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좋은 무진장'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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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석(tourmali)등록 2007.07.06 10:41

'살기좋은 무진장' 머리띠를 두른 버스 ⓒ 정기석


터미널은 봄채소와 봄나물을 잔뜩 펼쳐놓은 봄 할머니들의 판입니다. 사면 좋고, 안 사도 좋다는 상술로 무장했습니다. 장사보다는 수다가 목적이고, 손님보다는 옆자리 친구가 우선입니다. 일단, 채소는 신선하고 나물은 청순합니다. 그 상술에, 자꾸 사고 싶어집니다.

대합실엔 어딘가로 떠나려는 마을사람들로 그득합니다. 언제 떠날지는 짐작이 안갑니다. 바로 떠나고 되고, 좀 더 놀다 다음 차를 타도 됩니다. 그런 표정과 자세입니다. 뒷 모습으로는 누가 누군지 가려낼 수 없습니다. 대강 똑같습니다. 할머니들은 모두 파마머리를, 할아버지들은 모두 점퍼 차림입니다. 이곳에서 대대로 살아온 원주민임을 알려주는 공통의 징표입니다.

젊은이는 몇 보이지 않습니다. 다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도시로 멀리 떠났습니다. 한번 떠난 자식들은 잘 돌아오지도 않습니다. 도시에 살면, 오고갈 여유도 없고, 형편도 안된다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터미널은 온통 부모님, 조부모님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서울이나 부산가는 버스는 하루 두 번씩 있습니다. 출발시각이 바뀐 사실을 종이 한 장에 대충 끄적거려 붙여놓았습니다. 물어봐도 매표원은 심드렁합니다. 대도시로 가는 일은 관심이 없습니다. 갈 일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살아가는 데 꼭 소용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무주에서 진안으로 통하는 길목, 기업도시가 들어설 안성면 거리 ⓒ 정기석



둘. 읍내

터미널은 진안읍의 허브입니다. 중요한 뉴스거리나 자랑거리를 알리는 현수막이 팔랑거립니다. 어느 집 자식이 고시에 붙었다느니, 어느 학교 졸업생이 이번에 장군이 되었다는 현수막은 요란하게 팔랑거립니다.

시장은 한가롭고 고즈넉합니다. 그래도 5일마다 한번쯤은 시장바닥 같을 것입니다. 3만명도 안되는 주민수에, 전국 최대산지라는 인삼 조차 유통은 금산에 다 내어주었습니다. 주민들끼리는 서로 팔고 살 게 당최 마땅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현금도 없습니다. 40억원을 들여 한방약초유통센터를 완공해도 채울 컨텐츠가 없어 문을 열지도 못합니다.

대로를 따라걸으면 은행도 있고, 큰 식당도 있고, 마트도 있고, 유명 제과점도 있지만, 길목이 가장 좋고 너른 곳엔 공공기관이나 관공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오늘 현재, 무진장 고을의 경제는 시장경제가 아니라, 터미널 좌판경제입니다. 여럿이 함께 먹고살기에 고단한 경제구조입니다.

작고 낮고 느린, 진안읍내 ⓒ 정기석



어느 마을에 가든 군청 옆에 바로 붙은 식당이 맛있습니다. 대개 들어맞습니다. 진안읍에는 인삼돌솥밥 집이 그렇습니다. 군수님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트로트가수가, 어떤 정당의 대표께서, 교수님이나 박사님들이 밥먹으러 오는 집이라며 주인할머니가 우쭐거립니다. 그러다, 공무원들이 멀쩡한 군청 앞 보도를 걷어내고 비싼 돌로 새로 깐다고 이죽거립니다. 가까이 사는 군수님은 귀가 늘 간지럽습니다.

진안에도 아파트가 여럿입니다.‘고향마을’이라는 야심찬 브랜드를 내건 신축아파트가 한창 분양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진안에는 도시에 버금갈만치 편리하고 깨끗한 ‘고향마을’이 하나 더 생긴 셈입니다. 콘크리트 아파트가 고향도 되고, 마을도 되고, 아예 ‘고향마을’까지 되는 참 편한, 이 세상입니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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