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제국 로마

제국의 <명예의 전당> 입성, 미국은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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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정(lucidia5)등록 2007.07.10 19:08
올 초 미국 버지니아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발표가 나자 한국정부는 미국에 조문사절단을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미국정부의 입장은 ‘미국은 다민족 다인종이 모여 사는 국가인데 모국이 나서 자성한다 하는 식의 입장을 보이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한국인이 우려했던 바와 달리 미국이 차분한 태도를 보이자 머쓱해하면서도 ‘최강대국 미국식 사고방식’에 ‘역시 미국’이라며 놀라워했다.

이런 미국의 태도는 세계인이 모인 제국에 걸맞는 것이지만,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 국제예절과 한국인의 정서를 배제한 점이다. 인종차별적 소요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표면화되지않아 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만약 로마의 유대장관이던 퀴리누스가 미국의 외교를 평가했다면 70점짜리 밖에 되지 않았을 듯 싶다.

보편의 로마가 특수 유대를 다룰때 ‘케이스 바이 케이스’를 얼마나 잘 적용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으로 정평난 티베리우스가 로마의 매끈한 얼굴에 난 뾰루지 같았던 유대로 보낸 이 인물 또한 탁월했다. 우상숭배를 금하는 유대인을 위해 황제의 옆얼굴이 새겨지지 않은 통화를 유통시키고, 병력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카이사레아에 주둔시키거나 요직에 현지인을 임용하여 유대인들을 자극시키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했다. 이보다 더 세련된 ‘감성정치’는 찾기 힘들다. 이 용어는 최근에야 대두됐지만, 적당한 이름이 없었을 뿐 개념이란 늘 존재한다. 이 개념을 활용할 줄 알았던 점에서 로마는 분명 앞선 제국이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자면 98년~2001년 사이 미국의 ‘윈윈전략’이 있다. 두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을 동시에 이끈다는 내용인데, 로마제국에서 ‘윈윈전략’이란 말은 없었지만 누구보다도 이 문제에 잘 대처했던 그들이다. 로마의 ‘분할하여 통치한다’에 따르면 티베리우스 황제시대 라인강 서쪽-도나우강 동쪽-오리엔트의 트리플윈 이상도 충분히 가능했다.

‘미국과 한국’이 ‘로마와 유대’에 비할 만큼인가 하면 대답은 “그렇다”다. 현재 미국의 동북아지역 문제는 로마제국의 오리엔트지역 문제와 맞먹는다. 앞서 말한 ‘윈윈전략’의 두 지역이란 중동과 한반도를 지칭한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로마제국 3대 도시 중 2대 도시가 오리엔트에 있었던 만큼, 동방외교의 전략적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로마의 오리엔트 방위체제는 파르티아를 견제하기 위한 로마 동맹국들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성립된다. 로마로서는 무력충돌은 최대한 자제하고 외교선으로서 파르티아를 봉쇄하고 싶었다. 아르메니아가 파르티아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고 로마의 클리엔테스로 유지시켜 파르티아를 견제하는 것이 로마의 동방전략이었다.

현재 미국의 동북아전략은 어떤가? 로마시대에도 오키덴트와 오리엔트가 이질적이었듯, 미국의 눈에도 동북아는 특수한 지역이다. 다양한 문화․종교․인종, 상이한 정치체제의 혼재, 남북한의 대립과 중국․일본의 성장으로 인한 다극화가 일어나는 중심이다. 로마가 파르티아를 봉쇄하여 제국의 안전을 유지하는데 힘썼듯이, 미국도 세계의 평화와 국익을 위해서는 동북아 안보를 무시할 수 없다. 기존의 우방인 일본, 한국 등을 기점으로 아시아에 개입하여 미국의 영향력을 확산한다는 전략이다. 그 중 한국은 중간 정도의 왕국인 아르메니아와 비교할 만 하다. 중국의 경제성장, 일본의 군사대국화, 북한의 핵무기 위협은 미국에게 동방의 ‘파르티아’만큼 강력한 상대이다. 그 사이에 위치한 한국을 전략적 요충지로 삼아 ‘아르메니아’로 둔다면 ‘파르티아’를 견제하는 데 상당한 힘이 된다. 동방안정의 열쇠로 아르메니아를 손에 쥔 로마외교는 성공적이었다. 미국의 전략이 어떻게 가름날지는 두고 볼 문제다.



