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뿐인 졸업생 "쌤의 사랑으로 달라졌어요"

따뜻하고 정감어린 <도시 속 작은학교> 졸업식

검토 완료

김정미(taktak18)등록 2008.02.15 10:33

'도시 속 작은학교' 졸업식 (왼쪽부터) 박민, 이재교, 권휸진, 한동희, 홍낙현 ⓒ 김정미


밸런타인데이, "달콤 쌉싸래한 졸업식"

거리 곳곳에 초콜릿 향이 가득했던 2월 14일, 생의 가장 특별한 ‘밸런타인데이’를 보낸 이들이 있다. 초콜릿 대신 꽃다발을 들고 달콤 쌉싸래한 졸업식을 치른 학생들. 대안학교 ‘도시 속 작은학교’(이하 작은학교)의 제4회 졸업생, 권윤진, 박민, 이재교, 한동희, 홍낙현 이 다섯 명의 학생들이 바로 그들이다.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학교와 벽을 쌓았던 이들이 “생애 못할 것 같던” 졸업식을 하게 된 데는 진심어린 애정을 주는 작은 학교의 힘이 컸다. 그들 생의 가장 최고의 순간이었다는 ‘특별한 졸업식’. 그 곳을 찾아 서대문 청소년수련관으로 향했다.

졸업식이 열리는 곳은 관내 소극장. 찾아가는 길 벽면에 졸업생들의 얼굴이 나온 포스터가 붙여져 있다. 언뜻 봐도 다들 미남, 미녀다. 포스터 가운데는 이번 졸업식은 또 다른 주제인 ‘카모밀레 이야기’라는 글이 써 있다. ‘카모밀레’는 2월 14일의 탄생화인 ‘들국화’로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을 뜻한다.

졸업사진을 찍은 '도시 속 작은학교' 4회 졸업생들 ⓒ 김정미


졸업하기 위해선 자서전 작업 필수!

오후 7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선생님은 오전부터 ‘리허설’에 돌입했다고 한다. “졸업식에 웬 리허설?” 일반 학교 졸업식을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리허설이란 말이 다소 불필요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작은 학교에 있어 졸업식은 졸업장 전달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일 년에 한 번 갖는 큰 행사라는 점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건 행사의 중심이 ‘학생’에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졸업생들은 두 달 전부터 졸업식을 위한 준비를 한다. 일명 ‘졸업과제 프로젝트’.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나의 자서전’ 만들기다. 작은 학교를 다니면서 느낀 점과 여태껏 살아온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써 내려 가면 되는데 사실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시간이 많이 투자되는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 대부분이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번 4회 졸업생들의 경우 자서전은 책으로 엮어졌다. 윤진, 민, 재교, 동희, 낙현 다섯 아이의 지난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다. 방황했던 탈 청소년의 시절부터 작은 학교를 찾아오게 된 과정까지. 그야말로 졸업생들의 역사를 담은 것이다.

학생들의 준비는 자서전뿐 만이 아니다. 졸업식 행사인 재학생과 함께하는 난타 공연 등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간의 노력에 대해 굉장히 힘들었을 법한데도 졸업생들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무한체력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졸업생 박민 군의 말에 다들 웃음이 터진다.

"쌤의 사랑으로 전 달라졌어요"

드디어 오후 7시. 학부모, 친구, 시민단체 등 다양한 사람들로 소극장 안이 꽉 찼다. 모두들 졸업생들의 사회 첫 발을 축하해주기 위해 자리한 것이다. 12명의 재학생들 역시 합동 공연을 기다리는 내내 선배들에게 칭찬과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기댈 수 있는 데가 없었어요. 힘들 때 옆에 있어 줄 사람도 없었고요.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을 못 받았죠. 그러다 보니 제 본 모습을 잃어가고 부정적인 아이가 됐어요. 하지만 작은 학교에 들어와서 전쌤의 관심과 노력으로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었어요”

소극장에 불이 꺼지고 은은한 불빛의 조명이 켜지자 학생들이 나와 ‘자서전’의 일부를 읽는다. 졸업생 홍낙현 군의 말처럼 학생들이 외로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관심’이다.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에 작은 관심에도 힘이 나고 기운이 난단다. 그래서 길잡이 선생님들의 진심어린 애정에 알게 모르게 많이 바뀌었다고.

