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화범을 미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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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ufoi)등록 2008.02.12 16:54
방화 이유가 토지보상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어쩌면 고집세고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미워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가 70대의 노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의 죄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철학관을 운영하며 평범하게 살아온 70대의 노인이 숭례문에 불을 지르고 싶게 만든 이유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찾는 것이 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사법부와 공무원, 정치가들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분노가 극에 달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폭력이라도 행사해 세상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 비단 이 노인 뿐이었을까?

지난 해 1월 사법부에 불만을 품고 석궁으로 판사를 쏘았던 어느 교수의 석궁 테러 사건은 이번 사건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 사시하는 바가 크다.

검찰의 자체 통계에 의하면 공권력에 의한 사법 피해자들이 1년에 3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 달 MBC의 '뉴스 후'에서 방영된 '사법 피해자들의 눈물'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나라의 사법부에 과연 정의가 살아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가져보지 않은 국민은 없을 것이다.

소위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통칭되는 사법기관과 공권력에 대한 불신은 나도 '이 참담한 현실의 희생양이 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과 공포심 마저 들게 한다.

국민의 생활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공무원, 의정비 인상에만 혈안이 된 시의원, 언제나 화합하지 못하고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권모술수나 부리려는 썩어빠진 정치인들.

부정과 부패가 용인되고 능력이 되는 세상을 보면서 분노하거나 혀를 찼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숭례문보다 우리 사회의 정의와 신뢰 회복이 더 시급

이번 숭례문 방화사건을 한 개인의 욕심과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만 정의하기엔 우리 사회는 너무 큰 모순들을 안고 있다. 이러한 모순들을 외면한 채 한 개인이나 특정 공무원의 책임으로만 잘못을 돌리는 것은 그 동안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하던 짓을 되풀이 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탁상 행정, 전시 행정 뿐만 아니라 이 탁한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거나 방조한 국민 개개인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숭례문 복원만 시급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정의와 신뢰를 원형에 가장 가깝게 복원하는 일이 더 시급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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