▲ 평화의 제단

ⓒ 한길사


“어떤 사업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이, 내용은 제각기 다르다고 해도, 그것이 자기한테 이익이 된다고 납득하지 않으면 어떤 사업도 성공할 수 없고 그 성공을 영속시킬 수 도 없다.”
- 마키아벨리 인용, <팍스로마나> 211페이지

제국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외교 전략의 승리뿐 아니라 국익 추구도 필요하다. 로마가 동방을 소홀히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국익과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제국의 3대 도시 중 2개인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가 동방에 있다. 도시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고 사람이 모이면 물산도 집중된다. 유대인이 ‘돈냄새’를 찾아간다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곳이다. 마찬가지로 동북아도 미국의 국익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민주주의의 촉진, 자유무역지대의 확산, 일본과의 무역관계 개선 등 으로 경제적 활성화를 이루는 게 목적이다. 최근 한국과의 FTA 타결로 미국의 국익은 더 커질 전망이다. 로마제국과 21세기의 최강대국 미국은 국익 추구에 있어서는 같다. 하지만 그 이면으로 중대한 차이점이 보인다.

제국은 공익사업이 아니다. 제국이 된 후의 공익추구는 제국 전체의 안정을 위해서 필요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책임이지 필수는 아니다. 로마도 이를 알고 있지만, 로마는 제국이 되는 과정에서 공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은 전체의 국익이 되기에 교묘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로마인들은 보이는 모습에도 신경을 썼던 사람들이다. 로마인들은 제국의 통치권 아래 들어온 속주에 가도나 항만 같은 사회간접자본을 설치했다. 이런 로마화는 단순히 로마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며 서비스로 깔아준 게 아니다. 가도를 통한 물류의 이동성을 높여 경제력을 활성화 하기 위함이다. 속주의 경제력이 높아지면 백분율로 세금을 걷는 로마로서는 세입도 많아지는 셈이다.

여기서 벌써 두 가지 교묘한 점이 눈에 띈다. 인프라는 속주민들의 편의성에 보탬이 되므로 환영을 받고, 세율이 백분율이라 세금을 높일 때의 거부반응을 피하면서도 국익은 챙길 수 있다. 동방의 수공품 공방에서 만들어진 사치품이 로마식 가도를 이용해 항만에 다다르면, 다시 배를 타고 로마로 간다. 로마에서는 25%의 관세를 물리지만 수요는 넘쳐난다. 로마에서 동방을 포함한 속주까지 아우르는 대경제권은 로마의 가도를 타고 이뤄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외로 확장된 로마인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라고 할까, 속주민들 입장으로서는 누군가의 지배를 받아야 할 바에, 그것이 로마라면 오히려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일제도 ‘속주’였던 한국에 철도를 부설했지만 일본식민통치가 한국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했기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일본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는 없다. 일제가 실시한 모든 정책이 이를 반박하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이 속주민의 종교, 언어 등을 인정하고 속주민 중 뛰어난 이를 뽑아 지도케한 반면 일제는 조선어사용금지, 창씨개명 등의 한민족 말살 정책을 폈다. 제국통치에서 동맹국 상대가 아니라면 철저히 착취하고 유린할 상대일 뿐이다. 한민족은 이름 석자를 강제로 일본식으로 바꾸며 이를 갈았지만 로마제국의 속주민 중에는 스스로 로마식 이름을 얻어 제국의 중심으로 진출한 예가 적지 않다.

실질적인 속주라도 로마인들은 클리엔테스라 부르며 용어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눈 가리고 아웅식인 이름 뿐이라도 대중은 이름에 집착한다. 게다가 로마는 이름에 걸맞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말에 따라 ‘패자까지 동화시키는’ 관용에 중심을 두기 때문이다. 카르타고를 부활시킨 예도 그렇다. 비록 카이사르라는 걸출의 주도하에 이뤄진 일이지만, 그 인물이 키워낸 곳이 로마임을 감안할 때, 로마의 정신이란 이렇게 개방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미국은 이런 관용은 잊고 주위 국가들의 동화시키는데도 실패했다. 국제사회가 모여 상호협조가 필요할 때 교토의정서, 핵무기확산이나 소형무기규제를 위한 비준 거부처럼 일방적인 모습을 보였다. 로마가 속주민에게 ‘로마와 함께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생각을 심어줘 자발적으로 동화될 수 있었던 반면 미국은 제 이익에 맞지 않으면 먼저 팽개쳤다. 로마황제가 최종적으로 시민의 환호에 따라 옹립이 결정된다면, 지금 세계시민은 소위 세계의 지도자에 ‘우~~’를 외치고 있다. 자발적인 동화는 커녕 반미감정은 확산되고 부시의 실언은 즉시 뉴스로 다뤄져 조소거리가 된다. 칼리굴라를 향한 로마시민의 반응이 차가워졌을 때 멀리 떨어진 속주민들은 알 수 없었지만, 이제는 메스컴의 발달로 ‘몰라서 받드는’ 일은 없어졌다. 인기에 무심했던 티베리우스라도 지금의 부시에게 충고할 말이 있을지 모른다.

