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남은 친구 번호를 지우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준만큼 다른 누군가에서 돌려받는 것인지

검토 완료

김소영(blueblu)등록 2007.10.04 13:30
초등학교 시절 난 여서 일곱명의 반친구와 몰려 다녔다. 같이 숙제도 하고 떡볶기도 사 먹고 한 집에 모여 놀기도 하고. 반 친구 뿐 아니라 수시로 어울려 놀기 충분할 만큼의 동네 친구들도 있었다.

중고등학교에서 그 수가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섯 손가락은 족히 넘을 만큼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40을 바라보는 지금 내게는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다. 매년 한 두통의 전화로 10년 넘게 연락을 주고 받던, 내 마음속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유일한 한 명의 친구, 그 친구의 전화번호를 완전히 우리집에서 지워버렸다. 핸드폰 번호는 삭제하고 전화기록부에 있던 것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새까많게 덮어 버렸다.

10년 넘게 일년에 적어도 서너 번은 통화하고, 시간을 맞춰 한두 번은  만나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친구로부터 전화가 오지 않았다. 친구라곤  그 애 하나 뿐이어서 가끔 난 그 친구가 나보다 먼저 죽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곤 했다. 친구가 죽으면 친구 한명 없는 나는  세상사는 게 얼마나 쓸쓸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지금와 생각해보면 사교적이었던 그 친구에게 나는 그냥 많은 친구 중의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강산이 바뀔 만한 세월을 우리는 한 번은 내가,  다음은 그 친구가 하는 식으로  전화를 주고 받았다. 그런데 그런 무언의 룰이 깨진 것이다. 한 두 번은 내가 먼저 했는데 그게 어느 횟수를 넘으면서부터는 자존심이 상해 걸 수가 없었다. 어찌 생각하면 자존심을 따질 만한 일도 아니건만 그건 머릿속 생각이고 내 감정은 완강히  전화거는 것을 거부했다.

그것으로 그치면 별 문제가 없었을 텐데,  난 그러면서 전화가 걸려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기다림은 원망이 되었고 전화기만 바라보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예전에  내게 잊을 만 하면 전화를 걸어오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기쁘게 받기는 했지만 몇 년 동안 직접 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친구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특별히 걸고 싶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친구도 나와 같지  않았을까 싶으니 불평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행동을 그대로 되돌려 받은 셈이니. 다만 이제 전화기를 들고 버튼을 누를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허전하고 슬프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먼저 손 내밀 생각은 들지 않으니 그런 기분이 들어도 싼 셈이다.
인색하고 낯가림 심한 내 자신이 만든 결과라고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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