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며느리의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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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gustnr)등록 2007.09.28 08:39

" 서울래기 맛좋은 고래고기 용용 죽겠지 용용죽겠지."

내가 어린시절 친척집에 다니러온 귀여운 서울 여자아이에게 질투의 표현방법으로 이노래로 그아이를 놀려주곤 했다.

도데체 서울애들은 뭘 먹기에 저리도 얼굴이 하얗고 이뿌단 말인가?

그 여자아이는 우리동네 코찔찔이 남자애들을 모두 자기편으로 만들만큼 이뻤다.

하긴 맨날 간난이 머리모양에 시커멓고 못생긴 여자애들만 보다가 흰 피부에 긴머리소녀를 보니 내가 남자애라도 그아이의 맘에 들고 싶어 했겠다.

그러니 그 서울여자아이는 우리 시골 간난이들에겐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고 한편으로는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오늘날 서울남자와 살게되줄 알았다면 그 서울여자아이를 그렇게 놀리지 않는건데....

옛말에 사람앞일은 알수가 없는 거라고 했던가

우리남편은 내가 그렇게 놀리던 서울래기...
완전 서울 토박이다.

남편과 나는 같은 회사에 다녔고 남편은 서울에서 이곳에 파견근무를 나오게 되면서 나를 만나게 되었다..

 

때까지만 해도 어린나이라 결혼에 대한 생각도 없었고 서울사람은 나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회사 동료 이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 서울남자가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지 뭔가.
" 저기? 현숙씨 오늘 퇴근후에 시간 좀 내 주십시요?"
"네!! 시간을요? 말라꼬예(뭐할려구요)?"
"아예 말라꼬라는 커피숍에서 기다리겠습니다."
" 아니 말라꼬는 커피숍이 아이고요 왜 그라냐 이말입니더?"
" 네 하여튼 저에게 시간을 좀 내어 주십시오. 할말이 있습니다.?"

아니 같은 대한민국 땅에서 이렇게 말이 안통할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턴 나는 남편과 약속한 장소에 나갔고 남편은 깨끗한 옷차림에 진지한 모습으로...
" 저기 현숙씨 제가 대구에 처음올때부터 쭉 봐왔었는데 저는 현숙씨가 참 좋습니다.
우리 결혼을 전제로 한번 사겨 봅시다."

이러면서 언제 준비해왔는지 장미꽃 한다발을 나에게 안겼다.

역시 서울 남자라서 그런가 정말 매너 있었다..


아니면 내가 그때까지 연애다운 연애를 못해봐서 그런가 나에게 다가온 남편의 프로포즈는 신선한 충격이였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만남을 시작했고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살면서 서울사람과 경상도사람이 느끼는 언어의 장벽은 엄청 높았다..


남편이야 나를 사랑하고 나의 투박한 사투리도 매력으로 보였겠지만 남편의 가족들 나에겐 시댁 식구들인 그분들은 그리 호락 호락 한 존재가 아니였다.

결혼 얼마후 곧 명절이 다가왔고 우리 부부는 서울 시댁에 명절을 쉬러 갔다.
남편은 아들 삼형제중에 막내이다.

명절전날 다들 음식준비에 분주하고 나도 뭔가를 도와 드려야 한다는 마음에 ..

" 형님 저도 도와 드릴께요?"
거기까지는 제딴엔 근사한 표준어를 했던거 같다.
형님도 그런 내가 기특했던지 몇가지 일을 시켜주셨다.
" 동서 그러면 저기 저 부추 좀 다듬어 줄래?" 하면서
야채가 있는 소쿠리를 가르켰다..

" 배추는 김치담을건가요?"
하면서 칼로 반을 쫙 가르는데 ....

 

" 아니 동서 내가 부추 다듬어랬지 배추 다듬으면 어떻게 해 그리고 배추전 구울려면 통째로 놔둬야 하는데 이렇게 가르면 어떻게해 아유 이럴 어째 다시 사러 가야겠네..."
" 형님이 배추 다듬어라고 해서 배추 다듬었는데요?"
그랬다.

경상도에서는 부추를 정구지라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전 배추와 부추를 잘못 알아듣고 비싼 배추만 두조각을 내버렸으니....

주방에서 이런저런 소리를 듣고 있던 남편이 나와 설명을 하기 시작했고 형님께서도 그제서야 내말을 알아들었다..

그러나 내가 20년을 넘게 쓰던 경상도 사투리를 하루아침에 고쳐지겠는가.?

전을 굽는데도 얼마나 많은 사투리를 썼는지 두 형님은 내가 입만 벙긋거리면 까르르 웃느라 정신이 없으셨다...

" 형님 배추찌짐(배추전) 꿉고 정구지 찌짐(부추전) 굽는교?"
" 형님 이제 뒤밸까요?(전을 뒤집을까요)"

저는 한마디로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몇년간은 나의 억쎈 경상도 사투리 억양 때문에 시댁에 가는 일이 너무도 두려웠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편의 통역 없이는 의사소통이 원할하게 안이루어지는 일이 너무도 많다.