'도시 속 작은학교'의 길잡이 교사 전상희 선생님 ⓒ 김정미

이들에게 최고의 선생님은 “전쌤”이라 불리는 길잡이 교사 전상희 씨다. “작은 학교에서 일한 지 8년이 다 되어간다”는 전씨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대안학교 교사의 일은 정말 힘들다”며 “힘들더라도 졸업생들을 위해 길잡이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학생, 가족, 선생님 모두 울게 만든 '눈물의 졸업식'

“외박을 하지 말라고 나를 설득하던 선생님께 한번은 욕을 한 적이 있죠. 그때 상처를 받은 선생님은 일을 그만뒀어요. 그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울음) 선생님을 다시는 못 볼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돌아온 선생님이 제 이름을 불러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늘 곁에서 저를 지켜봐 준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권윤진 양이 전씨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다 말고 울음을 터뜨렸다. 흐느낌이 더해져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다. 이 모습을 보는 전씨도 눈물을 흘린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눈물의 졸업식’이 이곳에서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까. 작은 학교의 이런 풍경에 새삼 가슴이 시린다.

졸업생들의 영상 이야기. 자서전 형식을 빌어 낭독을 했다 ⓒ 김정미


“그토록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20살이 되면 뭔가 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그 나이가 돼보니 변한 게 없습니다. 하지만 작은 학교를 통해 한 가지 달라진 게 있어요. 바로 ‘자신감’입니다. 학교 생활은 외로운 마음속에 등불을 환하게 밝혀준 희망의 불빛이나 다름 없습니다”

말할 때마다 자신감이 넘치는 박민 군은 “학교생활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게 애정과 관심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재교 군 역시 사랑을 받을 수 있어 너무나 좋았단다. 다섯 명의 아이들 모두 사랑이 그리웠던 것이다.

스무 살, 동갑인 5명의 졸업생 ⓒ 김정미


도보여행, 영상제작 실습 등의 수업들도 최고

작은 학교의 가르침은 ‘사랑을 주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정형적인 틀을 깨부수는 수업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영상제작 수업을 통해 역할분담을 배울 수 있었다”는 한동희 군과 “도보여행을 통해 목표의심을 심어줬다”는 박민 군, “학습발표회 시간에 춤을 배웠는데 너무 너무 즐거웠다”는 권윤진 양의 말을 통해 그들을 바꾼 것은 유연한 교육의 힘도 컸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양한 수업을 통해 재미를 느끼고 배움을 얻은 5명의 졸업생들을 보며 그들의 웃음이 왜 밝은지를 알 것만 같았다.

학사모를 쓴 졸업생들. 교복이 아닌 학사모와 가운을 둘렀다. ⓒ 김정미


90분의 시간이 훌쩍 지나고 ‘빛나는 졸업장’을 전달하는 순서가 돌아왔다. 5명의 졸업생들은 교복이 아닌 학사모를 쓰고 가운을 입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한다. 그냥 이름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뭐든지 열심히 하는”, “개성이 강한” 등의 수식어를 넣고 말이다. 그동안 학생들을 깊게 관찰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졸업장을 받는 학생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졸업장을 건네주는 선생님은 연신 웃으며 학생들의 등을 토닥거린다. “사회에 나가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들리지 않는 응원일 것이다.

졸업식이 끝나고 '포토 타임'을 갖고 있다. 행사에 참여해준 많은 분들이 포즈를 잡았다. ⓒ 김정미


작은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던 ‘코스모스’에서 튼튼하고 강인한 ‘들국화’가 된 다섯 명의 아이들. 그들을 다시 꿈꿀 수 있게 한 팔할은 학생들을 향한 진심어린 ‘사랑’이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김정미 기자는 <오마이 뉴스> 대학생 7기 인턴기자 입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