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 선생님, '진보의 단결'을 의심하십시오

박헌영의 피가 묻은 손을 잡으실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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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lolla)등록 2008.01.02 08:58
손석춘 선생님, 건강하십니까? 저는 대학가에서 <조선바보>를 펴는 일을 했던 김수민입니다. 당시 저희 학생들을 늘 ‘젊은 벗들’이라고 부르시며 힘을 불어넣어주시곤 했던 선생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합니다. 미간까지 술기운이 차도록 잔을 주고받았던 때가 엊그제만 같습니다. 오랫동안 연락도 드리지 못하고, 죄송합니다.

당시 새내기였던 저는 군복무를 마친 지도 어느덧 꽤 시간이 지났고요, 이제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선생님이 아꼈던 다른 학생들은 대체로 저보다 나이가 많았으니 지금 다들 생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선생님께서도 원래 계시던 언론사를 떠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에서 활동하시게 되었지요. 이쯤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간이 꽤나 지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옛일을 기억하시는 데 잠깐의 시간이 필요하실지도 모르겠군요.

저는 선생님을 못 만나 뵌 사이에 민주노동당에 입당하였습니다. 다니는 학교의 학생위원회 일을 짬짬이 하기도 했고, 당의 혁신을 추구하는 여러 학생들과의 모임에도 참여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요 며칠 사이 <오마이뉴스>에 쓰신 두 편의 글을 발견했을 때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고, 글을 읽고 나서는 할 말이 생겼습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선생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옛날의 풍경들과 오늘날의 상황을 겹쳐 떠올리다 모니터 앞에 앉습니다. 건조한 문장에 마음을 싣기가 어쩐지 어색해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실례지만 선생님의 작품 <아름다운 집>을 거론할까 합니다. 이 소설은 박헌영의 동지인 이진선의 시선을 따라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길게 말할 내용은 아니겠지만, 저는 박헌영이라는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은 물론, 더러는 양심까지 의심하고는 합니다. 특히 해방공간에서의 정치적 선택이나 한국전쟁 발발 등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로 들리실지 모르겠으나, 박헌영의 피가 묻은 손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이진선의 주름에 스며든 전체주의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군가가 그르다 해서 그의 적이 내 동지가 될 수는 없다는 단순한 상식적 판단 때문만은 아닙니다. 선생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박헌영이 미제의 스파이가 아니라는 것은, 박헌영의 재판 문서에 쓰인 혐의들이 소설로 쓰더라도 현실성이 없다는 것은 엄연한 진실입니다. 물론 이따금씩 그가 진짜로 스파이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떳떳하게 주장하지는 못합니다. 

해방정국에서 김일성은 반일무장투쟁의 기수였고,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진보주의자였습니다. 그렇지만 진보가 계속해서 진보일 수 있게 하는 것은 숭고한 목적이나 고귀한 이상이 아닙니다. 목적과 이상을 정당화하는, 수단과 과정일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현대의 좌파들은 김일성주의를 사회주의라고 보지 않으며, 평양을 한국 진보운동의 본거지로 승인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이 존재하느냐, 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알더라도 모른다 해야겠지요. 설령 존재한들 선생님 표현을 빌면 ‘한줌’도 안 되는 그들이 한국사회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이에 따를 공안의 탄압은 불의입니다. 남의 머릿속을 짐작하는 국가보안법의 악습을 되풀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렇기에 소위 ‘종북세력’은 그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민주노동당의 적지 않은 활동가들이 당이 북한의 핵실험을 반대하는 일을 훼방하였습니다. 결과는 ‘유감’이라는 어휘로 수렴되었습니다. 2002년 12월 광화문에 모인 촛불들을 화나게 했던 단어가 무엇이었는지요. 조지 부시의 ‘유감’이었습니다. 그렇듯 쓸모는커녕 화만 돋우는 말을 발설하면서 저들은 핵실험을 일반적인 군사무장과 동일시하였습니다.

활동가들의 인적 사항과 성향을 담은 문서가 북한측에 건네어진 적이 있습니다. 이른바 일심회 사건이지요. 물론 이들의 행위는 사회안전을 뒤흔들지 못하며, 악법을 적용해 엄벌한 공안당국은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명백한 반당행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반당행위에도 눈을 감은 것이 자주파입니다. 자신들이 다수파가 되고도 반당행위를 감쌌습니다. 

이 매체에 나간 김종철 씨의 인터뷰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보증될 수 있습니다(아니, 김종철 씨 본인부터 소위 용산지구당 사태의 피해자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참고 견뎌왔으니 자주파 활동가들이 흔히 말하는 ‘품성’을 갖춘 모양입니다). 그들은 당내에서 끊임없이 패권을 추구해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대항하는 사람들을 ‘종파주의자’라고 몰아붙였습니다. 저는 당 대표 선거에서 일어났던 허위사실 유포를 검찰에 고발하는 캠페인을 펼치다가 ‘한나라당의 스파이’로 찍혔다는 어느 당원의 말을 들으며 소름이 끼쳤습니다. 지금도 민주노동당 당원게시판에는 제2창당이나 분당을 요구하는 당원들을 가리켜 “미제의 스파이”라고 부르는 짓거리가 횡행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경쟁자들을 닥치는대로 숙청했던 김일성 전 주석의 행태를 그대로 따르는 ‘종북’일 것입니다.