그러던 지난겨울 설날에 눈발이 날리던날 시댁을 갔다.

이곳은 겨울이 되도 눈은 좀처럼 내리지 않는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난생처음 그렇게 많이 내리는 눈을 본 우리 아이들은 감탄을 하면서
" 엄마! 엄마 눈 억수로 마이 온데이  봐라 봐라?"

그순간 전철안에 있던 시선이 일제히 우리 가족에게 꽂혔다.

아이들이 없을때는 사람들이 못 알아들을 정도로 조그마하게 남편에게 말했는데 어디 아이들이 그런 눈치를 알면 아이들이겠는가?
어른이지...

눈치없는 우리아이들 사람들의 시선도 모르고 둘만의 대화에 빠져 들었다.
" 언니야 언니야 내는 큰집에 가면 대빠리 큰(많이 큰) 눈사람 만들끼다?"
" 아이다. 내가 더 대빠리 큰 눈사람 맹글끼다?"

그순간 전철속에는 폭소가 튀어 나왔고 나는 얼굴을 어디둘지 몰라서 웃으며...
" 호호호 우리 아이들이 경상도만 살아서 눈을 처음 봐서예 고마 흥분했는 갑니더."

아뿔사 나도 그만 사투리를 해버리고 말았다.

전철에서 내릴때까지 얼굴이 어찌나 화끈 거리던지...

겨우 도착한 시댁에서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아구 동서 오느라 고생했지? 어서 들어와?"

그렇게 시댁에서 하루밤을 자고 아침이 되어 제사 음식 준비를 하는데 골목에서 놀고있던 작은 아이가 눈에 미끄러져 울고 있었다.

" 일나거라 퍼뜩!!! 니가 자빠져놓고 울기는 와 우노 어이구 문디 가시나야 그라니께 내가 미끄럽다꼬 좀심해라 안카더나?"


그말에 우리 시댁 식구들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내딴엔 경상도 사투리를 안쓸려고 조심하는데 급할때는 어쩔수 없이 이놈의 사투리먼저 나와 버리고 만다.

아차하는 순간에는 이미 사투리를 쓰고 난후다.

때늦은 후회를 하는데 남편이 제게 다가와 ....

" 당신은 이 국제화 시대에 아이들이 영어로 말하게는 못해도 표준어는 쓰게 해야 될것 아니야 그 사투리가 뭐야?"

안그래도 사투리때문에 시댁만 오면 소외감 느껴지고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나에게 염장지르는것도 아니고 한다는 말이 고작 국제화 시대에 맞춰 아이들을 교육 못시킨다는거 아닌가?

순간 내마음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확 폭발하고 말았다.

" 뭐라케샀노?경상도 사람이 경상도 말쓰는게 당연하지 그라몬 미국말쓰까? 그래 표준어 잘쓰는 당신이 갈키봐라와? 와 내보고 뭐라하노?"


나는 따발총 처럼 다다다다 한방 쏘아주고 어른들이 보든 말든 방으로 들어 가버렸다.

밖에서는 남편보고 말실수 한거 같으니 빨리 들어가 사과하라고 했다..
남편은 형님의 말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말만큼 잘 듣는다.
방문을 삐끔 열고 들어와


" 여보 화났어? 미안해 화풀어?"
" 당신 내가 챙피하나? 표준어 잘쓰는 서울 여자 하고 결혼하지 와 내하고 결혼 했더노?"

" 아니 난 당신이 쓰는 사투리가 귀여워서 결혼 했는데..?'
" 그런데 와? 지금은 실증났나?"
" 그런게 아니고 아이들은 표준어를 하는게 좋을거 같아서 내가 그랬지..."

그렇다.

이미 사투리가 입에밴 나는 어쩔수 없다쳐도 이제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표준어를 갈쳐주고 싶은 남편의 욕심이였다.

그런데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도 엄마인 내가 많고 주위에도 다들 경상도 사람들 뿐이니 자연적으로 아이들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않는가?.

난생처음 시댁에서 남편과 대판 싸웠다.

며칠 안있으면 추석인데 지금부터 벌써 서울 시댁에 가서 지낼 생각을 하니 걱정부터 앞선다.

이번에는 사투리를 좀 적게 써야 할텐데...

언제쯤 보드라운 서울말을 완벽하게 구사할수 있을까...

이곳에서는 이렇게 활발한 내가 서울만 가면 주눅이 들고마니...
서울에서의 나는 영원한 이방인인가 보다.

하지만 그건 이곳에서의 남편도 서울에서의 나와 마찬가지 아닐까....


그렇게 그 서울아이를 놀리던 내가 서울 남자와 결혼하게 될줄은 어찌 알았겠는가?

"서울래기 맛좋은 고래고기 용용 죽겠지"가 메아리가 되어 다시 나에게 들려지는것만 같다...

2007.09.28 08:3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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