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국보 1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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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일(chaneel)등록 2008.02.11 19:20

어제 저녁 TV 속보로 뉴스를 접했을 때만 해도 이럴줄은 몰랐다. 곧 꺼지겠지..아니 끄겠지. 굳이 쓰나미, 지진 등 세계 곳곳에서 우리나라 소방대원이 펼친 무용담이 아니더라도 저 정도의 불이면 진화는 누워서 밥먹기 정도겠지. 더욱이 국보1호가 아닌가.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전소된 숭례문의 모습에 할말을 잃었다....... 화면에 무너지는 지붕을 보면서 미국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내린 동영상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출근길 한 정거장 미리 내려 숭례문으로 향했다. 지하철 입구에서 올라오자 나무 목재 탄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미리 화면에서 봤기 때문에 기대는 안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더욱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폭삭 않은 지붕, 숯으로 변한 목재들, 흩어진 기와 파편들. 그나마 주변 빌딩 숲 사이 고즈녁하게 자리 잡았던 국보1호는 이제 완전히 주저 앉았다.  황성옛터도 이보다는 비극적이지 않았으리.  600년의 역사가 무너진 현장은 너무 처참했다.

 

로마는 지중해의 강력한 라이벌 카르타고를 정복한 후 아예 회생이 불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도시 전체를 불살렀다. 아! 한 국가의 멸망은 필히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 수 많은 전화에도 버티던 민족의 아이콘은 저리 숯 검댕이가 되었다. 세계적인 정보대국으로 칭송받던 대한민국은 정녕 아나로그를 버렸던가? 

 

밤 새 소방에 쏟았던 물이 아직 빠지지 않았는지 성벽 구멍 곳곳에서  물이 흐른다. 조상의 눈물이어라. 무지한 후손들을 한탄하면서 국보1호가 불로 대이며 죽어가는 눈물이어라.

 

남대문 시장 입구에서 쇼핑 온 일본인들이 자기나라말로 수근거린다. 뭔말인지 몰라도 뜻은 알 것 같다. 현장에서 떨어진 기왓장을 주으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는 인간이, 쓰러진 숭례문을 배경으로 인물사진을 찍으며 웃는 인간이 나를 더욱 창피하게 만든다.

 

급히 팬스가 쳐진다. 화재현장 보존이 목적이겠지만 내 눈에는 얼른 숨기고 싶은 알량함 다름 아니다. 방화인지 누전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최초 발화로부터 몇 시간이 흘렀는데, 저 지경에 이르도록 우리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불타버린 숭례문을 등지면서 분노가 치민다. 아! 명색이 국보1호가 아닌가.  명색이 국보1호인데. 명색이 국보1호인데.....

덧붙이는 글 | 근조 숭례문

2008.02.11 19:12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근조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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