북조선노동당의 역사가 무엇입니까? 남로당계를 숙청하고, 연안파를 숙청하고, 갑산파를 숙청하고, 경제파를 숙청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잘 아시겠지만, 숙청당한 이들이 김일성에 비해 항일투쟁과 사회주의운동에서 뒤졌던 사람들인가요? 백보양보해서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 주석이야말로 패권주의자이면서 상대를 종파주의로 몰아세웠던 사람이 아닙니까?  

물론 종북세력으로 지목된 이들은 이북의 주체주의자들과는 달리 실제 손에 피를 묻히고 있지는 않습니다. 1990년대 중반 험난한 사태를 겪으면서는 폭력투쟁을 벌인 사례도 매우 드뭅니다. 그럼에도 제가 ‘박헌영의 피’를 운운한 것은 바로 이른바 종북파들이 그 패권주의와 종파주의를 똑 빼닮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설령 마음속으로 북한을 백안시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종북 행동은 조선일보의 거짓선동만큼이나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저는 저들이 절대로 권력을 잡지 않기를 바라게 됩니다.

선생님은 2002년엔가,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화합을 당부하며 ‘한줌도 되지 않는 진보세력’과 비슷한 표현을 쓰셨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말이 적절치 않습니다. 밥그릇에 돌이 1할만 들어 있어도 씹어 삼키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아무리 한줌일지라도 진보세력이 아닌 쪽을 진보라고 일컬을 수는 없습니다. 종북파를 진보세력으로 일컫는 것은 1940년대의 정치지형을 그대로 참고한 실책에 다름 아닙니다. 더구나 6년 전의 대동단결론은 자주파들이 가진 권력의 증가를 전혀 쫓아오지 못합니다.

자주파도 한미FTA를 반대하고 비정규직 악법에 저항합니다. 평등파도 대미자주를 지지하고, 뿐더러 ‘동족’의 ‘자위권’에 대해서도 반핵의 잣대를 놓지 않을 정도로 한반도평화를 추구합니다. 이것은 사안에 따라 협력하거나 경쟁해야 할 요인이지 결코 같은 정당에 소속되어야 할 근거가 아닙니다. 또한 많은 부분들이 투명해진 사회에서 대중들이 오류의 늪에 빠진 민주노동당을 앞으로도 지지할 공산은 희박하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하고 싶습니다. 한줌임을 자책하다가는 오그라드는 민중의 손아귀에서 진보정당은 박살날 터이며, 당의 건설과 원내진출의 역사는 한낱 에피소드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 혹 기억나시는지요? 정태인, 김규항씨와 연대에서 토론회를 가진 다음 열린 뒤풀이 자리에서 한총련과 전학협의 학생들 그리고 기성 학생운동조직과는 조금 다른 성향을 갖고 활동을 했던 이들이 학생회관의 큰 방에서 마주보고 앉았었던 풍경을 말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학생들끼리 대화와 토론을 가질 기회가 드뭅니다. 사상에서부터 문화까지 어느 것 하나 공통점을 찾기가 힘든 이들끼리 좁은 틈바구니에서 한쪽은 핏대 세우고 다른 쪽은 얼버무리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도 힘에 부칩니다.

정말, 민주노동당에 들어온 이후 피곤한 나날이 많았습니다. 극악단순한 논리와 거칠 것 없는 조직원 증식을 뽐내는 이들을 지켜만 보는 것으로도 조선일보와 싸우는 것보다 더 힘이 들었습니다. 우스개소리가 아니라, 이런 현상은 당내 평등파 활동가들에게는 -자주파 쪽도 마찬가지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산업재해’에 해당합니다.

민주노동당과 그 당원들이 어떻게 합의하거나 분열할지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은 어떻게 되든 자주파 또는 종북파와는 당을 함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정세인식이나 전략전술에 선행하는 양심과 사상의 문제입니다.

정파대립과 이념갈등은 진보진영의 고질적 현상이었습니다. 어쩌면 놔둬야 할 역사적 필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부의 대립과 갈등은 생산적으로 풀리기도 하며, 때로는 연대와 단합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진보진영’에 국한되는 원리입니다. 진보주의자는커녕 민주주의자인 것도 의심스러운 사람들과는 진보정당을 함께할 수 없습니다. 자주파는 진화에 실패하였고, 모든 것이 뚜렷해졌습니다.

선생님. 마르크스 이래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철학의 임무가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에 앞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의심”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묶여진 것들을 다시 분별하지 않을 때, 단결론은 조직, 심지어 개개인의 인성을 파괴하는 흑마술이 될 것입니다.

새해, 해석과 변혁, 회의와 분별이 모두 선생님의 사유와 연구에 함께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진보하는 진보주의자라면 어디에서든 다시 만나게 될 터이니 ‘민주노동당’이란 틀이나 ‘진보진영’이라는 표식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선생님의 건승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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