 화를 풀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화가 나면 놋그릇을 모두 꺼내서 박박 닦는다든지 아니면 현대 가정에서는 대청소를 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내곤 하였는지도 모른다.

스트레스 없는 세상을 꿈꾸며

위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우리 조상님들이 전혀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 현대 사회보다는 조금 덜 했던 것 같고, 그 대중성에 있어서도 서민들보다는 임금이나 높은 관료들이 많이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슬기로운 우리 조상님들은 스트레스가 화병까지 가기 전에 해학과 풍자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어내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화병이 되기 전까지는 그것이 스트레스인 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것 같다.

우리는 너무 쉽게 스트레스를 받고, 어쩌면 스트레스에 중독되어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우리 조상님들은 지금보다 더 열악하고 힘든 육체 노동을 하면서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낙천적으로 받아들이며 우스갯 소리 한 마디와 해학이 넘치는 판소리 한 마당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어냈던 것 같다.

'스트레스'라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 이해하면서 '내 것', '네 것' 구분 없이 '우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묘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종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렇게 욕심 부리지 않고 힘든 사람들 도우면서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일 것이다.

또한, 스트레스가 화병으로 되기 전에 그때 그때 웃음으로 풀어내는 것 또한 지혜로운 방법일 것이다.

태진아 씨에게 설명했던 것처럼 한국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해당하는 한국어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우리 나라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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