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대신 '대자보'를

오마이뉴스에 드리는 제안

검토 완료

정동원(jungs21)등록 2007.07.16 10:59
기본상으론 인터넷 댓글을 검열하려는 어떤 시도도 반대한다. 물론 정부나 몇몇 "전문

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개인의 명예나 인격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정신적 폭력, 허위

사실의 유포 등 악행을 댓글 규제와 실명제 도입으로 막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건 실현하기 어려운 이상일 뿐이다. 현실에서 검열과 규제는 결국 몇몇 힘있는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감추거나 반대파, 비판세력을 공격할 데 쓸 좋은 도구가 될 뿐이다.

힘 있는 자들이 악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권력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더우기 잘 정비된 검열 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을 이용하는 우리 스스로가 남의 의

견과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이런 검열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인터넷은

책이나 영화와는 다르다. 뺏어서 불태울 수도 없고, 만들고 퍼트린 사람을 찾기도 거의 불가

능하다. 민주주의의 원칙에도 어긋날뿐더러, 실제 효과 자체도 의심스러운 것이다. 즉 정부

가 최근 법의 이름 아래 추진하려고 하는 정보통신 정책은 근거가 부족하고 효과도 기대

하기 어려운 정책이며, 단지 국가보안법의 뒤를 잇는 새로운 시민 길들이기용 채찍이 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와는 좀 다른 의미에서 인터넷 댓글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 댓글은 정식

으로 쓰는 글은 아니다. 누구나 내키는 대로 간단히 몇 줄 쓰고 클릭하면 쉽게 자기 의견이

나 느낌을 남들에게 알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현실에서 이 특성은 장점이 아니라 아주 심

각한 단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댓글이 아닌 정식 글을 쓴 사람은 많은 고민을 하거나 사색을 했을 수도 있고, 글을 쓰기 위

해 특별히 공부까지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같은 인터넷

에 쓴 글이어도 정식으로 쓴 글과 댓글은 분명히 들인 노력의 수준이 틀리다. 그런데 현실

은 어떠한가. 댓글의 수와 내용이 원래 글의 가치까지 평가해버린다. 댓글의 대부분은 딱히

내용이 없거나 궤변 또는 욕설이며, 심지어는 '1등 놀이'등 의미없는 것도 많다. 그런데도

댓글이 많이 달린 글은 '인기글'로 높여지며, 네티즌들은 다시 댓글수를 기준으로 어떤 기사

가 '가치있는 것'인지를 평가해 버린다. 글을 쓴 사람들은 이 때문에 당장의 인기만 의식하

게 되기 쉽다. 뭔가 억지로 튀는 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말랑말랑한 글만 추구하게 된다.

그런 글이 꼭 나쁜 것은 아니나 그런 글만 난무하는 것도 문제 아닐까?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댓글은 원래 글을 쓴 사람뿐 아니라 댓글을 단 사람한테도 도움이 되

지 않는다. 정식으로 근거를 대고 반론-재반론의 구조를 거치면서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생각을 끌어내는 구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댓글이라고 해서 모두 욕이나 상

스러운 말로 일관하는 건 아니다. 대부분 네티즌들은 결코 사악한 사람도, 생각이 없는 사람

도 아니다. 그러나 댓글을 쓴다는 것이 생각이나 사물의 주의깊은 관찰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다는 것도 분명하다.

순전히 오락이나 친교를 위한 사이트에선 이런 가벼운 댓글도 나름의 용도가 있다. 그러나

뉴스 사이트, 신문 사이트의 기사, 논설 페이지까지 덧글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우리가 다

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뉴스 사이트들은 덧글 시스템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도 똑같다. 그러나 신문의 기사는 직업기자나 전문가

가 썼든 또는 일반시민이 썼든 간에 대부분 분명한 견해와 나름의 근거를 가진 논리적인 글

이다. 이런 매체에는 마땅히 덧글이 아니라, 그와 역시 상응하는 충분한 근거를 들며 정식으

로 논쟁하는 "반론"체계를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현재의 댓글 체계는 과거의 '대자보'처럼

정당하게 자기 이름을 걸고 논쟁하는 체계가 아니다. 댓글은 비유하자면 대자보 밑에 아무

렇게나 끄적거린 낙서에 불과하다. 쉽게 쓴 만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도 쉽게 버릴 수 있

는 것이다. 시간 날 때 짧게 끄적거린 것이며 나중에 그 사이트에 다시 안 들어가면 그만이

니 반론이나 논쟁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힘들게 글을 쓴 사람, 거기에 아무 생각 없이 한

두 줄 문장만 가지고 트집을 잡으며 생채기만 남기고 사라져버리는 댓글들. 이 밑에 다시 달

린 것 역시 감정으로 일관하는 또다른 댓글들의 무의미한 연속일 뿐이다. 원래 글을 쓴 사람

은 이 무의미한 댓글 싸움의 와중에 사라져 버린다. 불공평하며 불합리하다.

오마이 뉴스는 모두가 기자가 된다는 기치를 내걸고 나온 대표적인 인터넷 매체다. 그런 점

에서도 덧글의 불평등성, 무책임성의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진정한 '시민

언론'으로의 진화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뉴스 포털 사이트들도 차라리 댓글 제도

를 과감히 폐지하고, 대신 독자들이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넓혀 주며, 댓글보다는 논리와

주관을 가진 정식 글을 많이 올리도록 고취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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