로마인들이 비슷한 국력의 카르타고, 그리스를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 나아가 세계제국이 는 로마인의 열린 사고와 실용적 습관 덕분이다. 딱히 민족으로서의 혈통이 뛰어났다거나 카르타고나 그리스인처럼 바다에 타고 났던 것도 아니다. 만약 역사가 단일방향, 즉 발전의 형태로만 나간다면 그런 약점을 극복했던 로마인들이 제국을 거쳐 더 강력한 대국으로 남아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이탈리아는 과거 로마제국의 영광에 힘입어 GDP의 12%를 관광업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 로마제국시대 야만족으로 원정의 대상일 뿐이던 게르마니아, 브리타니아는 현재의 선진국 독일과 ‘해가 지지않는 나라’ 영국의 영광을 얻었다. 결국 로마제국은 ‘그 시대’ ‘그 로마인들’의 노력의 산물이지 단계적 진화의 부산물이 아니다. 이미 로마인들은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만큼 발전된 체제를 완성시켰다. 한 국가체제는 ‘그 시대’(시대적 배경, 시운 등)와 ‘그 로마인들’(지배자의 역량, 피지배집단의 성격 등)이 조화를 이루어야 탄생할 수 있다. 만약 로마제국 이후 이렇다할 국가가 나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발전이 덜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조건 중 하나라도 결여되었거나 조화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로마의 영광은 틀에 넣고 마구 찍어 내는 석고상이 아니라, 장인이 오랜 기간 축적한 기술로 섬세히 다듬은 대리석 조각과도 같다. 레플리카로서는 모양은 따라할 수 있어도 장인의 정신까지 복제할 수는 없다.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인프라 스트럭쳐의 기능성, 실용적인 로마법의 정신과 적용에의 유연성. 이 방면에서 로마인은 선구자다. 장인이 만든 명품은 ‘애프터서비스’도 확실하게 책임진다. 이것이 로마인의 ‘유지․수리․복구’ 정신이다. 로마제정에도 3명의 장인이 있는데, 카이사르가 로마제정의 조각의 밑그림을 그리고 아우구스투스는 2명의 사제 아그리파와 마이케나스를 두어 형태를 잡아내게 했다. 엄격하면서 우직했던 티베리우스는 자신의 개성을 발휘해 작품을 망치기 보다, 선인의 뜻을 이어받아 작업을 훌륭히 마무리했다. 미국도 초기에는 다른 유럽강대국에 비해 보잘 것 없었지만 프론티어 정신 하나로 황무지땅을 개간했고 ‘미국적인 것’을 세계로 전파하여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지금의 미국의 정신은 ‘건전한 실용성’ 보다 세계에 성조기를 꼽겠다는 앞뒤 안가리는 ‘개척’에 중점이 있는 듯 하다. 미국은 대단한 국가임에 틀림없지만 로마제국의 위상에는 비할 바 못 된다. 로마제국이 ‘좋은 제국을 넘어 위대한 제국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로마의 제국주의가 이후 등장하는 제국주의와 달랐기 때문이었다.

버지니아공대사건에서 미국은 다양성을 포옹해야 하는 대국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은 다양성은 알지만 그 의미는 로마인만큼 이해하지 못했다. 로마가 보기에 다양성이란 특수를 보편으로 맞춰 넣어 보편을 늘리는 게 아니라, 특수는 특수대로 존중하여 보편과 특수가 공존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제국의 지배하에 있는 약자를 언제든 쳐부술 능력이 있는데 오만이 아니라 관용으로 이어진 점은 특기할 점이다. 로마제국의 안정에 반기를 들고 위협을 가하지 않는 이상 상대와 힘을 합쳐 시너지효과를 창출해 내는 전략은 현대 국가와 기업에서도 벤치마킹할 사례다. 이러한 다양성을 용인한 밑바탕이 되었던 로마인들의 다신교가 일신교로 바뀐 후의 로마의 행보는 가히 상징적이다. 일신교를 믿었던 것은 유대인도 마찬가지지만, 이 일신교는 민족과 강하게 밀착되어 있기에 현재까지 그 맥을 유지하고 있다. 로마제국을 거쳤던 유대민족은 “봐라, 너희들은 멸망했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말할 지 모르겠다. 로마제국은 사라졌지만 로마법의 정신은 이어져 법체계의 근간이 되었고 로마의 가도는 지금도 세계를 향해 뻗어 있다. 로마는 영원한 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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